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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편 探石의 秘訣과 演出秘法

高山 | 2009.08.12 14:49 | 공감 0 | 비공감 0

 

◎ 자연의 미를 찾는 탐석

자갈밭에 묻혀 있는 하나의 돌을 찾아 신비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인간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자연 속에 방치시켜 무용의 돌이 된다면 인간과 자연이용의 보람은 없어지게 된다. 조물주의 솜씨인 수석감이 소멸되지 않고 개인의 자산으로 옮겨지는 영구 보존이 자연사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소유하게 되는 자연품에서 미와 선과 낙을 쌓는 행위가 수석생활이다. 돌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고 나아가 다양한 취미로 애석생활이 이어져 간다. 애석생활의 주위나 삶의 공간에는 부수적으로 야생초, 연출물의 화대나 좌대에 사용되는 고가구나 민속품을 볼 수도 있다. 벽면 장식으로 서화를 곁들일 수도 있다.

 

이렇게 돌을 통해 몇 가지를 겸해 모으거나 진열하는 것은 자연복합적이다.

 

복잡한 오늘의 생활 속에 애석의 맛이란 낙을 겸한 것이다. 풍류생활이 정서 이상으로 변할 때는 반목과 시기가 온다. 이는 돌을 통해 자연의 겸손, 경의 감사를 느끼며 마음의 넉넉함과 아늑함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돌을 통해 아름다운 정신을 얻고 삶의 질을 높여가는 포근함이 최상이 아닐까? 그렇지 않은 탐석이 목적이라면 인간을 삭막하게 만들고 상혼을 개입시키면 언제나 피해자는 애석인 쪽에 오기 마련이다.

 

수석인은 마음이 메마르면 산지를 찾는다. 여유 시간이 생겨도 산지를 밟는다. 이들 행위는 레저가 겸해지고 기박을 멀리하는 요인도 된다. 돌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물이 맑다. 공기도 깨끗하다. 산천의 변모가 마음을 한가롭게 한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시심을 안겨주고 도심의 풍진을 씻어간다. 이런 하루는 내일의 활력을 보태주고 정신을 맑게 한다.

탐석이 끝나면 시장기와 피로를 풀기 위해 소주잔을 나누고 장원석을 평가한다. 환성을 올리는 돌일 때는 인심 좋게 한턱낸다. 술과 수석이 연계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을 술과 이어지게 하는 행위가 수석세계로 적용되었을 뿐이다.


 

탐석이란 인내이며 한 덩이 돌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산야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의 숨소리를 몸 가까이에 두기 위한 수단이다. 사람들은 돌이 가진 자연의 미를 찾아내어 상상의 대상물을 삼았다. 이런 수석감은 어떤 것들인가?

 

돌이라면 둥글둥글하고 넓적하고 깨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 청태가 끼어 있는 세월감의 흔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수석감은 기형적인 형태다. 풍화작용에 의해 뚫리고 파이며 야위어 자연의 형상을 연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어떤 조건의 돌이라도 모스의 강도로 4~6도, 색은 짙은 색이 좋다.

 

수석취미는 자연의 자체가 내포된 것이 좋다. 음미되는 배경의 돌이다. 넓은 의미로는 자연의 관심이며 자연회귀이다. 그래서 수석감에 인공이 가미되면 될 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완성품일 때는 공예로 간주한다.

애석인들이 소유를 원하는 수석은 정신을 맑은 쪽으로 인도하고 즐거움을 더해주는 자연인 것이다. 이들 수석은 낭만이요 풍류며 상상의 유발자다. 한 덩이 돌을 보고 있으면 관광을 하는 것보다 더 실감나는 산수와 경이 느껴진다. 다시 말하면 삶의 배경이 자연임을 알고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게도 된다.


探石의 지혜와 實技

수석 종류별 수집방법

‘수석은 반드시 나오는 산지가 따로 있다. 금을 캐려면 광맥을 찾아야 하듯이 수석도 산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초심자의 경우는 경험이 많은 수석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새로운 산지를 발견하자면 석질의 변화에 대한 지질학적인 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 또한 여러 번의 실패를 하는 과정에 체득한 경험을 토대로 예민한 관찰력을 동원하여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멋있게 생긴 돌을 찾기 위하여 탐석 길에 오른다. 어쩌면 깜짝 놀랄만한 명석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산지로 향한다. ‘一生一石’이라는 말이 있다. 멋지게 빼어난 수석을 평생에 하나 정도 취득하면 다행이라는 뜻이다. 사실 빼어난 수석이 마음먹은 대로 쉽사리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행운이 찾아든다. 불운이 계속되다가도 우연히 기막힌 수석을 만나 기뻐 춤춘다. 이것을 석복(石福)이라고 한다.좋은 수석을 자연으로부터 선사받으려 하면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마음이 어지럽고 어두우면 돌의 멋스러움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밝아야 좋은 돌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돌을 수집하는데 있어서도 각자 자기 취향과 심미상의 어떤 목적이나 기호에 따라 수집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것을 유형에 따라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종류별 탐석방법

산수경석? 형상석? 추상석? 문양석 등 각 종류별로 따로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산수경석만 수집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형의 경석만 무조건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떤 테마를 설정하여 시리즈 형식을 취하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수집이 된다.

예를 들어 경석으로 춘하추동 사계절의 산을 모았다고 하면, 좁은 방 안에서도 아지랑이 감도는 봄동산을 볼 수 있고, 녹음 짙은 골짜기에서 시원히 굽이치는 폭포의 장관을, 산이 타듯 불붙는 가을의 단풍을, 백설 덮인 겨울 산의 청아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형상석으로는 자석(姿石)으로 성인군자(佛像? 예수? 공자 등), 명인(케네디? 드골? 나폴레옹 등), 동물 시리즈(소? 말? 개? 닭? 돼지 등) 수집도 재미있다. 또 동물도 날짐승과 들짐승을 구분하여 수집하다 보면, 나중에 하나의 동물원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돌에 집착되어 추상석만 모은다든가 무늬의 오묘하고 깊은 맛에 문양석만 수집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종류별 수집이라고 한다.


産地別 탐석방법

어떤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다만 그 산지의 독특한 맛과 그 산지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개성을 찾고자 수집하는 방법을 말한다. 단양 돌에 매혹된 사람은 단양의 돌 외에는 돌이 아니라고 하며 단양 돌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산지선택은 자유이다.


다방면 탐석방법

보편적으로 많이 하는 수집방법으로 이것은 좀 까다로운 종류별 수집이나 산지별, 형태? 질? 색 등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통틀어 수집하는 것이다.

대개가 이 방법으로 수집하지만 이렇게 종합적인 수집을 하려면 여기에 따르는 노력과 열의가 상당히 필요하다. 이 방법을 채택했으면 취사선택 시에 욕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마음가짐과 양보다 질을 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理想別 탐석방법


추상석과 마찬가지로 수석의 정형에서 벗어나 형? 질? 색에 구애받음 없이 자기 스스로의 정신세계, 말하자면 사상에 의거한 수집방법이다. 이것은 다른 방법과는 차원이 다른 수집이기 때문에 높은 심미안과 깊은 철학을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이상과 자기의 정신세계와 통하는 형이상학적인 돌을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돌과 대화할 수 있는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돌을 만나기란 오랜 세월이 걸린다.


 

探石의 지혜

끈기와 육감과 운(運)으로

탐석할 때 흔히 쓰는 말로 ‘운과 끈기와 육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느 원로 애석인은 ‘탐석이란 노력이 30% 육감이 30% 나머지 40%는 운’이라고 하였다.

 

분명히 탐석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있다. 우연히 명석을 발견하였다는 예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찾기의 매력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운만으로는 안 되어 노력이라고 할까 찾아내려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어떤 이는 탐석을 가면 성급하게 마구 걸어 다니지 않고 한군데 들어앉아 차분하고 끈기 있게 돌을 찾아 좋은 결과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탐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六感(비결)을 터득한다는 점이다. 수석의 기본을 깨우친 다음 탐석을 거듭하여 몇 번의 체험을 쌓으면, 육감은 자연히 몸에 익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육감이 훌륭한 운을 찾아다 주는지도 모른다.


산지선정을 잘해야 한다.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돌이지만 우리가 찾고자 하는 멋진 수석은 대부분 어떤 한 지역에 모여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선 돌의 산지를 알아야 한다.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 어쩌다가 한두 개의 수석이 발견되었을 때에 이런 곳은 수석산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수석을 찾아 탐석 길에 오르려면 어쨌든 준비할 일들이 따르게 된다. 우선적으로 수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여행을 떠나 넓디넓은 산야에서 올바른 산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큰 고행이고 빈번히 실패하기 때문에 산지를 미리 자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어느 냇가에나 숱한 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양석이 많은 냇가와 적은 냇가가 있고, 그 중에는 수석으로 알맞지 않은 연질의 돌만 있는 냇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탐석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지를 잘 선택하여야 한다.

수석의 조건으로는 형태나 색상도 중요하지만, 첫째 기본은 무엇보다도 석질일 것이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석질이 나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산지를 선정할 때는 우선 석질이 좋은 곳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수석으로 될만한 돌은 대체적으로 변성작용을 많이 받은 古生層 지대가 유망한 곳이기 때문에 이 점에 유의하여 산지의 지질도를 펴놓고 연구해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그리고 5만분의 1 지도를 구하여 지리적인 여건 등도 사전에 조사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산지로 갈 때에는 사전에 그 고장의 애석인에게 연락하여 동행을 청해보든가, 그렇지 않으면 산지의 특성 등 대략적인 현황을 알아두면 탐석에 큰 보탬이 된다.


탐석은 밭에서 김매듯이

멋진 수석을 찾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운동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수억만 개의 숱한 돌들 속에서 잘생긴 돌을 찾아 살피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로하다. 수없이 많은 돌들을 두 개의 작은 눈으로 살피는 일은 힘겨운 일이어서 제대로 돌밭을 모두 분간해 살피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살펴봤던 곳을 되풀이해서 찾아보고, 다음번 탐석에서 다시금 찾아 살펴도 낯선 돌들이 얼마든지 나타난다. 한 번 탐석하고 나서 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련을 버리는 일은 건방진 속단이다. 흔히, 돌밭을 실속 없이 다니며 겉으로만 대충 살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한가한 태도 앞에는 좋은 수석이 잘 나타나 주지 않는다.

 

밭에서 김을 매듯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남김없이 들추어 보고 때로는 파보기도 해야 한다. 약간 비죽 솟은 돌을 무심결에 파보다가 일컬어 석복을 만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100개의 돌을 비추어 보는 노력으로 한 개 정도의 쓸만한 돌이 나온다면 성적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벅차긴 하겠지만 부지런히 돌을 들추고 파헤쳐 볼수록 좋은 돌을 얻는 확률이 높아진다. 탐석방법의 첫째도 열 번째도 ‘밭에 김매듯이’해야 함을 명심해 두기 바란다.

                       산지: 점촌 36 X 4 X 17


탐석에 가장 알맞은 시기

탐석의 시기는 이른 봄과 늦가을이 사계절 중 가장 효과적인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름 삼복더위의 폭염 밑에서나, 엄동설한에서는 삼가는 것이 좋다.

川石인 경우에는 수량이 그다지 많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과 가을이 좋다. 山石인 경우에는 잡초가 무성한 계절을 피하고, 풀잎이 시들어 지면이 잘 보이는 늦가을이 좋을 것이다.

즉 가장 효과적인 때는 나무의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나, 단풍이 끝날 무렵인 늦가을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탐석에 필요한 도구들

탐석을 갈 때에는 흔히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헤맬 때가 많으므로 간단하고 경쾌한 복장, 특히 보행을 위한 튼튼한 준비를 하는데 유의하여야겠다. 그리고 울긋불긋한 요란한 옷차림으로 농민들의 혐오감을 사지 않도록 노력함이 좋을 것이다.

다음 용구 가운데 주된 것만 열거해 본다.


가. 강돌을 찾을 때

ㄱ. 고무장화나 고무신(냇가 또는 물 속을 찾을 때 편리하다)

ㄴ. 끝이 넓적한 쇠갈고리, 피켈 등(물속이나 냇가에 있는 돌을 파낼 때 쓴다)

ㄷ. 수중안경(물속의 돌을 찾을 때 쓴다)

ㄹ. 작은 판자(돌의 안정도를 본다)

ㅁ. 로프(무거운 돌 밑에 깔려 있는 돌을 찾아낼 때 쓴다)

ㅂ. 장갑(모래를 헤칠 때 등에 쓴다)

ㅅ. 헝겊이나 시멘트 포장지(돌을 포장할 때 필요하다)


나. 산돌을 찾을 때

특히 필요한 것은 휴대용 삽과 지렛대이며, 흙을 털어낼 수 있을 정도의 브러시(쇠로 된 것), 등산화 등이다. 또한 어느 경우에도 갈아입을 속옷, 비옷, 도시락, 물통, 랜턴, 구급약 등을 지참하여야 안전하다.

또한 배낭은 필수품으로, 돌을 넣어 짊어질 때에는 등이 아프지 않게 안쪽에 판자나 스펀지를 대면 좋다.



강돌 탐석의 지혜

빼어난 수석을 얻기 위해서는 대부분 강을 많이 찾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여러 곳의 다채로운 돌들이 굴러 떨어져 한군데에 모이는 곳이 바로 강이기 때문이다. 이 돌들이 강물과 모래에 의하여 부드럽게 마멸되어져 기품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위의 그림을 보자. A 지점은 B 지점에서 굽이치는 물살에 의하여 돌과 모래가 운반되어 쌓이는 곳이다. B 지점은 휘돌아 치는 물살이 부딪쳐 가는 곳이므로 자갈이나 모래가 모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강류의 완만한 상태나 위쪽의 지리적 조건에 따라 예상외로 B 지점에 돌이 많이 쌓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강물의 흐름에 따라 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수석감이 되는 돌들이 위쪽 A 지점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다가 아래쪽 A 지점에만 많은 돌이 몰려 쌓이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다.


강돌은 상류로 올라갈수록 거칠고 모가 난 것이 많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로 돌은 연질부가 패이고 씻겨 마멸된 상태가 되고, 중류에서 하류로 감에 따라 차츰 둥글어지고, 마침내는 자갈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으로 적당한 물씻김을 나타내는 것은 수원지에서 10km 정도 아래쪽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강에 따라서는 중류에서 오히려 좋은 돌이 나오는데, 이것은 석질과 수질과의 관계인 듯 하다.

 

지금까지의 체험으로는 곰보돌류의 돌은 상류에서, 경도가 단단한 돌은 중류에서 양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냇가의 돌은 대개 모래나 흙에 싸여 있고, 물속의 돌은 물때나 이끼풀 등에 싸여 있으므로 수세미로 씻어보아 그 본래의 돌갗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돌이 발견되는 곳은 냇가, 강기슭의 풀그늘, 물속 등인데 물줄기가 구부러진 지점, 함수되는 지점 등에 비교적 여러 가지 석질의 돌이 체적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채집한 돌은 한군데 모아 표시를 해 두었다가 나중에 취사선택하는 방법이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으며 현명한 탐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돌 탐석의 지혜

산속에서도 기이한 돌들이 발견된다. 비가 쏟아질 때의 급한 물길에 의하여 패인 골(雨路)을 살피면 흙 속의 기이한 돌들이 돌출되어 있는 상태를 보게 된다. 깊은 숲 속 산골짜기에서 문득 기품 있는 멋진 돌도 얻게 된다. 산사태가 난 곳을 보면 비죽 솟은 야릇한 모양의 돌이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러한 것들을 다 토중석(土中石)이라고 한다.

산돌은 구태여 골짜기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의 한 중턱 또는 숲이 우거진 펑퍼짐한 장소에 괴상한 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경우도 있다.

 

탐석행에서 가장 수월하고 소득이 높은 곳이 강이라면 아주 험난한 작업이 토중석이다. 좀체로 좋은 성과를 얻기가 어려운 산 속에서도 일단 산지가 발견됐다면 특색 있는 좋은 수석들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수석감이 나타나는 암층은 주로 변성암, 석회암, 퇴적암 등 암층변화가 많은 지대에서이다.

 

대개의 경우 강기슭 언덕의 고목 뿌리 밑이나 이판암대(泥板巖帶)가 무너진 곳에서 좋은 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기 일쑤라고 한다. 가느다란 철봉 같은 것으로 육감적으로 여기다 싶은 곳에 찔러보아 그 끝의 감촉 또는 원석에 붙어 있는 회토(灰土)의 부착 등으로 미루어 찾는 것이다.

 

토중석 형상의 변화는 빗물이나 지하수의 작용 또는 식물의 뿌리에서 나오는 쿠엔산의 침식으로 인한 것이므로, 고목의 뿌리 아래에서는 형태가 재미있는 돌이 나올 가능석이 많은 것이다. 또한 토중석은 회토에 싸여 있으므로 망치로 가볍게 두드리고 솔로 털어 형의 윤곽을 확인한 다음, 쓸만하면 가지고 오도록 잘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海石 탐석의 비결

거센 파도에 의하여 뻘 밑에 묻힌 지질층이 노출되는 곳이 바닷가이다. 바다에는 형태의 기묘한 것이나 다양한 색채가 변화 있게 나타나기도 한다.

육지의 땅속에 묻힌 암맥층이 바다 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바닷물에 노출되어 이것이 깨어지고 떨어져 나와 문득 큰 돌밭이 형성되어 있는 곳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잘생긴 돌들을 모두 탐석한 다음에도 주기적인 밀물과 썰물에 의하여 새로운 돌들이 계속 나타나는가 하면, 때로는 그 많던 돌무더기가 몰라보게 뻘 속으로 묻혀버리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바다 탐석에서 가장 유의해야할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위의 그림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A 지점처럼 육지가 바다 쪽으로 뻗어 나온 돌출부에서는 수석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거센 바다 물결은 육지의 돌출부인 A 지점으로 그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부딪쳐오므로 이 곳의 돌이나 바위를 빨리 파괴시키는 작용을 계속 한다.

 

그래서 A 지점의 돌들은 날카롭게 깨어진 조각돌들로 쌓여 있을 뿐 잘 닳은 쓸만한 수석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B 지점과 같은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가 되는 곳에서는 물의 에너지가 약하게 덜 미치는 곳이므로 도리어 퇴적되는 대상이 일어나 많은 돌들이 모이게 된다.

 

또는 뻘의 심한 퇴적으로 인하여 전혀 돌덩어리들을 구경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아울러 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쌓인 돌들은 서서히 닳기 때문에 볼품 있는 돌들이 이루어지는 확률이 높다.

 

깨진 돌조각들이 수석으로 쓰일 만큼 유연한 상태를 이루려면 그 돌밭에 반드시 모래가 섞여 있어야 한다. 물살에 의해서만 돌 표면에 마멸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미미한 정도이다. 돌의 피부가 부드럽고 곱게 잘 닳아지려면 모래가 섞여 있어서 물의 힘에 의한 모래와의 마찰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 경우는 강가 돌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모래가 전혀 없는 돌밭에는 잘 닳은 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수석은 해안을 떠나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서 수석산지가 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절해고도의 바위나 낭떠러지에도 파도, 풍우, 소금기에 의한 침식으로 괴이한 돌이 형성되는 것이다.


수석 연출의 중요성

수석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이다. 때문에 거기에는 인공을 거부하는 메시지가 있고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내재해 있다. 이런 메시지와 약속을 어기고 수석에 손을 대게 되면 고유의 맛과 생기를 잃어버린 채 ‘죽은 돌’이 되어 버린다. 간혹 이런 돌이 자연석의 대열에 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돌 자체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신의 눈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석에도 사람의 손길이 꼭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나는 양석이고 다른 하나는 연출이다. 수석이 신의 창작물이라면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창작일 것이다. 양석과 연출은 탐석해 온 돌의 제 모습을 ‘드러내주기’ 위한 작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과정에도 돌의 본모습을 바꾸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 조금이라도 모양을 바꾸면 ‘금알 낳는 닭’을 잡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양석과 연출 중에도 특히 연출은 인간이 고도의 창작능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다. 돌의 본래 모양을 존중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돌의 모습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유일한 영역이 연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르고 정확한 연출 여부는 그 돌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가장 잘 살렸는가에 있다.


연출은 소장자의 심미안에 따라 연출은 신의 솜씨에 곁들여서 인간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 때문에 수석인 중에는 ‘연출솜씨를 보면 곧 그 돌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의 수석관을 파악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발견되는 연출기법의 오류는 다음의 다섯 가지로 발견된다.

1) ‘여백의 미와 균형의 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경우.

2) 수반이나 좌대의 두께와 크기가 돌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

3) 좌대에 앉혀야 할 돌을 수반에 앉혔거나 그 반대인 경우.

4) 연출이 지나쳐 오히려 돌을 압도해버린 경우.

5) 일본식 연출기법에 너무 의지한 경우.


이런 잘못은 대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고 세심하게 배려하면 극복할 수 있는 ‘기법상의 문제’들이다.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수석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기초적인 사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기본적인 요건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연출상의 기본과 상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런 고정관념이나 왜곡된 수석관은 이기적이고 반문화적인 가치관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백의 철학과 미의식

우리 선조들은 부드럽고 유연한 선의 흐름과 거기에서 나타나는 여백의 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전통 서화가 그랬고, 고려청자나 모든 생활 문화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사실적인 표현만으로 구현할 수 없는 미의식과 철학을 담는 일종의 그릇이었다. 때문에 전통문화나 예술을 감상하는 데에는 이 여백을 읽을 수 있는 안목과 지식이 필요하다.

선조들의 이런 미의식을 가능케 했던 최초의 스승은 바로 자연이었다. 실제로 우리의 자연에는 도자기나 그림의 선이 살아있고 각자의 세계관을 무한대로 투영시켜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 있다. 자연의 일부분인 수석이 충분한 여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전통적 미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수석에 있어서 여백은 돌 전체의 균형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연출 시에 돌이 지니고 있는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서는 선의 흐름이 완만할수록, 돌의 기세가 세고 변화가 심할수록 공간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또한 수반이나 좌대의 두께와 크기는 대개 돌과 비례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좌대로 연출해야 할 돌을 수반에 앉힌 경우도 경계해야 할 오류의 하나이다. 좌대보다 수반을 더 선호하는 풍조는 각종 전시회가 빈번해지고 수반석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수반은 서서 돌을 감상하는 전시장의 특성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수반석 사이에 놓인 좌대석이 왠지 왜소해 보이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수반연출과 좌대연출의 장단점

하지만 수반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알아두어야 한다. 수반은 경의 아취를 느끼기에는 좋지만 돌을 섬형으로 만들어 원래의 기세를 테두리 안으로 한정시켜버린다. 웅대한 대륙적 기개가 있는 돌을 수반에 앉히게 되면 경은 좋지만 돌 자체가 왜소하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축소된다.

 

최근에는 산짐승을 닮은 물형석이 수반에 앉아 있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수석연출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돌을 볼 때에는 감상자의 시선이 자연히 좌대로 가게 되어 돌을 보는 안목이 흐트러지고 만다. 이는 물론 돌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거나 소장석의 값어치를 더 높여주고 싶은 인간적이고 순진한 발상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결국 수반이나 좌대를 막론하고 연출은 돌의 모양과 앉음새, 표피의 색감, 내면적 상징성 등을 고려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돌의 자연미가 잘 살려지며 감상자는 편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과 수반, 돌의 좌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석이 전제되어야 하며 돌을 보는 안목도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미와 색의 조화를 보는 고도의 감각도 있어야 한다. 더구나 추상석일 경우나 파격을 통해 연출상의 묘미를 강조하고자 할 때에는 소장자의 감각이 더 깊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감각은 한순간의 공부나 명석한 두뇌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연출은 소장자의 수석관이나 윤리의식 뿐만 아니라 인간됨 및 철학관까지를 고루 겸비해야할 영역이다.



수석연출의 종합적인 묘법

오랜 수련을 통해 닦아온 수석의 전 역량이 이 연출력에 응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의 연출력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수석의 광범위한 여러 형식들을 의식적이든 잠재적이든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자연에 대한 ‘연상’과 가장 밀접하다는 산수경석의 예만 보더라도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섬과 바위가 아니다. 돌로 재구성되어 수석의 형식들로 양식화되고 변용된 산과 섬과 바위인 것이다.

 

수석인이 아닌 사람들도 산이나 섬, 바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수석인들과 마찬가지이다. 허나 그들은 수석인들처럼 돌로 형상화된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보고도 금방 반응할 수는 없다. 같은 계열의 경석이라도 원경을 중점으로 하는 원산석, 평원석, 단석 등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 그러니까 산수경석을 잘 이해하려면 우리는 자연의 이미지와 그것이 돌로 변화되어 나타난 수석의 양식화에 주목해야 한다.

 

산수경석 외에도 광범위한 분야의 많은 것들이 수석으로 재구성되며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구체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생각마저도 수석으로 양식화 될 수 있다. 그들이 수석으로 어떻게 변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수석의 유형을 기억하며 훈련해야 한다. 말하자면 광범위한 수석의 형들에 대한 풍부한 기억의 저장고를 가져야만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형들은 기억의 표층에서 쉽사리 떠오른다. 못 보던 형들은 새로 창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잠재적인 곳에서 떠올랐을 뿐이다. 기억의 심연은 깊을수록 좋다. 연상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고 새로운 것을 수석으로 양식화할 수 있는 능력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능란한 수석의 연출가가 되려면 수석의 다양한 스타일과 산지석들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 또한 풍성한 형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형상화도 가능해야 한다.


수석의 실제적인 능력을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형? 질? 색을 판별하는 능력과 연출의 능력이 그것이다. 형? 질? 색을 인식하는 능력은 일정한 단계가 지나면 해결되지만 연출의 능력은 장시간의 숙련이 요구된다. 여러 형들에 대한 파악이 선제되는 수석체험의 총화와도 같은 것이 바로 연출이기 때문이다.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는 사람을 잘 알 수 없고 여러모로 관찰해야 잘 알 수 있듯이 돌도 꼼꼼히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연출의 시도 끝에 의외의 수품이 나올 수도 있다.

 

돌밭에 버려진 돌들 중에는 형? 질? 색이 나빠서라기보다도 실상은 연출이 잘 안되어 버려진 돌들이 더 많다. 공동 탐석 시에서 앞선 사람이 아니고 뒤의 사람이 더 좋은 것을 탐석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탁월한 형의 수석에서는 연출의 기량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수석은 많지 않다. 따라서 돌을 잘 본다는 말이 어느 때는 연출을 잘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수석 연출의 방법에는,

① 수평적인 뉘어보기

② 수직적인 세워보기

③ 사선상의 연출인 기울여보기

④ 앉혀보기 등이 있다.

수평으로 보는 뉘어보기에서는 돌을 들고 전후로 각도 조절을 해본다. 그에 따라 윗면의 원근감과 봉들의 변화, 물고임의 상태 등을 조절할 수 있다. 또한 밑자리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어느 형의 수석에서나 밑자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되며 밑자리의 결점에 대한 극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수직적인 입석상의 연출인 세워보기에서는 돌을 360도 전체로 천천히 돌려보아 각각의 변화하는 양상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사선상으로 연출되는 기울여보기에서는 기울어지는 여러 각도에 따라서 뻗는 느낌, 웅크린 느낌, 기는 느낌 등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사선상의 연출은 가장 어려운 연출의 방식인데 처마나 차양의 돌출형이나 물형들에서 흔히 보게 된다. 돌출형에서는 들려지는 부분과 그것을 떠받들고 있는 부분 간에 균형의 비례가 요체이다. 대체로 3:2 정도의 느낌일 때가 가장 약동적이며 쭉 뻗는 느낌이 강하다. 이 비례에서 돌출부의 비중이 커지면 앞으로 넘어질 것 같은 불안정이 오고, 기단부의 비중이 커지면 약동하는 맛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물형에서는 이러한 비례가 성립되지 않는다.

 

자꾸 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들려면 확실히 들고 그렇지 않으려면 전혀 들지 않아야 한다. 돌출형도 아니고 물형도 아닌 것으로 엉거주춤하게 드는 것은 답답한 느낌과 불안정만을 준다. 특히 경석류에서 암형이나 절벽형 등의 일부가 전체의 균형을 해치지 않으면서 들려지는 것은 무방하나 산이나 섬에서 들려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앉혀보기란 연출의 방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도 돌의 가로, 세로의 길이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수직, 수평, 사선의 어느 쪽에도 넣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는 가장 좋은 면을 전면으로, 가장 적절한 밑자리를 선택하면 별 무리가 없는 무난한 연출의 방식이 되겠다.


외곽선의 변화를 선택할 것

가장 좋은 외곽선이나 변화를 중점으로 해서 연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선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주름, 굴곡, 파임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지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외곽선의 변화는 우선적으로 수석절반의 분위기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이때 장애가 되는 것은 부분적인 결점이다. 중요한 것은 부분보다도 전체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점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정확히 가늠해야 한다. 소로 인하여 대를 잃지 않는 쪽으로 대범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조화를 관찰하여 보완한다.

연출된 수석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쌍봉에서 두 봉이 서로 이형이면 우리는 강한 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는 수문형으로 연출을 바꾸어 보거나 입석형의 연출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연봉형에서 여러 봉들이 형사이나 위치에서 서로 조화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경우에도 뒤집어보거나 세워보기, 기울여보기 등의 재연출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수석에서 한쪽은 바위이고 다른 쪽은 섬이라면 전체적으로 이질감이 온다. 섬이면 다 섬이고 바위이면 다 바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통일성의 원리 때문이다.

이색적인 부분 때문에 수석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부조화 때문에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불균형을 찾아내어 바르게 한다.

불균형을 찾아내고 그를 극복해 주는 방향으로 연출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조화가 형태의 문제라면 불균형은 시각적 무게의 문제이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불안감, 한쪽은 약해 보이는데 다른 한쪽은 비대한 경우, 위가 아래보다 무거워 보이는 경우 등은 모두 균형을 잃은 상태이다.

 

균형은 상하뿐만 아니라 좌우로도 잡혀야 한다. 상하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선상의 연출과 입석상의 연출이다. 사선상의 연출에서는 약동하는 상단부의 시각적 무게를 끌어 잡아당기는 하단부의 무게가 있어서 평형을 이루는 상태가 좋다. 입석상의 연출에서는 밑동과 윗동이 서로 같거나 밑동이 좀 굵어야 한다. 이것은 밑동이 가느다란 것을 좋아하는 중국 정원석의 법칙과는 좀 다르다.

 

시각적 무게차이로 오는 좌우의 불균형은 모래나 좌대로 깊숙이 묻어주어 극복할 수 있다. 수석의 연출이라는 것은 결국 불균형에서 균형을 찾아주는 것이다. 밑자리는 수석의 균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밑자리를 수석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균형 잡힌 몸매’라는 말이 있듯이 돌도 ‘잘 빠진 날렵한 돌’이 있다. 군더더기가 없으며 낭비가 없는 선의 흐름을 가진 수석은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의 미인이라 볼 수 있다.


수석 감별(鑑別)의 비결(秘訣)


양질의 돌 선택방법

탐석은 줍는 것이 아니라 골라내는 정선임을 항시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이 좋겠다. 이에 유념하여 그다지 의미가 없는 돌에 대하여 설명해 보겠다.


가. 質이 무른 돌

아무리 오묘하고 재미있게 생긴 돌이라도 세게 쥐거나 다른 돌에 닿았을 때 부스러지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하는 돌로는 어쩔 수가 없다. 돌은 영원불변의 벗이 되어야 한다. 이런 무른 돌은 사암이나 이암(泥巖) 또는 석회질의 돌 종류에서 많이 생긴다.


나. 質이 거친 돌

예컨대 곰보돌에 해당하는 용암 등은 아무래도 수석으로 맞지 않는다. 질이 거칠고 크기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 것은 중량감이 없을 뿐 아니라 얄팍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어 좋지 않다.


다. 결정적으로 볼품이 없는 돌

질은 좋아도 결정적으로 볼만한 데가 없는 돌이 있다. 반드시 形 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늬라든가 색채라든가 어딘가에 결정적으로 볼만한데가 있어야 한다.

 


양질의 수석이란?

가. 석질이 좋은 돌

무엇보다도 수석의 첫째 조건은 질이다. 석질이 나쁘면 도저히 쓸모가 없다. 하기야 그저 단단하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모스경도계로 3도 이상은 필수조건이라 하겠다. 이상적인 돌의 경도는 5도 내외가 좋다. 또한 경도 이외에 치밀함, 즉 잘 반죽되어 굳어진 상태가 바람직하다. 특히 그 질의 특색, 예컨대 실패(석영이 실패처럼 감긴 돌) 같으면 과연 실패다운 질을 지니고 있어야 함은 새삼스럽게 말할 나위가 없다.


나. 결정적인 곳이 있는 돌

하나의 자연석에서 완전함을 찾는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므로, 질? 형? 색? 문양 등 모든 것이 다 양호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딘가 하나 결정적으로 볼만한 곳이 있다면 그것은 훌륭하게 수석으로 즐길 수가 있게 된다.

어딘가에 장점이 있으면 다소의 결점은 보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기성의 미의식을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석 속에서 뜻밖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수가 가끔 있다. 그런 점에서 수석미 발견에는 무한한 흥취가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취향(趣向)에 대하여

각각의 돌이 지니고 있는 훌륭함을 보다 더 훌륭하게 살리는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의 여하에 따라서는 당연히 살아야 할 돌도 **버리는 수가 있다.


가. 산수경석

자연 그대로 산수미의 경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산수경석으로 관상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리고 다소 약하고 풍화되기 쉬운 질의 돌은 수반에 놓고 감상하고, 비교적 굳고 광택이 잘 나는 질의 것은 좌대에 얹어둔다.


나. 형상석

그 돌의 형이 산수경 이외의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경우에는 형상석으로 관상한다. 그 흥취에 따라 좌대라든가 지판에 두고 감상하여야 될 것이다.


다. 문양석

무늬가 재미있는 것은 문양석으로 즐기게 되는데, 그 무늬가 폭포나 계류의 느낌이 있는 것은 산수경석의 분야에 속한다. 대개의 경우 문양석은 좌대에 두고 관상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라. 색채석

형이 아무런 재미가 없더라도 색채만 아름다우면 색채석으로 다소의 손질을 한 다음 주로 좌대에 놓고 감상한다. 또한 이 흥취의 결정에는 소장자의 개성이나 기호가 매우 짙게 반영되는 예가 많다. 다시 말하면 산수경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돌이라도 산수경석으로 규정해 버리려고 애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돌을 제대로 애상(愛賞)하려면 자신의 기호를 돌에 살리면서도 역시 그 돌이 지닌 특색과 개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돌의 위치


가. 前後를 정하는 방법

돌에는 본래 앞뒤가 있을 수 없지만 관상상으로는 역시 앞과 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구분방법은 먼저 경상(景狀)이 나타난 모양이나 무늬? 색채 등의 상태를 자세히 본 다음, 가장 뛰어난 면을 앞쪽으로 놓아야 한다.

다음으로 석면의 뻗어남으로 보아 넓고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쪽을 앞쪽으로 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첫눈에 띄는 굴곡(凹凸)의 상태로 보아 좌우의 양단이 다소 앞으로 뻗어 나온 쪽을 앞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눈으로 느끼는 박력의 관계이다.

이상의 세 가지가 앞쪽을 결정하는 경우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나. 아래, 위(上下)를 정하는 방법

어느 돌에나 스스로 자리 잡아야 할 위치가 있는데, 이때의 기준으로 되는 것은 안정이다. 앉혀 놓고 볼 때 안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역학상의 안정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의 견지에서 본 시각상의 안정을 말한다. 그대로는 앉혀지지 않을 경우에는 좌대나 수반의 모래 등으로 조절한다.

 

탐석해온 돌의 청소와 마무리 손질법


수석은 대자연이 오랜 세월동안 풍파를 겪어오면서 신비하고 위대한 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그 형태에는 가지각색의 자연미가 서려있다. 우리 애석인들은 그것을 탐석하여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관상하고 오래도록 애호하는데 수석의 가치를 둔다. 이렇게 오래도록 관상하기 위해서는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탐석해온 돌들은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그 처리방법의 기초상식이 없는 탓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손질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어떤 종류의 석질인지 선별한다.

둘째, 진열대에 얹어놓고 틈이 날 때마다 야러 번 반복해 살피며 차분하게 손질법을 생각한다.

셋째, 돌 자체가 보존하고 있는 멋진 고태미의 때깔은 자연 그대로 살려야 한다.


넷째, 정통적으로 올바르게 애석하는 사람과 접촉하여 자문을 구한다.


다섯째, 어떤 돌이든 막연한 생각으로 처리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강돌의 손질방법

강돌의 손질에 있어서의 첫 번째 작업은 오물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잡물을 제거하기 위한 용구로는 수세미, 바늘, 송곳, 칫솔, 쇠솔, 걸레 등과 간단한 약물이 필요하다.

 

우선 강돌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물씻김이 된 점은 공통적이다. 따라서 가장 처음 할 일은 따뜻한 물에 연한 세제를 풀어 그 속에 넣고 오물을 불리는 일이다. 이때 성급하게 진한 세제를 사용하면 색감과 피부에 이상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 불었다고 생각될 때 수세미나 칫솔 등으로 문지르면 물때까지 소제가 잘 된다.

안되는 부분은 굴곡으로 파인 부분인데 그 사이에는 흙과 모래알이 그대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은 하나하나 송곳으로 파내야 한다.

쇠솔로 문질러 불이 튈 정도로 강한 석질이면 쇠솔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약한 부분이 있어 쇠솔 자국이나 쇳물이 배면 치명적인 상처가 남으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강돌 중에서도 수반에 놓고 양석해 가야 할 돌도 있다. 흙때를 그대로 두어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고 이것이 거름이 되어 양석의 효과가 빠른 것도 있다.

그러니 손질을 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물때도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제거하고 나면 오히려 고태미와 품위를 잃는 석질도 있다.

 

단양지방의 강돌로 석회질석이나 초콜릿색의 변성암은 수반에 앉힐 때 파인 곳에 모래만 바늘로 제거하는 경우도 훨씬 돋보이는 경이 많다. 돌의 때를 아무리 벗기려 해도 물이나 세제로는 불가능할 때 약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질의 약한 석질이 박혀 이것을 반드시 제거하여야만 경이 살아날 것 같으면 약물로 처리한다. 이럴 때에는 풍화작용에 의해 이룩된 자연경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산화처리를 한다.

 

그런데 약품처리를 잘못하여 돌의 색깔과 형태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도록 간단한 실험을 하여 안전한 처리를 해야 한다. 실험할 때 보면 같은 석질의 돌이라도 이질성을 띠고 있는 것이 있다. 또한 묻은 때의 종류도 환경에 따라 다른 것이다. 때문에 때를 벗기고자 하는 돌의 밑면이라든가 잘 안보이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실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실험에 앞서 경험 있는 동호인들의 실험결과에 대한 조언을 들어야 한다. 약물처리가 잘못되어 아끼는 돌의 색감과 무늬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근래에는 약품으로 자연석을 부식시켜 엉뚱한 형태를 만들어 남의 눈을 속이는 일도 가끔 있다. 이것은 장난이지 애석이 될 수 없다. 비록 약품을 사용하더라도 결코 자연의 참모습을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 원칙적으로 강돌의 소제는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로 씻어내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채석해온 돌을 무분별하게 세제에 빨래하듯 삶아버리는 일도 있다. 이것은 깨끗하게 하기 위한 일일지도 모르나 전혀 수석 본연의 멋에 벗어나는 것이다. 수석은 아기를 다루듯 신경 쓰며 조심스레 씻고 닦아나가야 한다.

돌의 청소가 말끔히 끝나면 그 돌의 참모습을 다시 감상하며 수반에 올릴 것인가 좌대에 받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좌대에 받칠 돌은 어차피 어루만져가는 동안 손때가 묻을 것이니까 예외로 하고 수반에 올릴 돌이면 기름칠을 하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


요즘 돌의 색깔을 뚜렷하게 원색대로 본다는 이유로 기름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어낸 그대로가 더 품위가 있다. 물론 돌의 표면에 나타나는 색감이나 무늬에 주안점을 두는 색채석이나 문양석은 선명한 색상을 감상하기 위해 윤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산수경이나 물형의 돌에 기름칠을 해서 번들거리게 하는 것은 천박하고 고태스러움을 잃는다. 물로 깨끗하게 닦은 돌이 너무 거칠어 보이면 목욕 후의 피부에 크림을 바르듯 돌의 표면에만 약간의 호두나 잣 같은 식물성 기름으로 단장하는 것은 무방하다.

 

돌의 원색은 물을 머금었을 때와 건조했을 때와는 같지 않다. 강돌이라고 해서 기름을 발라 항상 물 속에 있는 돌처럼 보여야 할까? 강천에 본래 있던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보존하면 저절로 윤이 흐른다.

수석의 색조는 사랑스럽게 어루만져가는 동안 세월과 함께 은연중에 고태미가 나고 예스러움을 풍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득한 기름을 덕지덕지 발라 조작할 수 없는 것이다.수석은 오랜 시간을 두고 정성스레 매만져주는 동안 저절로 손때가 묻어 고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미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오래된 소나무의 뿌리로 수석을 문지르면 윤과 광이 난다.


산돌의 손질방법


산돌로 수석감이 되는 것은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화산암으로 한탄강 인근의 연천이나 철원 지방의 맷돌감 같은 돌, 대구지방의 파계사 돌, 보성의 제석산 돌, 제주도 돌 등이다. 다른 하나는 퇴적암층의 변성암으로 충북의 단양 인근을 비롯하여 옥천? 괴산 지방의 돌, 경북의 청송? 영양, 경남의 울산? 고성 등지의 토중석은 다소 이질적인 것이기는 하나 넓은 의미에서 모두 이 속성에 속하는 돌이다.

 

또한 화산암이든 퇴적암의 변성암이든 산돌로 수석감의 손질은 지상에 노출되어 비바람과 햇빛과 기후조건에 따라 자연 양석이 된 상태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에 묻혀 점질의 흙에 싸였거나 미처 풍화가 안 된 연한 석질에 휘말려 있는가의 상태에 따라 그 방법이 다양할 것이다. 따라서 산돌의 손질을 산지별로 하나하나 열거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유형의 암층을 놓고 검토해보기로 한다.


화산암대의 수석 손질방법

화산암은 지하의 용광로인 뜨거운 액체인 마그마가 화산의 분출작요에 의해 지상이나 지표 가까운 곳에 급히 냉각되어 만들어진 돌이다. 수석으로 기묘한 모양의 돌이 화산암층에 많은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멋있는 수석감을 발견한 후 어떻게 처리함으로써 본바탕의 미를 돋보이게 하고 자연스럽게 손질하는가를 중점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화산암도 지표에 노출되어 비바람이나 햇빛에 의해 천연으로 양석된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대개의 경우 땅속에서 캐내어 보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진흙에 묻혀 있어 곤란하다.

 

인공으로 조각하여 만든 비석 같은 것도 지하에 묻혀 2~3백년이 흐르면 흙물을 제거할 방법이 거의 없다. 그저 물로 씻어주며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화산암도 지하에 묻혔던 돌의 검은 바탕을 표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손질은 우선 표피에 붙은 흙을 물에 담가가며 벗겨낸다. 대개 석질이 강하므로 쇠솔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 하루쯤 물에 불리고 솔질하는 것을 반복하여 흙의 성분을 모두 제거한다. 파인 곳은 바늘이나 송곳을 이용한다. 그러나 누렇게 벤 흙물을 깨끗하게 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약물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다. 돌의 원색이 변조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양지에 두고 나무나 꽃을 가꾸듯 마르면 자주 물을 뿌려주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에 의해 양석해가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양석을 해야 할 수석은 물형의 돌이라도 수반에 놓고 물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


퇴적변성암대의 수석 손질방법

지하의 열과 압력 및 지각변동에 의해 물밑에 있던 퇴적암이 육지나 산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변성작용으로 다시 풍화나 침식으로 퇴적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암석의 융해가 계속된다.

수석감은 이 퇴적변성암층의 파편에서 천태만별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암층이 땅속 깊은 곳에서 지표에 노출된 뒤 비바람의 영향을 받아 저절로 수석미를 지니게 된 것도 있다. 또한 고성이나 울산지방의 돌들처럼 토중에 묻혀있었으면서도 태고부터 각양각색의 형태를 갖춘 알돌도 있다.

 

우선 지표의 수석감은 손질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지면에 닿았던 부분은 일부 부패하거나 흙에 묻혀 풍화된 부분과 색깔이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런 돌의 잡물이나 흙을 제거할 때 잘못 다루면 천연으로 양석이 잘 된 부분까지 손상을 입힐 염려가 있다. 그러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표의 부분과 땅에 닿았던 부분이 異色이 져 보기싫은 것을 감추려고 기름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초보자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삼가는 것이 좋다. 풍화에 의해 마멸된 아름다움과 고태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돌에 기름을 바른다면 자연스럽게 양석된 돌의 예스러움을 죽이는 행위이다. 따라서 누렇게 보이는 부분은 흙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 말고 자주 물을 뿌려가며 양석을 돕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음 토중석의 손질은 다르다. 흙 속에서 채굴한 원석은 다갈색의 산화토에 싸여 있거나 석회질이 배어있기도 하다. 이 원석을 송곳 같은 것을 이용하여 물에 담가가며 본체가 드러나도록 외피를 털어내어 형태가 드러나도록 한다. 이 상태를 황석(거친 돌)이라 한다. 이것은 쇠솔이나 바늘을 여러 개 묶어 긁어낼 수 있는데 까지 긁어준다.

 

원석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비눗물로 씻어준다. 그 다음에 물기를 말려보면 산화토의 남은 흔적을 알 수 있다. 산화토의 색이 사라지고 원석의 원색이 확연해질 때까지 쇠솔과 바늘을 이용하여 손질한다. 물에 담갔다가 말리고 색감을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하여 훌륭한 광택이 나도록 한다.

 

이 작업에서 성급하게 서두르면 돌 표면의 굴곡 부분이나 주름살이 떨어져 나갈 염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마무리 작업 뒤에는 마른걸레로 자주 문질러주면 윤이 난다. 특히 강조할 점은 염산 같은 약품으로 산처리를 하면 돌의 원색이 변하기 쉽고 주름 사이에 들어가 돌이 쪼개질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마무리 작업의 결과와 돌의 개성에 따라 퇴적변성암대의 돌은 수반에 앉힐 돌도 있다. 그러나 주로 좌대에 받칠 돌이 더 많다. 화대에 올리는 경우 호두나 잣기름을 표피의 돋아난 부분에만 약간 발라주면 주름이나 색깔이 훨씬 돋보이게 된다.

수석의 손질법은 더러움을 지우고 광택을 내는 정도가 좋다. 천연의 형에 볼만한 점이 있으면 한점의 가공도 해서는 안 된다. 돌을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것은 돌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돌의 일부분을 떼어내거나 깎는 행위는 돌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 수석의 생명은 자연석에 있으므로 자연석이 본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양석(養石)의 고차원적인 취미

양석이란 돌에 古色의 맛을 붙이는 일이다. 강에서 탐색한 돌은 그대로의 상태로는 돌갗이나 석질의 맛을 느낄 수는 없다. 아무리 모양이 잘 다듬어져 있어도 그것으로부터 풍기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고색의 맛을 붙이려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돌을 가꾸고 애완하는 정신이 수석의 본질이며 양석의 목적이다. 수석생활의 가장 심오한 경지는 약석인 것이다. 양석이라는 과정을 터득하지 못하고는 수석의 진정한 기쁨을 얻기 어렵다. 수석이란 결국 돌의 품위를 더 높여주는 필수과정이다.



고서에 보면 삼양(三養)이란 말이 있다. 삼양이란 원래 안분이양복(安分而養福: 자기의 분수를 알고 편안히 복을 기른다.)이라 했다. 이를 적용하여 수석의 기본정신을 다음 세 가지로 정의해보았다.


첫째, 사람의 심신과 장생을 도모하기 위해서 ‘養生’을 하는 것과 일치한다.

둘째, 수석미의 탐구는 자기의 인격을 수양하기 위한 하나의 취미생활이므로 ‘養德’을 하는 것이다.

셋째, 애석 생활은 백팔번뇌를 털어버리고 좌선(坐禪)하는 자세로 조용한 정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곧 ‘養靜’이라 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양석은 곧 양생, 양덕, 양정이라 함이 타당할 것이다.

올바른 양석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석인의 자세이다. 즉 애석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기본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양정과 양정의 자세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석미의 탐구정신은 어디까지나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애석인은 선비의 자세로 애석생활을 누려야지 자기과시를 위해 애석하는 것은 돌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한 애석인이 아니면 양석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돌에 고태를 내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혹자는 분재는 생물이라 공을 들여 기르면 재미가 있는데 수석은 변화가 없어 흥미가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양석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반론이 되기도 한다.

돌은 분재와 마찬가지로 돌밭에서 갓 주어온 새돌은 그 형태가 아무리 좋아도 깊은 맛은 없기 때문에 명석이 되기 힘들다. 돌도 나무와 같이 적어도 10년 이상 양석이 되어 은은하고 유현한 정취가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명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양석법

좌대석 양석법

좌대석의 양석법은 간단하다. 좌대에 앉힌 돌을 틈이 나는 대로 손이나 부드러운 천으로 자주 문질러 주면된다. 돌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으나 손을 대거나 문지르면 안 되는 돌은 수반석이다. 좌대석은 가급적이면 자주 어루만지고 문질러 주는 것이 양석의 지름길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돌에 포마드나 기름 종류를 바르는 사례가 많은데 이런 행위는 상인들이나 할 짓이니 애석인은 피해야 한다. 돌에 기름이나 포마드를 바르면 돌의 개성인 자연미가 **버릴 뿐 아니라 끈적끈적해서 보기도 흉하고 천박해 보인다.

오랜 세월 공을 들이면 자연 고태가 나고 그 돌이 지닌 본래의 색감과 피질이 그대로 나타나 윤기가 나고 마음 또한 윤택해질 것이다.


수반석 양석법

수반에 얹은 돌은 주로 산수경석 종류이다. 이 산수경석이야말로 수석의 주종으로 양석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다. 양석하는 방법은 돌을 수반이나 일정한 장소에 놓고 분무기로 매일 물을 뿌려주면 된다. 사용하는 물은 깨끗한 지하수나 냇물이 좋다. 만일 수돗물을 사용할 경우에는 물통에 받아두었다가 2~3일 지난 후 사용하도록 한다. 수돗물에는 알칼리성 약품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돌의 색깔이 뿌옇게 변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매일 3~5회씩 되풀이해서 뿌려주면 석질에 따라서 이끼가 돋은 돌은 고색이 창연하여 그윽한 정취가 나타난다. 단단하고 기름진 돌은 2,3년 까지는 돌의 색깔이 뿌옇게 변했다가 4,5년 이 되는 해부터는 돌의 돌출부분부터 점점 원색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색깔이 눈에 보이게 변해간다.

 

산지나 석질에 따라서는 4,5년 동안 열심히 물을 뿌려주면 거의 양석이 다 되는 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10년은 지나야 돌 전체의 색깔이 원색으로 환원되어 고태미가 완연히 드러난다.

양석을 하는 데는 2,3년 동안이 고비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아무리 검은 진흑색도 이 기간동안은 색이 뿌옇게 변하여 퇴색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는 바로 양석은 기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한 자세로 끈기와 정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시간 나는 대로 부지런히 양석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양석장과 햇빛의 효과

양석장은 마당 한쪽 적당한 곳에 벽돌이나 블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에 판자를 깔고 수반을 놓으면 된다. 마당에 적당한 곳이 없으면 옥상이나 베란다 등 아무 장소나 무방하다.

태양과의 관계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이끼를 입힌 돌은 반 양지나 음지가 적당하다. 단단한 돌은 일광이 바로 비치는 곳이 가장 좋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도 양석은 가능하다. 석질에 따라서는 음지가 양지보다 양석 기간이 빠른 돌도 있다. 그러나 양석은 풍상에 시달리며 햇빛을 받아야 제대로 된다고 본다.

 

이 밖에 촉성 방법으로 온실이나 정원수 밑에 돌을 놓아두고 돌에 습기가 마르지 않도록 계속 물을 뿌려주어 이끼가 돋아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뜨거운 물을 자주 뿌려 속성법으로 생기게 하는 방법도 있으며, 인공 속성법으로 이끼의 포자를 진흙과 함께 돌 표면에 발라 이끼를 돋게 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야생 이끼를 돌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위에서 열거한 촉성 방법은 참고로 적었을 뿐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니 유의하는 것이 좋다.

 

 



주의할 점

1. 양석 중에 있는 돌은 손으로 만지거나 자주 자리를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손으로 만지면 손에 기름기가 있어 만진 부분은 이끼가 죽거나 양석이 잘 안 된다. 만일 옮길 때에는 돌 밑 부분에 손을 넣어서 드는 것이 좋다.


2. 수반에는 반드시 모래를 깔고 물을 뿌릴 때에는 돌에만 뿌려야 한다. 모래를 깔지 않거나 수반에 물을 가득 채워놓으면 돌이 물에 잠긴 부부은 흰 물이끼가 끼어 오래되면 될 수록 잘 지워지지 않게 된다.


3. 수반에 얹지 않고 판자 위에 놓고 물을 뿌릴 때에는 돌 밑 부분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물이 고이면 먼지나 불순물이 끼어 더러운 이끼가 된다.


4. 양석장이 협소해도 절대로 돌 위에 돌을 포개어 놓아서는 안 된다. 만일 포개서 놓으면 돌끼리 서로 부딪쳐서 돌이 상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밑에 깔린 돌은 양석이 되지 않는다.


5. 돌에 화공약품을 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탐석해온 돌중에 흙때나 물때가 묻어서 보기 흉하다고 염산 등으로 산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알던 산에 담그면 양석 기간은 배로 길어진다. 자칫 잘못하면 돌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무생물인 돌을 가꾸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생물보다 더 미묘한 움직임으로 변하는 무생물이 바로 수석이다.

우리 수석인들은 손바닥보다 좁은 돌의 평면에서 광활한 평원을 보며 즐길 수 있다. 또한 아주 짧은 이끼들에서 해묵은 노송의 숲을 볼 수 있으며, 한모금도 안 되는 물고임에서 안개 자욱한 호수를 본다. 그 뿐인가 좌대석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윤기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

 

농부는 일년이란 시간을 가꾸어야 결실을 본다. 그러나 수석은 수 년을 가꾸어야 마음의 결실과 함께 감상의 결실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긴 세월 속에서 수석이 탄생한다는 점을 모든이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돌을 줍는 순간 수석이 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모든 수석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양석이라는 과정을 요하는 수석생활을 우리 스스로 경험하고 몸으로 익혀 수석이 주는 최대의 기쁨을 만끽해 보자.

 

색채석의 연마법



가. 원석의 선택

색채석을 연마할 때는 그 이전에 반드시 원석의 선택과 식별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원석에 얼이 들었다든가 결정질이 나쁘다든지, 색상의 선명도가 흐리다든지 하면 모처럼의 힘든 작업이 무위(無爲)해지기 때문이다.

식별방법은 우선 원석을 비눗물이나 세제에 넣어 깨끗이 씻은 다음 맑은 물에 담가 그 원석이 지닌 색상의 선명도를 감식한다. 색감이 마음에 들면 쇠망치로 가볍게 두들겨보아 만약 잡음이 나면 이것은 돌에 얼이 있어 작업 중 깨지든가 부서져 버리는 수가 많다.

또 한 가지 감식법은 한쪽 손바닥을 돌에 대고 두들기면 손바닥에 울리는 감각이 달라진다. 육감에 의한 감식법일지 몰라도 대개의 경우 균열인가 아닌가를 선별할 수 있다.



나. 연마에 필요한 도구

우선 그라인더가 필요하다. 그라인더에는 탁상용과 휴대용, 그리고 케이블 그라인더가 있다. 여기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금강석(靑色砥石 G. C)은 입도(粒度) 80번으로 기초적인 연마부터 시작한 다음 100번 지석으로 한점의 얼이나 흠이 없도록 깨끗이 마석하여야 한다. 이상은 경도가 7도 이하일 때이고 원석이 7도 이상으로 단단할 때는 지석 100번으로 기초연마를 하고 난 뒤에 120번으로 마무리 짓는 연마가 한층 효과적이다.

연마작업의 비결은 연마할 때 무리하게 눌러서 연마하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살살 갈아야 기계에도 무리가 없고 마석도 잘된다. 돌이 깎이는 것은 사람의 힘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의 회전력에 의한 마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라인더 작업이 끝나면 다음에는 손으로 수성 샌드페이퍼로 물칠을 하며 연마해야 한다. 기초 연마에는 120번부터 시작하여 220, 320, 400번의 순으로 먼저 닦은 페이퍼 자국이 없어지도록 닦으면 반광택이 난다.

그 다음은 광택작업이다. 이 때는 수성이나 건성 샌드페이퍼가 무방하며 600번, 800번, 1,000번의 순으로 문지른다. 이 때 물칠을 하지 말고 마른 페이퍼로 연마하고 더욱 광택을 내고자 할 때는 가죽으로 문지르거나 광택제 ‘산화크림’을 헝겊에 발라서 문지르면 보석처럼 빛난다.


수반연출의 기본

산지에서 보기 좋은 수석감을 탐석하였다면 이것은 자연미의 한 발견이다. 이것을 다시 수석답게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면 여러 가지 부대물을 사용하여 창작적인 기교를 구사해야 한다. 이것을 연출이라고 한다

 

연출이라는 말은 본래 연극이나 영화에서 쓰이는 용어로 각본에 의거하여 배우의 연기, 무대장치, 조명, 여러 가지 소도구와 의상 등을 동원하여 효과를 나타낼 때에 연출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석도 여러 가지 부대물을 이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수석미를 돋보이는 작업이 요구되므로 이 경우 역시 연출이라 부르게 되었다.

 

수석을 수석답게 잘 모셔서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면 수반과 모래와 좌대와 물, 더 격조 높게 하기위해 화분이나 감상품을 값지게 보이도록 올려놓는 화판 따위가 필요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부대물을 결합하여 통일과 조화를 이뤄 수석 주체의 미를 돋보이게 하는 총체미 구성에 대한 심미안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수석미에 대해 눈이 밝고 세련되어야 한다.

수석 연출을 크게 나누면 수반 연출과 좌대 연출이 있는데 여기서 차원을 높여갈 것 같으면 수석의 배열 장식, 수석이 놓이는 장소의 분위기와 배경, 또 조명 등을 깊이 있게 다루게 된다.

 

수석을 누리는 경지가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느냐 하는 것을 헤아려 보려면 그가 수석을 연출하는 솜씨를 보면 대번에 나타난다. 연출의 효과를 나타내어 수석의 참다운 모습을 잘 살려내었을 때 이제 비로소 수석의 가치가 나타나며 아울러 애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수석의 각양각색에 따라서 좌대로 받쳐주어야 할 것이 따로 있고, 반면에 수반에 놓아 연출할 것이 따로 있다. 또는 그 이외의 독특한 방법으로 연출의 묘미를 살려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무턱대고 좌대 받침으로만 일관한다든지 수반연출에만 의존한다면 수석 나름의 개성과 장점을 돋보이는데 차질이 많이 생긴다. 참되게 수석을 즐기려 한다면 그 수석이 지닌 개성과 장점에 맞추어 연출기법을 다양하게 구사해야 한다.

연출은 수석의 최종 마무리이며 이것이 없이는 수석의 경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탐석 이후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야 즐거운 감상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水盤의 形과 연출


수반의 형에는 장방형(長方形), 직사각형, 타원형, 원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장방형과 타원형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운두의 높고 낮음이 있으며, 크기의 규격도 다양하다.

어떤 형에 어떤 수석이 알맞은가 하는 것도 필설(筆舌)로 다 할 수는 없는 미묘한 심미상의 감각이지만 비교적 흔히 애용하는 방식으로는 미끈하게 율동감을 주는 것은 장방형을 사용하고, 사방에서 관상할 수 있는 거의 원형인 고도와 같은 형의 수석은 원형에 넣어 관상하면 좋다.

 

그리고 수반은 수석과 균형 잡힌 비례로 조화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고 평화로운 안정감도 있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첫째, 돌의 형태와 크기에 잘 어울릴 수반의 모양과 크기를 선택하여야 한다. 수반에 돌을 놓는다는 것은 우리가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어 입는 것과 같아 옷이 헐렁하든가 꽉 끼면 꼴불견이다.

 

수석도 마찬가지로 큰 수반에 작은 돌을 놓으면 헐렁하여 공허한 느낌뿐이고, 작은 수반에 큰 돌을 놓으면 꽉 끼어 구속하고 압박하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맞는 옷, 즉 돌과 수반의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돌의 저변이 타원에 가까운 돌은 각 수반에, 돌의 저변이 네모 비슷하게 생긴 돌은 타원형 수반에 놓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다음은 수석의 고저에 따라 수반 운두의 높낮이를 택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절단한 산수경석은 운두가 낮은 것에 놓고, 밑면이 울퉁불퉁하여 연출상 모래로 밑면을 감추어줄 경우에는 운두가 높은 것을 쓰게 된다. 또 산형의 고저에 따라 높은 산봉형에는 운두가 높은 것을, 평원석 같이 나지막한 풍경에는 운두가 낮은 것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듯 돌 형태와 운두 높이의 비례도 참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지막한 평원석을 운두 높은 수반에 놓았다고 하자. 높은 울타리에 감싸인 듯한 평원석이 돋보일 리 만무하다. 아무리 좋은 돌이라도 수반연출의 기교를 제대로 살려주지 않는다면 흔한 몽돌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모래의 연출방법

수석 연출에 있어서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모래이다. 우선 수반 위에 돌을 놓을 때 깔아놓는 것이 모래이다. 경우에 따라 모래 없이 물만 채워놓든가 잔잔한 이끼를 깔아놓는 수도 있다.

모래를 전혀 쓰지 않는 경우는 밑면이 비교적 앉음새가 좋은 자연석일 때뿐이다. 이것은 완전자연석이라는 긍지와 자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절단한 것처럼 안정된 앉음새의 자연석은 정말 신기와 신비로움에 자랑스럽고 대견하기 때문이다.

그림 A의 돌은 얼핏 보면 강에 흔히 있는 동그스름한 몽돌 같다. 대개 이런 돌은 집었다가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선의 유연함을 알게 되고 아쉬움이 남게 된다.

 

그림 B와 같이 좌우측에 자갈로 괴어주고 모래로 감싸주면 훌륭한 원산이 된다. 이때 운두가 높은 수반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어느 면을 돋보이게 하고 어느 쪽을 밑면으로 하여 전체의 균형과 형태미를 찾아내느냐는 오랜 연구와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달려있다.

그림 C는 모래 위에 생긴 그대로 놓은 것이므로 이 돌의 치부인 들뜬 부분이 노출되어 보기 흉하다. 이럴 때 그림 D처럼 숨길 부분은 모래를 덮어 감추고 밑면의 드나듦의 선을 잘 살려 변화 있는 景을 만든다.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연출은 창의력에 의하여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흔히 수반위에 돌을 놓을 때에는 모래부터 먼저 깔고 놓는 수가 허다하다. 이와 정반대로 돌부터 놓고 모래를 까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저변의 드나듦의 작은 부분까지도 변화의 자연스러움을 줄 T 있고, 절단한 돌일 경우에는 날카로운 모서리를 자연스럽게 덮어주어 되도록 인공의 냄새를 없애는데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반과 수석의 포인트

수반의 크기와 돌과의 균형은 대체로 돌 2에 대하여 수반 3의 비율이 가장 잘 조화되는 것 같다. 예컨대 좌우 40cm인 돌에는 60cm 정도의 수반이 적합한 것이다. 이 정도의 여유가 없으면 수석이 지니는 景이 크게 돋보이지 않고 연상의 펼쳐짐을 즐길 수가 없다.

 

수반은 단지 수석을 넣기만 하는 용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 연출상의 용구이기 때문에, 그 비례에 따른 배려를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좌우 어느 쪽에 치우쳐야 할 것인가. 그것은 수석의 형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수석에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중점(重點)이 있게 마련이다. 즉, 산형의 경우 주봉이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면 우중점(右重點), 왼쪽에 치우쳐 있다면 좌중점(左重點)이 된다.

 

이 중점에 따라 우중점인 것은 수반에 놓을 때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놓고, 좌중점인 경우에는 그 반대로 한다. 또한 거의 원형으로 중점이 없는 돌이라면 대체로 중앙에 놓은 것이 무난하다.

산형이외의 돌은 산형에 준하여 뻗어남이 강한 곳을 포인트로 하여 앉히는 법을 연구하면 된다. 또한 앞뒤의 위치는 원칙으로 얼마간 뒤쪽으로 치우쳐 놓는다. 될 수 있는 대로 앞면의 면적을 넓게 잡아 광활한 공간의 미와 원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괴석 연출의 목적

한 덩이 돌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양식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돌의 연출에 있어서는 과거나 현재나 몇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먼저 돌의 안정감 유지이다. 현대수석에 있어서도 안정감 유지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돌의 밑면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괴석에서는 안정감이야말로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당시의 분이나 좌대가 현대수석에서보다 훨씬 높고 두꺼웠던 것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로 돌이 지닌 개성이나 특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괴석에서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돌들이 즐겨 완상되었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세심한 정성을 들였을 것이다.

세 번째로 돌을 귀하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다. 현대수석에서는 지나친 치장을 피하고 있지만 돌을 신성하게 여겼던 괴석에서는 어쩌면 이에 가장 정성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괴석의 연출물들이 귀한 화로나 향로, 솥 같은 것들이었던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상의 운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옛 석인들 역시 현대수석인들처럼 돌에 정성을 들일 때 감상의 운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괴석 연출의 목적

한 덩이 돌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양식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돌의 연출에 있어서는 과거나 현재나 몇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먼저 돌의 안정감 유지이다. 현대수석에 있어서도 안정감 유지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돌의 밑면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괴석에서는 안정감이야말로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당시의 분이나 좌대가 현대수석에서보다 훨씬 높고 두꺼웠던 것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로 돌이 지닌 개성이나 특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괴석에서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돌들이 즐겨 완상되었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세심한 정성을 들였을 것이다.

 

세 번째로 돌을 귀하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다. 현대수석에서는 지나친 치장을 피하고 있지만 돌을 신성하게 여겼던 괴석에서는 어쩌면 이에 가장 정성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괴석의 연출물들이 귀한 화로나 향로, 솥 같은 것들이었던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상의 운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옛 석인들 역시 현대수석인들처럼 돌에 정성을 들일 때 감상의 운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원석의 연출기법

정원석의 연출은 돌의 크기나 형태에 따라 다르기는 했겠지만 대부분 석분을 만들어 돌을 올려놓았다. 송대 소식이 쓴 「설랑석(雪浪石)」의 시를 보면 ‘옥정의 연꽃이 열여덟 자 분에 앉아서 밑으로 흐르는 물에 뿌리를 씻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소식의 설랑석은 아주 큰 분에 놓여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운림석보에서)

 

돌을 올려놓은 석분은 양식도 다양하여 타원형이 있는가 하면 장방형,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이 있었다. 분에 새긴 문양 또한 다양하여 해태, 봉황, 학, 두꺼비 같은 동물을 새긴 것이 있었다. 매, 난, 국,죽, 소나무 같은 식물을 조각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주(瀛州)’와 같은 글씨를 새겨놓기도 하였다.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를 분에 새겨 월궁 속의 비경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들도 있다.


실내석의 연출

실내석의 연출은 분과 좌대를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수석에서와 같은 운두가 낮고 면이 넓은 수반이 아니라 면이 좁고 두꺼운 것들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향로나 화로 솥이나 약탕기 같은 고기(古器)들이 즐겨 사용된 것이다. 좌대 역시 두껍고 화려하게 조각했다.

송나라 애석인 소식은 그가 아꼈던 구지석을 고려에서 가져온 분에 담아두고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문인 강희안은 ‘돌을 정로(鼎爐)에 올려놓으면 물기를 꼭대기까지 빨아올린다.’고 하였다. 정조대왕의 「태호석기」에는 ‘돌을 잘 말려 주나라 때의 삼족솥과 선덕왕대에 만든 화로에 담아 창가에 나란히 세워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그 가운데서 중국풍의 괴석류에 해당하는 추상석이다. 위 괴석을 보면 먼저 중국 북송시대의 서화가인 미원장(米元章(미불(米?))의 ‘사원칙상석법(四原則相石法)’이 떠오른다. ‘嫂(수) ? 秀(수) ? 透(투) ? ?(준)', 이 4가지 원칙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수(嫂)로서, 여위게 마르면서도 강인한 힘의 선이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수(秀)적인 요소로서, 빼어나고 고만한 기품이 감돌고 있다. 그 다음 투(透)는 중심 부분에 깊은 구멍이 뚫려있다. 그리고 준(?)은 무수한 주름과 거기 따른 세월감 ? 고태감이 깃들여 있다. 이렇게 보면 이 괴석은 미원장이 애완할 수 있는 기암괴석의 조건은 다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외형적인 형태미일 뿐, 추상에서 추구하는 내면의 세계는 이제부터이다. 사진을 찬찬히 감상하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의 ‘마음의 그림’, 또는 ‘마음의 돌’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


훌륭한 좌대 만들기



좌대석은 물씻김이 잘 된 돌을 실내에 두고 관상하는 돌과, 색채와 무늬를 보는 돌을 받침 하는 나무 조각의 연출이다. 물씻김이 잘되고 질감이 좋은 돌은 표피의 감촉도 좋으므로 매양 어루만지면서 수석과의 대화를 구한다. 이처럼 매만져 가며 윤기에 고태미를 더해가는 돌은 반드시 양질의 나무로 조각한 좌대에 올려야 한다.

 

좌대는 돌의 밑면이 허술할 때 그것을 감추어 주며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좌대는 수석의 생김새에 따라 모양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크기와 부피의 면에서 규격이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좌대가 갖추어야할 기본 조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 산수경석의 좌대는 경상(景狀)의 요점이 좌우나 전후의 끝부분에 있으므로 정상을 정점으로 곧게 앉히고 틀린 곳이 없도록 파내야 한다. 이때 좌대의 부피로 노출된 흠을 감출 수 없으면 화대를 받친 것 같이 이중의 송판을 파서라도 불안한 끝부분의 노출된 흠을 없애주어야 한다.

 

둘째, 물형석의 좌대는 물형이 가장 돋보이도록 배치하고 받쳐주어야 한다. 이때 물형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돌의 밑부분과 조각되는 나무와의 사이에 공간이 없도록 파주어야 돌이 설 수 있다. 만약 돌이 앉는 부분만 맞추고 그 속의 파인 공간을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불안정하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움직여도 흔들릴 염려가 있으니 먹지를 대가며 닿는 자리를 파주어 이가 맞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좌대의 마무리인 다리를 만드는 경우 앉힌 물형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좋지 못한 방법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다리의 제작은 일반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색채석이나 문양석의 좌대에서 유의할 점은 색깔이나 무늬의 가장 돋보이는 점을 잘 살리도록 고안해서 만들어야 한다. 무늬나 색깔의 중요한 부분이 좌대에 묻히는 경우는 그 부분을 살리기 위해 좌대의 상부를 파내려 곡을 지어서라도 볼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

 

넷째, 좌대는 일반적으로 평석이거나 평탄한 느낌이 드는 돌에는 부피가 얇은 좌대라야 시원한 느낌이 생긴다. 반면에 입석이거나 중량감이 있는 돌에는 두툼하고 묵직한 좌대가 알맞다. 그러나 좌대는 주인격인 수석을 보좌하는 것인 만큼 너무 얇으면 빈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또 너무 투박하면 수석과의 일체감이 떨어진다.

 

다섯째, 테두리는 되도록 직선을 피하고 약간 둥근 것이 좋다. 너무 받침을 호화롭게 하여 수석보다 좌대에 먼저 눈이 가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니 그런 수고는 피해야 한다.

 

여섯째, 좌대의 다리는 돌의 무게가 쏠리는 듯한 곳에 달아야 안정감이 있다. 가능하면 홀수로 붙이는 것이 균형미가 있다.


좌대는 단지 수석을 돋보이는데 그칠 뿐 아니라 위에 놓인 수석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며, 여러 가지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소 밑면고정이 잘 안되는 수석이라도 좌대의 조절 여하로 훌륭하게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돋보이게 하고 또 보조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좌대에는 좌대로서의 훌륭함이 있어야 한다. 그 포인트가 되는 몇 가지를 들어본다.


① 좌대는 말하자면 서화(書畵)에 있어서의 표구나 액자 같은 것이므로, 돌에 대하여 되도록 단순하고 간결한 형이어야 한다.

② 수석과의 균형은 일체화되어 있음이 바람직하다. 원칙적으로는 평석이나 평탄한 느낌의 돌에는 매우 얇고 시원한 느낌의 좌대가 좋고, 반대로 입석이나 양각이 있는 돌에는 두툼하고 묵직한 좌대가 알맞다.

③ 산수경석인 경우에는 양단의 기슭이 좌대에서 너무 뜨면 경(景)의 벌어짐을 연상하기 어려우므로 되도록 지평과 연결되도록 하여야한다.

④ 테두리는 되도록 직선을 피하고 아주 약간의 굽이침을 가지게 하면 연상으로의 세계에 이화감이 없고 끌려들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⑤ 발은 본래 동물의 발처럼 밑부분이 퍼진 듯한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그 퍼짐은 최소한으로 적은 것이 바람직하다. 좌우 양쪽과 역학상의 포인트에 알맞게 하고, 더욱이 바깥쪽으로 나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⑥ 좌대의 밑부분은 반드시 공간을 두도록 한다. 좌대의 다리가 있는 밑부분에 공간이 없으면 천한 느낌을 준다.


좌대는 이른바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만들어도 되지만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쉽사리 좋은 좌대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원래 그것은 수석이 지닌 가장 좋은 점의 추구이기도 한 것이므로 수석에 대한 심미안을 키우는데 있어서 크게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발견하고 마음에 든 수석에 가장 알맞은 좌대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이 취미에 있어서의 진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좌대 만들기의 기법을 간추려 설명한다. 다만 이는 전문적인 기법의 공개가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방법을 소개한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

① 톱: 쓰기에 따라 큰톱과 실톱이 필요하다. 나무를 절단하거나 받침의 모서리를 자른다.

② 끌: 끝의 날이 1cm 내외의 것이 좋다. 받침의 상부 또는 하부를 파낼 때 쓰인다.

③ 고무망치: 끌을 두들기거나 돌 상부를 두들길 때 긴요하다.

④ 칼: 구두 수선할 때 쓰는 칼이다. 받침 모서리를 톱으로 잘라 낸 다음 이 칼로 다듬어 낸다.

⑤ 조각도: 받침 상하부분을 파낼 때 쓴다. 필요한 조각도는 환도? 평도? 이도? 각도? 환각도 등 8㎜ 내외의 것이 적당하다.

⑥ 샌드페이퍼: 좌대를 마무리 할 때 쓰인다. 80번부터 600번 까지 쓴다.

⑦ 도료: 완성된 좌대를 착색할 때 쓴다. 왁스에는 유광과 무광이 있다. 기호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좌대의 소재로는 질이 단단하고 끈기가 있으며 나무 결이 곧은 것이 좋다. 또한 건조해도 갈라지는 일이 없는 목재를 골라야 한다. 고급에 속하는 재료로는 자단(紫檀)? 괴목? 모과나무? 호두나무? 대추나무? 참죽나무 등이 있다. 그러나 나무의 성질이 강해서 조각하기에 무척 힘이 드는 결함도 있다.

파기 쉬운 나무로는 피나무? 나왕? 마디카? 은행나무? 벚꽃나무? 향나무 등이 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이 하기 쉬운 소재로는 피나무 또는 나왕 종류이지만 좌대로의 볼품으로는 품위가 작다.

이들 대개는 판자로 제재한 것을 목재상회나 제재소에서 구입하면 되겠지만 제작에 있어서는 충분히 마른나무, 마른 판자를 써야 한다.


좌대제작의 순서


(1) 윤곽그리기

두꺼운 작업대 위에 대재(臺材)를 놓고 작업하기 쉽도록 고정시킨다. 수석의 정면이 결정되고 대략적인 각도 등이 정해지면 우선 형 그리기를 한다.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돌을 대재 위에 올려놓고 돌의 주위를 연필이나 매직으로 그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퍼티? 진흙? 석고 등을 얕은 상자에 담고 그 위에 엷은 비닐이나 폴리에틸렌을 깔고 다시 그 위에 돌을 올려놓고 소정의 선까지 누른 다음 돌을 치움으로써 퍼티 위에 ‘凹’ 형을 만든 다음 그것을 대재 위로 옮겨 그려 윤곽을 정하는 방법이다. 어느 방법이든 무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먼저의 방법이 간편할 것으로 생각된다.


(2) 파내기

윤곽 잡기가 끝나면 끌로 파들어 간다. 이때 중앙부에서 바깥쪽으로 나무 결에 따라 잘 드는 끌로 한다. 어느 정도 일정한 깊이로 파낸 다음에는 수석의 밑면에 숯 칠을 하고 대재에 눌려 숯칠 자국이 남은 데를 다시 파 나간다. 숯 대신에 먹지를 까는 방법도 있다. 아무튼 이 작업은 한번에 끝내지 말고 쉬어 가면서 몇 번씩이나 수석의 밑바닥 부분이 닿는 상태를 확인하여 너무 깊이 파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3) 테두리

테두리의 잘라내기는 그 수석의 모양 등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을 내린 다음 선을 연필이나 매직으로 그려 넣어 톱으로 잘라낸다. 또한 주위의 폭과 테두리의 요철(凹凸)을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문제이지만 이는 전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 수석마다 심미적으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4) 몸체

동체는 직선으로 하기 보다는 얼마간 둥근 느낌을 갖게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수석의 이미지에 융합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좌우의 여백은 적은편이 짜임새가 있어 보이고, 앞뒤는 얼마간 여백을 두는 편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통틀어 수석은 약간 위에서 관상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체는 아래가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하는 편이 아름답게 보인다.


(5) 다리의 위치

다음에 다라의 우치를 정하고 수를 정한다. 다리는 좌대에 있어서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 전체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위치는 원칙적으로 전후좌우 중 바깥쪽으로 뻗어 나온 곳으로 하되 균형으로 보아 많이 몰리는 곳으로 해야 할 것이다. 자만 수에 있어서는 너무 많으면 협소한 느낌을 주게 되므로 되도록 적게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이가 떨어져 있으면 불안정하므로 그 균형과 미적감감을 잘 살려 정해야 한다.

다리의 모양은 古來의 밥상다리? 책상다리? 장롱다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되도록 단순하고 그다지 요란스럽지 않은 것이 무난할 것이다. 아무튼 발이 퍼진 형 즉 끝이 퍼진 형으로 하되 다리가 붙는 언저리가 직각이 되지 않고 둥근 형으로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6) 밑부분

밑부분은 보이지 않는 곳이라 소홀히 하기가 쉽다. 끌자국 정도는 정리를 해야 하며 특히 주위를 너무 파서 돌과의 사이에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7) 바닥 뒷면

좌대의 바닥 뒷면의 처리는 전체의 조화로 보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제작자의 성의 있는 태도가 보여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역시 유의하여 손질할 부분이다. 바닥 뒷면을 평탄하게 하거나 다리와 다리를 이은 선을 두드러지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처리법이 있지만 올려놓은 수석에 어울리는 방법이라면 어느 것이든 무방할 것이다. 다만 좌대 바닥의 뒷면을 얼마간 바람이 통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8) 마무리

목공용 줄칼로 거친 것? 중간 것? 가는 것 등 세 종류를 사용하여 닦고 그 위에 수성 페이퍼로 역시 세 종류(120번~600번)를 사용하여 닦아낸다. 자단과 같이 나무바탕이 좋은 것이면 소량의 유성분이나 밀랍을 면포로 잘 문질러 주기만 해도 광택이 잘 난다.


(9) 칠하기

나왕과 같이 무늬가 없고 살결이 거칠고 조그마한 구공이 많은 나무는 ‘눈메우기’를 하여야 한다.

락카 원액 30cc, 카 시너 60cc, 황토분 5~10을 준비한 다음 시너 용액에 황토분을 넣어 잘 젓고 거기에 락카 원액을 넣어 고루고루 섞은 뒤 뿌옇게 됐을 때 칠한다. 칠한 후에 건조되면 사포 220번으로 문질러 주고서 또 칠한다. 이렇게 5~6회 정도 반복하면 나왕의 구공이 완전히 메워져 매끄럽고 부드럽게 보인다.

 

다음 착색할 때는 락카 원액 50cc, 락카시너 100cc에 스테인 색소를 적당량 준비한다. 유의할 점은 위의 배합한 양을 여러 번 칠해야 되기 때문에 스테인 색소를 진하게 타면 곤란하다.

스테인은 색깔을 배합할 때 쓰는 색의 원소(元素)인데 그 색은 여러 가지가 많으므로 졸과 받침과의 색의 대비 색상을 선택하면 되겠다. 그리고 받침의 광택도 돌에 맞추어 무광과 유광을 선택하면 되겠다. 재체적으로 받침의 윤택은 은은한 무광을 즐기는 경향이 많다.

받침의 광택이 너무 날 것 같으면 아연인(亞鉛燐)을 소량 섞는다. 또한 차분(茶粉)을 온수로 용해하여 얼룩지지 않도록 칠하는 방법도 있다. 그 위에 과망간산 1에 重크롬 10의 비율로 온수에 풀어 끓인 것을 솔로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함으로써 마무리 하는 방법도 있다.


도료의 종류


가. 니스

① 라크니스: 엷은 황색이 나고 건조는 빠르나 무늬가 나타나지 않는다. 열에 약하고 알코올에 타서 쓴다.

② 손건니스: 질이 낮고 수명이 짧은데 비해 윤택은 좋다.

③ 스파와니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며 무색과 유광이 있다. 휘발유에 타서 쓴다.


나. 락카

① 투명락카: 유광과 무광이 있으며 시너에 타서 쓴다.

② 색소락카: 역시 유광과 무광이 있다.


락카를 사용할 때는 처음에 진하게 칠하다가 점차로 약하게 칠하면서 끝내면 표면이 부드럽고 윤택이 잘 난다. 너무 진하게만 칠하면 락카가 서로 엉겨 붙어 보기 흉해진다. 또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붓이 한번 지나간 자리는 재차 칠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칠할 때 유광락카와 무광락카를 적당히 배합(4:6 또는 3:7)하면 윤택이 아름다워진다. 또 무늬를 주로 살리려고 할 때는 유광락카를 먼저 3,4회 칠한 다음 무광락카로 한두 번 칠하면 윤택은 없어지고 무늬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또 무광으로 칠한 다음 완전 건조시켜서 무명 헝겊이나 손으로 문질러 주면 은은하고 고색의 윤택을 볼 수 있다.


다. 옻칠

옻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만든 것으로 석유에 타서 쓰며 건조가 느린 것이 흠이다. 색으로는 황갈색과 米色 투명색 등이 있으며 윤택이 강하다. 한번 착색되면 몇 천 년이 지나도 부식이나 화학적인 변화가 없는 특징이 있다.


라. 카슈

대용 옻칠로 화학적으로 만든 도료이다. 윤택은 강하나 어딘가 품위가 없어 보인다. 주의할 것은 조그마한 먼지가 앉아도 눈에 띄기 때문에 주의가 깨끗한 곳에서 칠해야 한다.

 

연출의 보조품



종류는 탑? 초가? 조각배? 등대? 낚시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크기는 되도록 작은 것이 좋다. 너무 크면 주체인 수석의 경치가 작아지고 만다. 그리고 그 사용법에 있어서는 물론 무턱대고 쓴다고 효과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효과적인 이용법을 든다면 다음과 같다.


① 그 수석이 가지는 景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약해 무엇인가를 곁들이지 않으면 인상이 희박해지는 경우.

② 일단의 景은 갖추었지만 소도구를 곁들임으로써 한층 더 돋보이게 되는 경우.


다시 말하면 연출효과의 보조 역할을 하는 첨경 소도구(添景 小道具)는 어디까지나 그 수석의 景을 돕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① 그 수석이 가진 경관과 이화감이 있는 것은 안 된다. 예컨대 산경에 등대를 놓거나 호수의 느낌인데 평야의 경에 어울리는 초가를 놓아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② 놓는 장소의 선택도 퍽 어렵다. 대개의 경우 전면보다도 얼마간 뒤쪽으로 하는 편이 품위가 있어 보이고 또한 중앙부보다도 좌우 끝 쪽으로 치우쳐 놓은 편이 景에 무리가 없는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화대와 지판의 용도



수석에 사용되는 화대는 좊은 화대, 중화대, 다리가 낮은 화대 세 가지로 나누어 쓰인다. 재질은 당목, 흑단, 자단, 철도목, 모과나무, 귀목 등의 견고한 나무로 눈매가 가늘고 사용할수록 색채가 진해진다. 나무가 견목이기 때문에 마른걸레나 기름걸레로 자주 닦아주면 품격이 있는 광택이 난다.

 

높은 화대에는 원산형의 수석이 적합하며 중간 화대에는 힘이 있는 동문형이나 암형 등의 수석이 적합하다. 낮은 화대에는 입석경이나 호수경이 적합하다.

화대의 생명은 다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중요하다. 같은 화대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어도 다리의 생김새는 다양하다. 섬세한 것, 굵은 것, 가는 것, 긴 것, 둥근 것, 짧은 것, 사각인 것 등이 있다. 그러나 화대의 본판보다 다리가 굵으면 좋지 않다.

 

수석의 화대는 수석이 가진 경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리가 날씬해야 한다. 또한 요란하게 조각된 것은 경을 약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또 화대의 다리가 너무 굵으면 화대가 강하게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반을 화대위에 올려놓을 때 수반의 길이와 화대의 여백부분과의 조화에 주의해야 한다. 수반의 볼륨이 강하면 화대의 좌우에 여백을 많이 두어야 한다.

 

특히 화대의 상판에 사면으로 파인 선을 무시해서 수반이 그 선을 올라타고 있는 듯하게 보이면 시각적으로 불안하며 보기에 좋지 않다. 이것은 수반과 화대가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화대나 지판이든 수반의 규격에 맞도록 제작에 신경을 써야 한다.

화대의 상판선에 맞지 않을 때에는 앞줄을 살려 수반을 올려놓아야 한다. 경이 낮은 단석이나 토파, 갯바위와 같은 경석은 화대보다 낮은 지판을 사용하는 것이 돌이 돋보인다. 수반을 제작하는 도예가나 화대 지판의 제작자도 수석을 알고 난 뒤에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판은 화대와 같이 수석연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연출도구의 하나이다. 특히나 지판은 추상석의 연출에 아주 최적이다. 지판의 크기와 두께는 수반의 길이와 중후함에 따라 달라진다. 지판 역시 수석과 수반연출의 기법을 모르고서는 옳은 지판을 만들 수 없다.

 

지판의 옻칠은 중후한 색감을 주며 습기에 강하고 나무 자체의 피목을 보호한다. 마른걸레로 자주 닦아주면 자연의 광택을 드러내 지판의 품격을 높여준다.

주의할 점은 지판은 얇아야만 지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판이 두꺼우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또 지판은 추상석 연출에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화대 제작법

화대제작에 쓰이는 나무는 거의 통나무로 제작된다. 목재는 수십 년에 걸쳐 비바람에 시달리고 나무진이 완전히 제거된 목재를 선택해야 한다. 목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소품장을 만들려면 박달나무나 대추나무로 제작한다. 박달나무의 단단함은 마치 쇳덩이 같다. 대패질을 한다기보다 거의 줄과 칼로 벗겨내듯 깎는다. 가냘픈 나무에 못을 치는 것도 아니고 거의 물림만으로 지탱이 돼야 하는 것이다. 물림부분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물건의 생명을 좌우한다. 왜냐하면 나무가 단단할수록 접착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무른 나무의 경우 나왕을 보면 눈매가 굵고 무르기 때문에 접착강도(풀의 침투가 깊숙이 되어)가 강해진다. 하지만 박달나무나 대추나무 등을 보면 눈매가 잘고 단단해서 풀이 침투를 못하여 접착강도가 약할 수 있다.


아자형

아자형의 화대를 언뜻 보면 간단하고 멋이 없게 보이나 날씬한 천판과 다리의 모양이 고농에 동자가 올려진 듯해야 한다.


현해대(벼랑화대)

화대가 쭉 뻗어 올라간 것이 사다리 모양 같으나 그 기둥의 굵기가 1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멍을 파서 연결시키는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작업이다. 그러기에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화대란 조각이 많이 들어가고 화려해야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깨끗함과 선과 미가 이루어졌을 때 좋은 화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곡선화대

이 화대는 전체적인 면이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져 천판과 다리 사이에 자연스럽게 돌아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밑에 고정되어 있는 상의 흐름과의 조화가 이루어져 하나의 선으로 봐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화대의 관리방법

- 화대는 통나무와 접착제만으로 제작이 되기 때문에 햇빛에 너무 노출되면 틀어지고 깨진다. 그러므로 햇빛에 직접 노출시키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 습기가 차면 접착부분에 이상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습기를 피해주어야 한다.


- 수석이나 분재는 물을 자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장기간 한자리에 올려놓으면 물기에 의해 지장이 생긴다.



地板과 花臺(탁자)

형으로는 어디까지나 수석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므로 長方形이고 조각이 없는 단순하고 곧은 것이 좋을 것이다. 천연목의 뿌리 같은 것을 살린 것도 재미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수석의 인상을 줄어들게 하는 예가 많은 것 같다.

지판의 치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사용에 편한 것은 약시 50cm X 25cm 정도와 80cm X 35cm 정도일 것이다.

놓는 경우의 주의로는 우중적(右重的)인 것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놓고 좌중적(左重的)인 것은 얼마간 왼쪽으로 치우쳐 놓아야 한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크기의 비율은 수석 2에 대하여 지판 3정도는 최소한 있어야 할 것이다.

 

수석에 알맞은 탁자로는 당연히 고탁(高卓)보다도 평탁(平卓) 쪽이 좋고 그것도 사위(四圍)에 조각을 너무 하지 않는 것이 어울린다.

 

재질로는 자단(紫檀)? 흑단(黑檀)? 모과나무? 회양목 등 다종다양하며 매우 비싼 것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탁자의 값어치를 자랑하기 위한 진열이 아니므로 요컨대 그 수석에 어울리는 탁자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미상 멋지고 기품이 있으며 수석이 효과적으로 장식되어 사용하기 편한 것이면 무방하다. 또한 탁자에 놓을 경우에는 지판과는 다르므로 수석만 놓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수반이나 좌대를 위에 놓아서 장식해야 한다. 연출용이라기보다는 진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므로 탁자는 본래 역할에 어긋나지 않는 사용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운치 있는 진열의 구체적 방법



진열 장소의 분위기

동양적인 향기가 깃들어야 하고 서양적인 화려함은 가급적 표출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백이나 공간미를 살려 복잡한 분위기보다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진열된 수석을 조용히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즐기고 심신을 닦는 것은 동양인의 멋이며 자랑이다.

 

진열품에 대한 거리와 높이

수석 감상에 알맞은 거리는 얼마라고 못을 박을 수는 없으나 일반 미술품의 감상거리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림의 좌우 폭을 2~3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일반적인 견해이다.

 

수석도 이에 준한다면 수반의 폭의 2~3배 거리에서 감상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단 좌대에 세운 입석의 경우에는 폭보다 높이가 훨씬 크기 때문에 4~5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품석도 이에 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석의 진열 높이는 눈의 수평높이 이하에 놓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수석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미석이나 문양석 등은 시선의 수평높이 이상이나 이하로 진열해도 무방하다. 단 평원이나 호수, 원산석 같은 것은 가급적이면 시선의 수평선 아래로 진열하는 것이 좋고, 폭포석이나 문양석, 교형석, 투석류는 시선의 수평높이 위에 진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수반에 연출시킨 돌은 수평에서 하향 10~15도 사이가 좋을 것 같고 좌대에 연출한 돌은 수평 이상이나 이하라도 관계가 없으며 감상 적정선과 비슷한 높이라면 무난할 것이다.


선반장식과 列席 장식에 따른 연출법

선반장식

이 장식은 소품을 일반적으로 3점 또는 5점 장식한다. 때로는 7점씩 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주로 좌대석을 이용하는데 최근에는 더욱 소품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가정구조나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선반장식의 배석은 자연계의 실경에 따라 장식하는 것이 무난하다. 이를 간과하면 아무리 애써 장식해도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배석 순서의 예를 들어보자. 3단 선반의 경우 최상단은 중요한 돌을 배치한다. 중요한 돌이란 중심이 되어야 할 돌이므로 짜임새가 좋고 비교적 돌의 흐름이 돋보이는 것을 이용한다. 중단에는 주석(중심이 되는 돌)의 방향으로 흐름이 있는 암형석을 배치한다. 하단에는 역시 그 흐름이 주석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오두막집형의 돌을 배치한다.

즉 미경에 준하여 산형석에 대하여 단형인 암형, 오두막집형인 돌을 배석한 것이다. 최상단의 주석에 대해 하단의 돌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 하여 배석하여 상호조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의 포인트와 흐름은 그 돌의 역학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두 점 이상의 배석의 경우 다른 돌과의 힘의 관계가 생기게 된다. 이 경우 상호보완하는 형태로 배석하여 조화가 잡힌 장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수석전시장에서 간혹 같은 계통의 돌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중복은 혼란을 가져오고 경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선반장식의 경우 각 선반의 중심부에도 돌을 놓게 되는데 돌의 경자에 따라 중심부보다 후방 또는 전방으로 놓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지판장식의 경우 돌의 흐름이 있는 쪽으로 충분한 여백을 두는 것이 웅대한 경관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반감상은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행하게 되면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다.



열석장식의 연출법

수석전시의 대부분은 열석장식이다. 석전에 따라 자리의 할당은 다양하다. 사전에 자리를 할당하는 곳, 추첨으로 결정하는 곳, 목록의 차례대로 배석하는 곳, 전시책임자에 의한 곳 등 아주 다양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전시회장 전체의 배석의 조화에 따르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의 전시가 훌륭하더라도 주변의 전시물과 배석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체적으로는 볼품이 없어진다. 또한 각 자리의 출품자의 돌의 강점이나 흐름이 제멋대로 되어 있거나 같은 계통의 돌이 계속되거나 하면 그 돌의 조화가 깨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돌이 있더라도 서로 물고 뜯는 결과가 되어 관람자에게 불쾌감을 주게 된다. 전시회는 어디까지나 미의 전람회이므로 개개의 전시는 물론 전시장전체의 조화가 돋보일 수 있도록 연구되어야한다.


이상의 주의사항을 염두해 두고 열석장식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기로 한다. 우선 주석을 결정한다. 그리하여 장식의 조형으로 삼는다. 이 주석방향으로 흐름을 지니고 있는 돌을 좌우에 놓는 3석장식을 한다. 이어서 강점이나 흐름이 별로 돋보이지 않는 중립적인 경석을 놓고 다시 3석을 늘어놓아서 7석장식으로 한다. 이 경우 같은 계통의 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진열할 때 유의할 점


계절감을 고려할 것

수석에도 그 경정이나 색감으로 보는 계절감이 있다. 되도록 알맞은 계절을 택해야 할 것이다.


장소에 알맞은 것을 놓을 것

안방에 두고 장식할 것과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을 것과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2개 이상의 돌을 진열하는 경우

같은 크기의 2개 지판을 사용하면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즉 높고 낮음의 변화를 부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수반과 분재와의 대조를 도모할 것

수석과 초목 즉 수반과 화분 등이 함께 진열되는 경우에는 2개의 색과 형상을 되도록 동일하게 하지 않고 대상의 묘(妙)를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주(主)와 종(從)의 역관계를 살릴 것

종합미는 주와 종의 균형에서 이루어진다. 요컨대 진열에는 변화가 조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단조롭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거나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진열의 두 가지 방법


가. 사경적(寫景的) 방법

둘 이상의 것을 조화시켜 일정한 공간에 종합미를 표현시키는 것이 진열의 즐거움이지만 그 방법은 참으로 갖가지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사경적(寫景的)인 것과 사의적(寫意的)인 것의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사경적 방법에 대해 언급하면 예컨대 심산유곡의 경정을 나타내는 폭포석을 놓는 경우 거기에 알맞은 동양화 한 폭을 곁들여 놓아 통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자연미를 표현시키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 방법은 상징화된 자연미를 표현하려는 것이므로 대소나 거리감에 이르기까지 실경에 충실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이화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호수석에 평원의 경정을 느끼게 하는 분재를 배치하거나 태산준령(泰山峻嶺)의 연산석에 가련한 꽃송이를 놓아서는 어딘가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 사의적(寫意的) 방법

사의적 방법이란 대조적인 것이다. 전자가 사의적이라면 이는 관념적이고 전자가 리얼리즘이라면 이는 로맨티시즘의 방법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컨대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족자 아래 원산석을 놓아 심리적으로 일체화된 경지를 표현하려는 그런 방법을 가리킨다. 조합된 두 가지에는 실경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심리적인 연결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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