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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용어의 始原과 例話 (제 1 편)

高山 | 2007.08.20 04:45 | 공감 0 | 비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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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석 용어의 始原과 例話(제 1 편)

   

                                            고산 박 철 수

 

 

ⅰ 돌의 意味
돌은 상형문자로 "언덕아래 굴러 떨어진 돌 모양"을 나타낸다.
중국최초의 문자서적인 후한(後漢) 시대 허신(58~147년)이 편찬한 설문해자(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교정본임) 에서 石을 山石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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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화 로

山은 돌이 있으며, 높은 것으로 모양을 본 땄고, 역(曆)은 산석의 언덕바위로 사람이 궁둥이를 내리고서 앉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것 중에 산의 본체가 무너져 떨어지고 잘게 나뉘어져서는 사방으로 흩어져 아주 큰 것을 바위가 되고, 작은 것은 다만 돌이 었는데 석자가 글안에 쓰이어져서 비, 낙, 던진다, 던지는 돌, 화살의 밑, 단단하다, 숫돌 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 돌은 인류 탄생과 함께 사용한 긴요한 도구이자,詩想의 대상이다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활용된 도구요, 인간 문화생활에 분리할 수 없는 긴요한 물건 중 하나가 돌이었다.

돌을 다듬어서 식량을 구하고 사냥을 하기 위해서 주먹도끼를 만들었고 돌 끝의 날을 긁게, 밀개, 짜르개로 소형도구로 만들어 썼다.


그러다가 농경사회가 도래하자 강한 것부터 약한 것을 구분하여 용처에 따라 적당한 모양이나 쓰임새도 달리 바뀌기도 했다.
즉 돌삽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고 돌칼을 이용하여 곡식의 이삭 등 나무 껍데기를 벗기는데 사용하는 등 필요한 생활 용구로 쓰여졌다.

그런가 하면 돌은 변하지 않은 의미로서 영원불변성을 상징하기도 했고, 장수의 대상이나 多産의 의미로도 생각하고, 이상하게 생긴 돌이 있으면 집안으로 가져오거나 그대로 본체로 시문으로 활용한 객관적 상관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감상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돌은 단순한 돌멩이로써가 아닌 삼라만상의 기기묘묘한 물상, 산수 경정 같은 실경, 천연적으로 아로 새겨진 무늬나 색채, 그리고 허상의 세계까지 헤아려 상상되는 내면세계 따위 할 것 없이 손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 있는 소재 거리가 되는 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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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동기에 의하여 오랜 시기부터 돌을 詩나 어떤 상징의 대상물로 오브제하여 찬양했던 예는 적지 않았다.

중국의 명대 철학자 왕수인의 산중뢰 수시란 시에서.."돌 쓸어 향 피우고 마음 놓고 잠을 자고 잠에서 깨어나면 객이와 세상의 이치를 논한다.

향긋한 솔바람이 불어오니 포규선도 필요없고 아득한 벼랑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마주 한다" 고 그 심기를 표했다.

또 당대 원결(723~773)이라는 시인은 큰 돌 위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이곳 정자 근처에는 푹 들어간 곳이 있었는데 여기에다 술을 붓고 손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원결이 숨 켜 마신 그 돌을 술그릇이라고 명명하여 배유(杯楢)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간교한 세상을 풍자하여 순박함을 지키는 뜻으로 배유명(杯楢銘)으로 불렀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한 강화도 보문사인 나한전 불상에 얽힌 예화이다.


바다에서 그물을 친 어부가 그물을 들어 올리자 사람의 형상을 닮은 돌 22개가 올라온다.

모두 바다 속으로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는데 이상하게 또 걸렸던 돌이 올라왔다고 한다. 어부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바다에 돌을 던져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어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과 고승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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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묵은 유씨의 거북돌

그리고 꿈속에 나타난 고승은 낮에 걸렸던 22개의 돌이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라 천축국에서 보낸 불상이라고 지적하고, 소중한 불상을 버린 어부를 호되게 질타하였다.


이어 고승은 어부에게 당장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을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다음 날, 노승이 부탁한데로 돌을 버렸던 그 자리에서 모두 불상을 건져 낙가산으로 옮겨 신령스런 불상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같이 돌을 신령한 물건으로 귀히 여겨 그 의미를 부여한 예나, 글을 쓰고 풍류의 대상으로 즐겼던 고사는 흔치 않았다.


ⅱ 돌과 물과의 함수관계

돌을 한자어로는 水石. 壽石. 樹石. 手石. 秀石 등 그 의미를 표기하여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서로 일치한다.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이며, 동질성을 갖기 때문이다.


水石이 물속에서 나온다고 하여 모두 水石이 될 수가 없으며 수성암이 아니다.
이것은 물과 밀접히 관련되어 물돌이란 용어를 내포되어 있으나 엄격히 말하자면 물 속에 있는 돌이라고 모두 수성암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수성암이란 암석에서 떨어저 나온 파편이 유속에 의해 미끄러지고 굴러서 물밑으로 이동되거나 혹은, 바다나 강에 있는 생물의 유해물 등이 퇴적되고 변화되어 상하 지각작용으로 물에 의해 이루어진 암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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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는 색채 아름답게 온갖 무늬가 영롱한 작은 돌 298개를 구했다. 크기는 큰 것의 지 름이 한 치 정도이고 작은 것은 대추나 밤알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적이 귀감이 되어 후대인들도 작은 돌멩이의 운치를 소중히 여겼다. 위의 돌 그림은 명의 유명한 애석가이며 「소원석보(素園石譜)」의 저자인 임유린의 소장석이다.

水石을 낳게 한 필요조건이 물이다. 물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곤란하다. 그렇다면 수석과 관계된 물은 무엇으로 비유되는가?
공자은 물을 군자로 비유하였다.
자공이 선생에게 묻기를 군자는 물을 보면 무엇 때문에 바라만 보는 것이라고 하는지 ? 그 질문에 답하길..

"물은 두루 베풀어 사사로움이 없으니 德과 같고, 물이 닿으면 살아나니 仁과 같고. 낮은 데로 흘러가서 굽이치는 것이 모두 순리에 따르니 義와 같고, 얕은 것은 흘러가고 깊은 것은 헤아릴 수 없으니 智와 같다.

물은 백길이나 되는 계곡에 이르러도 의심하지 아니하니 勇과 같다. 가늘게 흘러 보이지 않게 다다르니 살핌과 같으며, 더러운 것을 받아도 마다하지 아니하니 포용함과 같다.

혼탁한 것도 깨끗하게 해서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 같고, 만갈래로 구비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이니 의지와 같으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 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일찍이《道德經》에서 老子도'上善若水'라 하여 으뜸 가는 善을 물에 비유하였다. 물은 언제나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므로, 노자는 물에서 '柔弱謙下'의 교훈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한나라 때 劉向의 설화의 한 대목에서는 智者樂水 즉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의 여러 속성을 인간이 지녀야 할 삶의 덕목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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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이 한 조각의 돌은 천공에 의하여 다듬어져 이뤄졌으니, 무르녹은 향기가 부드럽게 풍기며 빛이 맑고 맑다. 평지와 깊은 굴에 구름 안개가 머물고 곧은 결 비친 문채엔 핏빛이 영롱하다. 옛 골짜기에 이미 초록의 꿈이 사랑스럽고, 이 돌이 놓인 그윽한 방안엔 지금 玉人의 맹세를 맞았다. 그대를 향해 단아하게 마주 앉으니 천기가 혼화한다.

송대 유학자 朱子(1130~1200) 도 공자의 말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음으로 물을 좋아한다"고 풀이하였다.

이렇듯이 물은 유유히 흐르는 단순한 물리적인 현상을 떠나서 속된 것을 씻겨주며 성스럽고 청정한 곳으로 안내해 준다.

먹고 마시는 자연수가 아니고 생명을 잉태해주고 이어 주는 생명수로서 신앙의 차원에서 종교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돌은 어떠한가?
낮에는 햇빛에 의해 열기를 담고 있고, 밤에는 촉촉이 내린 이슬과 대지의 수은을 빨아 들여 어떤 생명체라도 잉태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돌 위에서 난 꽃이 피고, 천년송의 소나무는 늘 푸르게 자란다. 이것이 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기요, 기운이다.

모든 형체의 근원은 암석이다. 암석은 그림의 소재 중 제일 기초가 되는 것임으로 이것을 잘 묘사해서 그린다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는 사람은 암석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아니함으로 이것에 능통하면 만족한 그림을 얻을 수 있다고 “개주화학편”에서 심숭건은 말했다.

조선시대 강희안도 양화소록에서 돌을 격상해서 말하기를 군자로 비유하여 했고, 고려말 선비 이곡이라는 사람은 석문이란 글에서 암석의 덕목을 다음같이 설명했다.

“암석은 견고불변하여 천지와 함께 종식되는 것, 두터운 땅에 우뚝하게 박히고 위엄있게 솟아서 진입하며 만길의 높이에 서서 흔들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 깊은 땅속에 깊숙이 잠겨서 아무도 침소하거나 제압할 수 없는 존재라 하면서” 그 덕목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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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어루만짐으로 나타난 신의 창작물이 水石이다
우리가 보는 돌은 돌 그대로가 아닌 다른 이미지로 변용해서 보고자 하는 돌을 말한다.
곧 돌을 오브제하여 그 속에 경관을 보려면 반드시 물의 어루만짐과 햇빛과 공기의 순환작용을 거쳐야 하는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여과 과정을 거친 후 드디어 水石이란 고유 명사로 사용 할 수 있다 할 것이며, 단순히 수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히 비약이라 할 수있다.


그러니까 수마도, 색감, 형태를 고루 가진 水石이 되자면 물의 흐름, 공기. 햇빛이 필요하다. 이 3가지 영양소를 받지 않고서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거치른 피부와 설령 칙칙한 색을 가진 강도 높은 돌이라고 할지라도 이 3가지 요소를 오래도록 거치게 된다면 그 진면목을 드러낼 소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돌은 물과 연계하여 어떤 기나긴 세월을 통해서 씻기움이란 서로의 유기적 기능 아래 새로운 동기가 부여됨으로써 수석으로 미화된다.


그런가 하면 단순한 미적 동기로 그치지 않고 내면세계를 감지한 촉감같은 것으로 생명력을 가지고 이해 할 수 있는 추상성이 깃든 의미로도 해석된다.


ⅲ 수석이란 용어상 意味
오래전에 水石이란 용어는 기석(奇石), 진석(珍石) 으로 분류해서 사용하다가 차차 산수경정의 아취로 표현함으로서 水石이란 말이 탄생되었다.

국어사전에서는 水石을 물 水자에 돌 石자로 "흐르는 물가에서 주운 보기 좋은 자연석"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목숨 壽자와 돌 石자의 합성어인 壽石이 아니다.
水石은 산수경석의 약자로 실경적인 사실. 형상. 놓여진 상태를 말하고, 壽石은 내면성을 강조한 수명을 가진 정신적 측면까지 연관시키고 있다.

목숨 壽에 돌 石자인 壽石은 어떤 외형으로 분류되는 문양석, 형상석, 미석, 선석 등 개념을 초월하여 인격과 철학이 부여된 내면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목숨으로 수명을 비유한 壽石이다.

그러니까 물과의 밀접하게 관계된 "세월의 무침 속에 비로소 나타난 살아 있지 않으면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 즉 수석은 영원성과 불변성이 강조된 내적인 정신 요소를 근원으로 하기 때문에 壽如金石으로 부르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할 것이다.

수석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이후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된 1966년 서울에서 석우회란 단위 수석회가 한기택 박사를 위시해서 발족된 시기부터이다.

그해 말 부산에서 문용택씨를 중심으로 대한수석회가 구성되어 이듬해인 4월12일 최초 문용택 수석 개인전을 필두로 11월6일 서울 신세계 백화점 화랑에서 최초 단위 수석 전시회인 창포수석전이 개최된다.


현대 수석의 열풍이 물밀 듯 번져 가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水石으로 사용했던 용어를 壽石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들이 수석계에서 어필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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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수 석

명실공이 최초로 정부단체에 壽石이란 고유명사를 사용하여 등록한 시점은 1985년 11월23일 한국수석 총 연합회 탄생에 이어 다음해인 6월21일 문화 공보부에 사회단체로 등록 한 이후 시점이다.

○ 수석은 꼭 동양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신문화 권인 남북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지방에서도 수석을 한다.

다만 그네들이 즐기는 수석은 엔조이(enjoy)란 차원에서 단순한 락(樂)이며, 돌을 통해서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다든가 심오한 철학을 구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수려한 절경과 비경들이 수 없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 그들이 선택하는 그림의 대상은 여자 나체를 중심으로 한다. 그런 반면에 동양권에서는 주제가 모든 형체의 근본은 산수풍경이요, 바위를 초점으로 해서 그렸다.

바로 그 차이가 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인 분야에 관심을 둔 동양문화권과 실증과 과학에 의해 체계적으로 인간 중심인 서양 문화권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수석은 하나의 사실경이나 무늬를 넘어 사의적인 부분까지 살펴보려는 까닭에 갈수록 어렵고 심오함을 느끼게 된다.


다음편으로(제2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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