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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좋은 돌의 구성요건

高山 | 2009.08.12 14:53 | 공감 0 | 비공감 0

           

형, 질, 색이라는 수석의 조건에 덧붙여 누

 

공감할 수 있는 형을 이루기 위한 ‘수석의

 

구성미’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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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창파에 외로이 떠서 기나긴 세월에 걸쳐 사나운 격랑과 매서운 비바람과 싸워 이겨내는 기암절벽의 인내와 의지가 자랑스럽다. 푸른 바다 쪽을 향해 살포시 고개 숙여 무언가를 깊이 사색하는 듯한 생각하는 바위의 웅장에서 정중과 침묵의 교훈을 익힌다.


수석은 돌이라는 대상에 사람의 혼을 불어넣는 주관적인 분야지만 나와 남이 서로 통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야한다는 객관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형, 질, 색이라는 수석의 조건에 덧붙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형을 이루기 위한 ‘수석의 구성미’라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고자 한다.

 

수석에서 짜임새를 본다는 것은 일종의 구성미적인 평가 방식이다. 이 원리들은 궁극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유쾌하게 보는 원리나 방식’에 입각하고 있다. 물론 어떤 하나의 구성 법칙이 꼭 미학적인 효과를 위한 절대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에서는 미의 원리들이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그것들을 깨뜨리고 초월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석 역시 하나의 시각적인 구조물이다. 통일과 변화, 균형, 비례, 율동이라는 구성의 원리들은 다른 예술에서와 같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통일로 이루어진 변화미

‘통일’이란 어떤 질서를 말하는데 우리 주위의 돌들은 대부분 질서가 없는 모양이기 쉽다. 탐석자가 하나의 수석을 선택하는 이유는 대개 무질서한 여러 돌들 중에서 어떤 통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탐석행위란 결국 무질서 속에서 돌의 질서를 찾아내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의 예술에서는 통일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변화를 요구할 때가 많다. 하지만 통일성이 부족한 수석에서는 작은 질서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수석은 예술과는 달라 지나친 통일성 때문에 곤란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질서 즉 통일이란 있어야 할 것들이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두 개 이상의 景 들이 복합된 수석의 경우 - 쌍봉 사이의 호수나 계곡이나 동굴, 천교나 투 등이 자리 잡은 수석들, 원산 밑에 호수가 있는 원산호수석, 폭포석에서 폭포의 위치- 이 모든 것들이 있을 자리에 정확히 있어야 한다는 점은 짜임새 있는 수석의 형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된다.

통일과 변화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통일이 강조되면 단조롭기 쉽고, 변화가 강조되면 산만하기 쉽다. 이것이 일반적인 미의 원리이다. 예술에서는 통일과 변화의 양이 조절될 수 있지만 수석에서는 그렇지 않다.


쌍봉은 두 봉의 형상이 서로 이질적이면 좋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통일의 관점에서이다. 또한 쌍봉에서는 두 봉의 높이가 달라 주봉과 부봉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모양도 같고 높이도 같다면 단조롭기 때문에 봉의 크기차이로 변화를 주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통일성은 수석의 윤곽(outline)에서 발견되어야 하지만 돌의 내부에서도 찾아야 한다. 추상석, 괴석, 미석 등은 선미(線美)나 형태상의 어떤 통일성을 갖추어야 한다. 무질서와 산만 속에서는 어떤 미감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돌의 형상은 질서가 없어 통일성이 부족한 상태이지만 돌갗의 변화는 의외로 놀라운 질서가 있다.

 

즉 기계적인 통일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돌의 전면을 뒤덮고 있는 균일한 크기의 소립상 돌피부도 있고 주름이나 굴곡의 흐름이 마치 판으로 찍은 듯 규칙적인 경우도 있다. 놀라우리만큼 규칙적으로 배열된 추상문양의 줄무늬가 있는가 하면 구갑석, 조각석, 수림석 등에서 보는 경이로운 질서도 있는 것이다.

수석에서 가장 통일성이 강한 경우는 해석이고 이 때문에 단조롭기 쉽다. 구래서 해석에는 미세한 것이라도 변화를 갈구하게 된다. 수석에 쓸데없는 부분이 붙어 있거나 선의 흐름이 낭비적인 경우에는 통일성을 방해한다. 따라서 통일성을 위해서는 절제된 선의 흐름이 필요하다.


균형의 조화미

균형은 좌우의 것도 중요하지만 상하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좌우의 균형과 불균형이 수석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는 산이나 섬, 바위 등의 경석들의 좌우 능선의 대비이다. 좌우 능선의 변화와 흐름은 미묘한 차이로도 수석 전체의 양상을 좌우하게 된다.

수직과 수평의 조합인 ‘H자 형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책상, 문틀, 집 등의 이 형태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구조적인 특징 때문에 견고하고 안전해 보인다. 수문, 쌍봉, 폭포, 동굴 등이 이 ‘H자 형태’의 수석들에 속하는데 이들에게는 좌우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선들의 의미와 수석과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자. 선은 시각요소들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구실을 하며 관찰자의 눈을 이끌어 그 선이 가지는 느낌에 젖어들게 한다. 수직선에서 우리가 느끼는 바는 운동감이 적고 생명을 나타내며 더 넓게는 변화에 대한 저항 등을 살필 수 있다.

 

입석상의 많은 수석군들에서 우리는 수직선이 갖는 공통적인 의미들과 만난다.

수평선은 우리들의 대지를 상징하며 휴식과 평화 그리고 고요함 등의 느낌을 준다. 호수, 원산, 평원, 낮은 암초형, 단석, 평석형들이 이에 해당한다. 기본적인 선들의 의미는 수석 자체의 형태뿐만 아니라 연출에도 관련되어 수석 전반의 느낌을 좌우한다.

 

대각선은 동세를 나타내므로 수석에 역동성을 준다. 대신에 불안정해지기 쉽다. 상하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바로 처마바위나 물형 등의 사선상의 연출에서이다. 상하의 무게 균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상부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지고, 하부가 지나치면 약동성이 상실된다.

균형문제는 수석 자체의 균형도 중요하지만 수석 균형을 찾기 위한 연출의 묘에서도 찾아진다. 따라서 수석의 밑자리는 균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맞은 비례법

명나라 때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의 산과 암석을 그리는 방식에서 따 온 삼면법은 수석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례의 법칙이다. 수석의 길이와 높이, 폭의 관계를 7:5:3으로 정해본 것이라든가 평원석에서 산봉의 높이나 면적 대 평원이 차지하는 부분을 1:3에서 1:5 정도로 잡은 것 등을 볼 수 있다. 이는 수석에서 비례에 대해 얼마나 고심해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서구의 실험미학의 ‘황금분할’이 그렇듯 사람들은 항상 비례에 관심이 컸다. 미의 완벽한 법칙을 설정하고자 오늘날까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영원히 타당하고 완벽한 비례의 법칙이란 없다. 인위적인 예술과는 달라 자연의 소산인 수석에서의 비례는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

 

수석에서 비례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자칫 균일한 인상을 주는 수석이 될 수가 있으며 이는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렇게 생긴 돌에서는 정확한 비례가 사실상 힘들기 때문에 수석에서의 비례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수석에서 우리가 비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짜임새 있는 수석미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수석에서 비례란 너무 내세울 수도 감출 수도 없는 미묘한 부분이다.


율동의 유선미

수석의 율동감은 선의 흐름에서도 오고 돌피부의문양에서도 온다. 곡선은 운동성을 암시한다. 곡선이 주체가 되는 해석이나 천석이 흐르는 선은 강한 율동감을 준다. 소립상이거나 흐름이 좋은 주름굴곡의 돌피부들에는 유동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규칙적인 배열을 갖는 추상문양이나 색채석들도 상당히 율동적일 때가 있다. 포도석, 흑돌, 종유석들은 대개 둥근 모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율동감을 갖추고 있다.

 

수석에서의 율동감은 수석의 전체적인 생동감과 통일성을 주게 되고 수석의 구성미에 참여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어떤 수석이 왜 보기 좋은가?’를 알기 위해서는 형이 왜 좋은가를 알아야 한다. 미적 감각이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미의 원리를 알고 많은 훈련 끝에 숙지되는 후천적인 것이다. 통일과 변화, 균형, 비례, 율동 등의 미의 원리들은 이러한 것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석은 조각 예술의 입체미가 갖는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하겠다.


수석이 갖추어야할 부대조건(附帶條件)

① 선(線)- 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석리라든가 주름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돌 그 자체는 정체(靜體)이므로 이 선의 작용은 중요하다. 생동감 있는 선의 흐름은 돌에 활기를 준다.

② 면(面)- 몇 개의 면이 구성하는 콘트라스트한 아름다움이 있으면 구미를 돋군다.

③ 살갗-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무심히 만들어 낸 듯한, 돌의 살갗에 아롱아롱 새겨놓은 깊은 맛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특히 강돌은 그것을 바랄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다.

④ 밑- 돌의 밑 부분은 자연스럽게 안정되는 것이 가장 좋다. 앉음새가 나빠 부득이 절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밑 부분의 완벽함을 첫째 조건으로 들고 있는 애호가도 있다.


형(形)의 새로운 연구

미의 세계에 있어서의 향상과 진보는 정통에 구애되지 말고 스스로 새로운 형을 구하는 데에서 초래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해설과는 다소 어긋나는 감이 없지도 않지만 먼저 기본을 배우라는 것과 정형을 깨고 나아가라는 것과는 결국 진리의 양면인 것이다. 정형을 깨기 위해서는 그 정형을 먼저 알아야 하며, 또한 깼다고 생각한 그 형이 사실은 그 정형의 새로운 발전이었다고 알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unformal(무정형(無定型))한 아름다움도 자연의 돌 속에서 많이 찾아내어야겠다.

 

형(形)의 기준(基準)과 응용

수석에 있어서의 형(形)의 기본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원산형에 있어서의 삼면법을 말한다. 그것을 알기 쉽게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三面法- 前後: 앞에서 뒤까지의 거리가 주는 원근감

左右: 변화의 균형

上下: 밑면의 안정도


위의 삼면법이란 명나라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에 실린 그 초집의 산석보에서 산과 암석 화법을 기술한 것이다. 여기에는 산형석 류를 중심으로 전면(前面)? 배면(背面)? 저면(底面)이 있는 바 이 삼면을 다시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의 삼면을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삼면 밖에도 기복의 높고 낮음과 파진 곳의 깊고 얕은 정도의 음양과 기외(其外) 고하(高下)의 상태 등의 고루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이다.

 

즉, 이상적인 원산형이란 돌의 전후? 좌우? 상하의 삼면이 변화를 수반하면서 각기 조화를 이루고, 또한 전체로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하지 않을 정도 기세의 흐름과 종합됨을 지닌 것이어야 좋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석 기본으로 모든 형에 적용되고 앞으로도 계속 효과를 살릴 패턴이라 하겠다. 전후의 면에서 고찰할 때, 앞쪽에 가령 7의 벌어짐이 있으면 뒤쪽으로는 최저 3의 뻗음이 있는 돌은 앞뒤 거리의 깊이가 느껴져 호감이 간다. 그러나 뒷면이 가파르면 기품을 잃게 되는 흠이 생긴다.

좌우에 있어서는 주봉다운 강한 융기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정도의 약한 융기가 있음이 바람직하다. 상하의 관계도 중요하다. 수석에 있어서는 흔히 ‘밑’의 자연스러움이 문제가 된다. 이는 자연석을 존중한다는 마음의 자세와 더불어 형에 있어서의 미의 탐구에서도 요청되기 때문이다. 상부의 무게를 받아들임에 적합한 자연스러운 두께가 하부 즉, 밑 부분에 있어야 바람직하다. 상부에 비하여 하부가 지나치게 평평하거나 또는 불안정하게 튀어 올라 있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상을 종합하여 고찰해 볼 때 1개의 돌에 우리가 요구하는 형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조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형에 있어서의 조화를 잘 익혀 자신의 감각 속에 융화시키면 모든 형에 대하여 감각을 터득할 수 있게 되고, 그저 한쪽이 높고 다른 한쪽이 낮으면 된다는 유형화에 빠져버리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색감과 농도

같은 색깔 속에도 그 색의 밝고 어둠(明暗)이 있으며 색의 짙음과 엷음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색감은 다르다. 색이 짙을수록 강인한 건강미를 느끼게 되고 엷을수록 허약해 보이고 권태감을 준다. 그럼 수석이 지녀야 할 돌의 색은 어떤 것이 이상적일까 생각해보자.

돌의 색깔이 시멘트 빛깔처럼 회색이라든가 허옇다든가 누런색은 좋지 않다. 또한 병적으로 탁한 색깔, 희미하고 엷은 색깔, 색은 깨끗하나 투명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색은 돌 속 깊은 내면에서부터 은은히 파문처럼 퍼져 나오는 짙고 깊은 맛이 있는 색상이 최상이다. 또는 종소리의 여운처럼 아련한 메아리를 타고 점차로 깊은 심연으로 빠지듯 깊게, 짙게, 내심으로 파고드는 깊은 농도의 색채가 원하는 색이다. 너무 현란한 색은 품위가 없다. 잠시는 황홀해질지 모르지만 기품이 없고 새처럼 가벼운 느낌밖에 없다. 그러나 엷은 계통의 색이라도 그 색조에 맑음(조명도(照明度))이 있으면 미적감상에 족하다.

 

수석에서 가장 으뜸인 이상적인 색깔은 윤기도는 까만 진흑석(오석(烏石))이다. 까만 돌 외에도 청색, 다색(흔히 초콜릿색) 등 무게 있는 짙은 색의 돌을 상급으로 여기고 취택하는데 반드시 그 색감이 생동감이 있어야 하고 강한 명료도와 또한 깊이와 무게, 고상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석과 화문석 분야에서는 원색의 짙은 색깔일수록 그 진가를 높이 알아주고 있다. 불타는 빨강색이라든가 황금처럼 빛나는 노랑색이라든가 쪽빛 하늘처럼 파란색이라든가 아무튼 살아있는 색상으로 화려하고 다채로울수록 좋다. 그리고 자연적인 색채석이나 문양석에도 짙은 원색의 농도가 깊을수록 돋보이게 된다.


예스러움과 자연의 색채

우리가 수석에 요구하는 아름다움은 갖가지 자연경 속에서 그 장점만을 골라 조합된, 스스로 형태 지어진 말하자면 이상화된 자연미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그 정도의 깊이에 다소 차이는 있을망정 수석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마주보는 수석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끼거나 반대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이란 우리들의 심미감이 거침없이 과연 그렇다고 납득할 수 있는 형이며 경정인 것이다.

예컨대 원산의 기슭은 약간 기다랗게 뻗어 내려오다가 이윽고 천천히 지표로 이어져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갑작스럽게 끊기거나 산기슭이 툭 튀어 올라 있어서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물론 반드시 전형적인 원산형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이상적인 자연미를 마음속에 간직한 우리들의 심미감을 순수하게 납득시켜주는 것이 참다운 의미에서의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고색이란 어디까지나 낡아빠진 것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보는 이에게 흐뭇한 안정과 심부로 아늑하게 가라앉아 있는 듯한 깊은 느낌을 주는 것이 ‘고색(古色)’인 것이다.

그렇다면 ‘고색(古色)’이란 어떻게 함양되는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풍화작용을 받아 수석에 대한 애정으로 살려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자연계에 있는 돌은 사계의 변화, 온도나 건습의 변화 등에 영향을 받아 오랜 동안에 서서히 변화한다. 예컨대 이끼류 등이 부착하여 석면에 싱그러운 아취가 나타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자연의 풍화작용은 커다란 정원석과 같은 경우에는 어떤 종류의 느낌을 줄 수는 있어도 실내에서 바라보는 수석으로서 자연의 풍화작용 그대로는 지나치게 거칠어 맞지 않는다. 수석에는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을 지닌 우아한 고태감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것을 옛 사람들은 ‘양석(養石)’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실기론에서 설명하겠지만 간추리면 적절한 일광과 통풍으로 환경을 만들고 항상 관수(灌水)를 하여 양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설명이겠지만 ‘고색’이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고색이 없으면 수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돌이면 고색을 지닌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석을 애석하는 취미의 저변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만큼의 자연감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원산형을 대할 때 마음속으로는 자연에서 펼쳐지는 산맥의 모습을 이리저리 무의식중에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실경에서 받는 산수미와 자기가 느끼는 산수경, 그 두 가지를 비교하여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면 ‘과연 그렇군’하고 납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색채에 있어서도 역시 자연과 이화하지 않을 것, 즉 자연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고찰할 때 자연의 풍경에는 원색인 빨강색이라든가 노랑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수석은 근경보다도 원경을 관상하는 것이 많으므로 통틀어 검은색이 감도는 색채가 자연스럽다고 하게 된다.


實例에 따른 진단

세 가지 면(面)에서의 진단(診斷)

여기서는 비교적 난점이 있는 수석을 예로 들어, 어디가 바람직하지 못한가 하는 점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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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산형석에 대하여 검토해보자. 그림 A는 정면에서 본 산형의 모습이다. 중앙을 벗어난 곳에 주봉이 솟아 있고, 멀리 부봉을 거느리며, 가운데는 원봉이 아련히 떠 있다.

이 정도면 이상적인 산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느린 느낌’이 드는 것은 높이에 비하여 좌우가 다소 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봉이 조금만 더 높이 솟거나 그렇지 않으면 좌단이 1/10 정도만 짧았다면 아마 더욱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림 B는 약간 위쪽에서 본 모습이다. 거의 중앙에 약간 패인 곳이 보인다. 주봉, 부봉, 원봉에 호수도 있는 경정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그림으로 보아 쉽게 알 수 있듯이 역시 주봉에 비하여 부봉이 약하고 초라하여 균형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흠이 있다.

 

그림 C는 바로 위에서 본 부감도이다. 앞뒤의 거리가 짧은 돌은 원근감이 적고 안정감도 결여되지만 이 돌은 좌우의 길이에 비하여 대체로 알맞은 앞뒤 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비율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좌우 5에 대하여 앞뒤거리 2나 아니면 적어도 3:1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부감도에서 특기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고도저협(高度低挾)의 자연스러움이다. 높은 데는 넓고 낮은 데는 좁은 편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돌은 수석으로서 능히 지닐 만한 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線)과 굴곡(屈曲)

형태상으로 선의 흐름이 살아있지 못한 돌은 쓸모가 없다. 산석이나 토중석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너무 날카롭고 거친 선은 살기어린 기운마저 풍긴다. 모암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깨어진 흔적이 거칠게 나타나 있는 것, 또는 그와 비슷하게 날카로운 날을 세워 험상궂은 안상마저 풍기는 것은 아무의 눈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돌이라 한다.

 

이 생돌의 맛을 풍기는 돌은 수석에서 아주 기피하고 있다. 항상 부드럽게 흐르는 선과 그 굴곡, 예리한 맛이 없이 휘어져 내리는 유연한 선이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한다. 선이 부드러움을 가져야 아름다운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석의 가치가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유연한 맛으로서의 자연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삐죽삐죽 날카로운 양상을 호전적이라 한다면 부드러운 흐름이 있는 것을 평화적인 것이라 말할 수가 있다. 표면의 굴곡 역시 부드러운 선미(線美)로 넘쳐 있어야 한다. 오목볼록한 굴곡이나 푹 패인 골, 좁쌀알 같은 표피, 할머니의 구김살처럼 된 표면, 여러 가지 주름의 양상... 이런 것들이 모두 부드러움으로 이뤄져야 한다.

 

굴곡과 선이 험상궂게 거칠지 않은 유연한 맵시를 갖추려면 세찬 물살에 오래오래 씻겨서 날카로운 부분이 자연스럽게 마멸되어야 한다. 이렇듯 물살에 의하여 닦이고 씻기는 것을 ‘물씻김’이라고 한다. 단단한 돌이 부드럽게 닳아지려면 물살이 모래를 운반하여 돌에 자꾸 부딪치게 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선(線)의 율동미(律動美)

선의 미는 어떤 것이 좋은가를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로 수석에서 산수미의 경정을 맛보려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하나의 돌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산천이 집약? 축소된 경취의 정감이 감지되는 것으로 단적으로 표현하여 산은 산답고 폭포는 폭포다운 느낌이 그 형에 나타나 있으면 족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산의 기슭이 갑자기 끊어지고 끝이 위로 튀어 올랐다든가, 암벽 가득히 폭포가 넘쳐흐르고 있다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순수하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돌에서 찾고자 하는 경우이다. 무의식중에 이러한 관상심리가 되어 있을 때가 많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사경적(寫景的)인 정감을 그 돌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관상심리는 서로 전혀 다르고 서로 조화되는 경우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참으로 훌륭한 형이란(사경적(寫景的)인 것으로 한정하지 않는) 어느 경정을 내포함과 동시에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다가 보면 당연히 선의 작용에 부딪치게 된다. 아름다운 선이란 우선 낭비가 없고 기운차야하며 유동의 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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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A의 원산의 선은 그다지 완만하지도 않고 힘찬 느낌도 적으며, 산경이 거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좌우의 능선에 변화가 없는 것이 결점이 될 것이다.

그림 B의 장형원산은 그 뻗음이 길게 펼쳐져 좋으나 좌우 기슭이 날카로운 선을 지닌데 비하여 산정의 선이 너무 완만한 것 같다. 조금 더 높이에 의한 선의 악센트가 있었으면 한다.

그림 C는 일단 정리된 원산이지만 산정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선이 다소 단조로워 요철(凹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림 D의 원산석은 율동적이고 낭비가 없는 선의 아름다움이 무엇보다도 감상하기에 충분한 것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三面의 조화(調和)

돌을 부감할 때 뒷면이 펑퍼짐하게 넓게 뻗어나간 것은 좋게 볼 수 없다. 언제나 바라보게 되는 전면이 완만하고 유연한 경사로 뻗어 나와야 볼품이 있다. 이때 후면은 어느 정도 경사가 빨라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그 비례를 따진다면 주봉에서 수면의 거리가 1일 때 주봉에서 전면의 사이는 2가 되는 비율이다. 즉, 전후가 3:1의 비율이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조화의 비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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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조화

좌우가 깎은 듯이 끊기고 절단되지 않아야 한다.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게 이루어지며 퍼져나가야 안정된 산세를 맛볼 수 있다. 이때 높이 솟은 주봉이 정삼각형으로 뾰족한 것 보다 하등변 삼각형처럼 한쪽이 완만한 것이 좋다. 그리고 부봉은 좌우의 거리감 8:2나 7:3, 원봉은 주봉과 부봉 사이에 위치하여 아득함을 주어 전체적으로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원근감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능선의 흐름은 한 쪽 측면이 경사를 이루었으면 다른 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야 대조적인 변화가 있으므로 눈을 즐겁게 한다.


아래위의 조화

산봉우리와 중허리, 그리고 산기슭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 산기슭이 되는 밑면이 불쑥 튀어나와 뒤퉁겨지면 앉음새가 나쁘고 안정감도 없어져 불안감을 준다. 그리고 높고 낮음의 비율과 변화의 조화도 있어야 한다.

주봉이 우뚝 솟아 그 위용이 넘치면 부봉은 그것을 보좌하듯 낮게 솟아야 하고 원봉은 원근감을 주기 위해서 더욱 작게 솟으면 이상적인 원산이 될 것이다.

 

곡선(曲線)의 미(美)

수석의 형에도 ‘주형(舟形)’이라는 것이 있어 나룻배의 끝부분이 기운차게 뻗어 올라가 활처럼 휘어진 곡선의 미를 보여준다. 이것은 분재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요컨대 선의 굽이침을 맛보는데 있어서는 비슷할 것이다. 이 경우 감상의 요점은 곡선의 형태, 즉 커브의 굽이침 정도에 있는데 그 가장 어려운 점이 최선단의 퉁겨진 상태라 할까. 넓은 의미에서 최선단의 탄력성 있는 굽이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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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단(先端)의 조화


그림 A는 선만을 본다면 곡선의 상태가 둔하고 최선단의 굽이침이 약하다. 또, 커브에 약간 더 날카로움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림 B는 심미상 납득할 수 있는 커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오른쪽에서 한번 깊이 떨어졌다가 강하게 뻗어나간 점 등은 참으로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이다.

이밖에도 유달리 최선단의 굽이침을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많으나, 어느 것이나 무리 없는 자연스러움의 굽이침이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수석의 단순화(單純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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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의 산형

미술, 특히 조각 부문에서 ‘단순화’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알기 쉽게 말하여 미를 표현하는데 불필요한 것을 되도록 제거하여 이제 더 이상은 제거할 수 없는 극한선에 이른 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수석의 경우는 물론 인간이 만드는 조각의 경우와는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개의 자연석에서 단순화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한 때에 우리의 심미감이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참고로 예시한 그림은 단순화의 극치를 나타내는 산형이다.

우선 산형 전체의 구도가 아름답고 참신한 멋을 풍기며 짜여져 있다. 산줄기가 유연한 흐름을 가지면서도 박력 있는 강인한 선으로 펼쳐져 나갔다. 산봉은 단순하지만 고결한 기풍과 품위가 감돈다. 산기슭의 들고 남도 자연스러워 평온하고 아늑함을 안겨준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산뜻하고 깨끗한 단순화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야윔(嫂)의 의미

이 ‘야윔’이란 이른바 군살이 없다는 뜻으로만 해석한다면 앞에서 설명한 ‘단순화’와 같은 의미가 되지만 이는 다소 뉘앙스가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야윔’의 경우 그 부분이 야위지 않았다면 여분이 되어 모양이 볼 것 없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단지 그 부분이 야윔으로써(대개의 경우 연질부가 패여 있다) 전체의 흥취가 훨씬 돋보이는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야윔’의 부분은 대개 침식이라든가 유수의 작용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거기에서 느껴지는 오랜 세월의 냄새를 소중히 여기는 심리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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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이 없는 야윈 산형

 

 

동적(動的)인 돌과 정적(靜的)인 돌

동양철학에 ‘靜中動’이란 말이 있다. 수석에도 이 동(動)과 정(靜)이 살아있다. 돌의 본질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살아 움직이는 동적인 돌이고, 다른 하나는 정적(靜寂)을 고이 간직한 정적인 돌일 것이다. 동적인 돌은 형태의 외형에서 느끼는 유동성? 약동? 운동감? 비약 등이고, 정적인 돌은 돌의 내심에서 퍼져 나오는 내면적인 고요와 안온함? 정적? 평화? 고적 등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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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적인 시원한 폭포석

 

위의 사진은 동적인 돌로 시원한 폭포를 연상케 하는 많은 수량의 물이 콸콸 넘쳐흘러 박력과 생동감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자연은 만고를 두고 잠자지 않고 항시 깨어난다. 살아 있는 자연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물의 흐름과 물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폭포석은 자연의 거센 숨결을 힘차게 토해내는 것이다. 폭포석에서는 유동하는 물줄기와 기운차게 떨어지는 박력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동(動)이요, 살아 움직이는 증거이다. 또 형상석에서 독수리나 매가 하늘을 향해 막 날듯이 약동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돌이 있다. 호랑이가 달리는 듯한 상태의 운동감... 이 모든 것이 움직이는 동(動)의 돌이다.

정적인 돌은 정신세계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연상하여 느끼는 돌일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지된 고요 속에서 이루어져야 되겠다.


아래 사진은 태고의 신비를 연상케 하는 고요를 간직한 정적인 돌이다. 고적(古寂)이 감도는 해맑은 물이 고요와 정지된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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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고요한 물고임 돌


좋은 돌의 필수요소

무수한 돌 그 하나하나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신비스럽도록 돌마다 무엇을 표현하는 상징이 있고, 산수가 집약된 축경이 있고, 조화된 형태미의 구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많은 돌들을 다 수석미를 갖춘 돌로 감상하고 애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수석으로 지녀야 할 요소와 조건을 빨리 터득하여 양부(良否)를 가려내는 올바른 취사선택의 지름길을 익혀 빼어난 수석이나 명석을 스스로가 찾는 힘을 길러야겠다.

좋은 돌, 즉 수석으로 갖추어야할 요소와 여건을 옛사람들이 이룩해놓은 원칙과 현재의 원칙을 통합하여 고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옛 선인들이 이룩해놓은 수석의 주안점이라 할 수 있는 원칙부터 알아보면 중국 송(宋)대의 문인이자 서화가인 미불(米?)(元章: 1051~1107)은 기암괴석을 바탕으로 상석법(相石法)을 세웠는데 그가 창시한 미점묘법(米點描法)의 화법(畵法)을 수석에 적용시킨 것 같다. 이 원칙이 오늘의 수석취미에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고전의 원칙을 바탕으로 오늘날 수석의 근본을 삼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중점을 두고 있는 수석의 삼요소는 형(形), 질(質), 색(色)으로 나뉜다.


① 형(形): 형태미, 구도, 조화

② 질(質): 질감, 경도, 정적감, 세월감

③ 색(色): 색감, 심미감, 친화감


위의 삼요소와 사원칙을 바탕으로 오늘의 오대요소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현재 쓰고 있는 오대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해보기로 한다.

좋은 돌 찾아내는 요령

우리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앞에 보이는 대로 전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대상(수석)이 머리를 통해 가슴으로 전해지고 심오한 느낌이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心眼)을 열어야 한다. 돌의 생김새를 아름답게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눈은 있으되 마음은 닫힌 것이다.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수석미의 오묘한 감상이 이루어 질 수 없다.

마음의 눈을 바르게 떠 올바른 심미안을 갖추려면 수석의 정통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좋은 수석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찾아보자. 밤하늘의 별처럼 수억 개의 돌이 지구상에 덮여 있지만 그 모양은 하나도 닮은 곳 없이 각기 다르다. 그리고 그 많은 돌중에서도 자연의 신비와 오묘함이 살아있는 돌은 많지 않다.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순리 그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자 수석의 본질과 조건을 배워야 하겠다.


ㄱ. 형(形)

수석의 첫째 조건은 ‘形’이다. 산수경을 연상시키든지 또는 다른 여러 가지 형태에서 심미감을 호소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지천으로 널린 돌에서 어떤 연상이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석은 방이나 거실 등 어떤 공간에 두고 자연풍경의 입체미를 관상하고 나아가 외형미가 내재한 심연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개성 있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수석의 형태를 이루는 요소에는 외형적으로 빼어난 모양은 물론 자연미와 고태미를 느끼게 하는 주름과 파임, 그리고 투(透) 등이 있다.


ㄴ. 질(質)

석질은 우선 단단해야 한다. 아무리 형태미가 뛰어난 돌이라도 무르면 쉽게 깨지거나 변질되므로 수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영원불변의 진리를 상징하는 자연이 그러하듯 수석도 오랜 세월 그 형태미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단단해도 좋지 않다. 강도나 너무 높으면 형태미를 기대하기 어렵고 이 또한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양질의 돌을 들면 중량감 있고 중후한 멋과 온화함이 느껴지게 된다.


ㄷ. 색(色)

수석의 색은 짙고 맑은 것이 좋다. 내부에서 빛을 뿜어내는 듯한 깊은 색이 최상이다. 병적으로 흐린 듯한 색이나 엷은 색은 좋지 않다. 반면에 현란한 색은 품위가 없고 금방 싫증이 나며 탁한 누른색 등은 석질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혐오감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 돌의 색은 그 돌의 질에 의해 나타나는데 질이 안 좋으면 색 역시 시원하지 않다. 수석감으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색은 진흑색이다. 짙은 먹빛의 돌에는 점잖은 분위기가 느껴져 가장 선호하는 색이다. 그러나 검은 돌이라도 윤기가 없거나 산뜻한 맛이 없으면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에 색이 엷더라도 선명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은은한 빛이 나고 고태미가 살아나는 것이라면 감상의 대상이 될만하다.

 

검은색 외에도 농도가 짙어 투명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무게감이 느껴지는 청묵색, 초콜릿색, 청록색 등도 수석감으로 권할만하다. 문양석의 경우에도 바탕이나 문양의 색이 짙은 원색일수록 좋으며 특히 윤기 있고 생동감 있는 색일수록 좋다. 그밖에도 수석이 지녀야 할 요소는 여러 가지 있을 수는 있지만 이상의 3요소가 뚜렷하면 수석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3요소를 골고루 갖춘 것이라 하겠다.

 

좋은 돌의 포인트

1) 돌 모양 전체 흐름의 선(線)이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2) 돌 피부에 물씻김이 세련되어야 한다.

3) 석질의 변화와 주름, 굴곡은 풍화작용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4) 산형석을 밑면의 언저리와 배들이의 굽이가 휘어진 굴곡으로 형성됨이 좋다.

5) 수석은 앞쪽으로 감싸주는 것이 시야를 집중시켜주는 초점이 된다.

6) 야윈 듯 군살이 없어야 한다.

7) 수석의 균형은 중심세에 의해 잡혀야 한다.

8)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짜임새를 갖추어야 한다.

9) 여러 가지 변화에 미적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10) 알맞은 크기의 조화가 필요하다.


좋은 돌에 있어야 할 조건

1) 선(線:

돌의 피부에 나타난 조직이나 능선이 헛되지 않고 움직임이 있는 선이어야 한다. 선이 부드러우면 평화, 날카로우면 호전적으로 보이고 삭막한 느낌을 준다.


2) 면(面)

‘어떤 면이 좋은가?’보다는 둘 이상의 면이 변화와 조화에 의해 마주 버티는 보이지 않는 허공백의 힘이 교차하는 것이 미의 관상 초점이다.


3) 기(氣)

정취가 바로 이 기에 속한다. 마치 초를 친 무와 같은 상태의 풍화 침식이 있어야 한다.


4) 저(低)

안정감이 있는 좋은 밑자리를 이룬 수석은 안정과 평안이 감도는 수석이므로 중심세를 갖춘 돌은 의연하게 보인다.



점(點), 선(線), 평면(平面)의 三原則

- 점(點): 점은 형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공간에 위치를 차지한다.


- 선(線): 선은 길이, 방향, 위치의 특질을 가지며 점의 연속이다.


- 평면(平面): 평면은 길이, 폭, 형, 표면, 방위, 위치 등의 특질을 가지며 선의 확장이다.


이 삼원칙을 아래처럼 더 심화시켜 살펴볼 수 있다.



점석(點石)

점으로 이어진 점석은 위치를 지정한다. 그리고 개념적으로 점석은 길이, 폭, 깊이와 같은 것이 없으므로 정적이다. 또한 방향석이 없는 구심적인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선분과 교차선 입체나 평면석 모퉁이에서의 선의 만남, 장소, 중심의 표시에 기여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점석에는 형태와 형상이 없지만 시야 내에 놓여질 때 그 실제를 느끼게 된다.

점석은 수석의 중심으로 안정되고 정지해 있으며 자신의 영역과 주변요소를 형성한다.

점석은 차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간 또는 지평면 위에 표시하기 위해 입석과 같은 수직선형의 요소로 투영되어야 한다. 실제 입석으로 존재하는 평면 위에서는 점석으로 존재하며 아울러 점석만의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선석(線石)

점석이 연장되어 선석이 되고 개념적으로는 동적인 상태를 그리며 관상석으로서의 능력이 있다. 선석은 1차원이나 어느 정도의 굵기를 가지고 있다. 길이가 폭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선석으로 보여진다.

수석의 선석은 길이, 폭, 비례와 윤곽 그리고 연속의 정도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진 수석은 주요한 질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평면석(平面石)

평면석에는 고가 평면석과 수직 평면석, 바닥 평면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선석이 그 자신의 축방향 이외의 방향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평면석이 된다. 개념적으로 평면석은 길이, 폭 등을 가지지만 깊이는 갖추고 있지 않다.

시각적인 구조를 형성하는데는 평면석이 입체의 한계 혹은 외곽부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평면석은 공간의 형성을 이루고 있다.


삼원칙의 요소가 갖추어진 모든 수석의 형태는 동적인 점석 자체로 형성된다. 점석으로 이어진 수석은 움직임에서 점석이 존재하며 점석으로 이어진 수석은 1차원이 된다. 만약 점석이 확장되어 평면석이 된다면 2차원적인 요소가 얻어지며 평면석 공간으로 이동될 때에는 평면의 부조화가 야기되어 3차원적 입체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점석에 의하여 형성된 수석과 점석으로만 이루어진 수석, 한 평면석만으로 이루어진 수석은 구별되어야 한다.


수석의 형태와 돌의 개성

삼라만상의 어느 모양과 흡사한 형태미는 수석이 갖추어야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자연이 빚어낸 꾸밈없는 자연석 속에서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형의 오묘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질이 좋고 색이 좋은 돌이라도 둥글넓적하여 아무 모습도 닮지 않은 볼품없는 돌이라며 수석취미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몽돌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취택하고자 하는 것이 수석인 이상 그 형상에 무엇인가(상징과 개성) 볼만한 데가 있어야 함은 기정사실이다.

 

수석이란 어느 일정한 공간에서 입체적인 자연의 조형미를 관상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형태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결정적인 요소가 결여되는 셈이다. 갖가지 연상은 상징화 된 형태에서 발생되는 것이므로 형태가 없는데서 연상이 생길 리가 없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돌의 개성이다. 형태도 빼어나고, 질감도 뛰어나고, 색감도 좋다 하더라도 뚜렷한 개성이 없으면 이것은 ‘죽은 모양’밖에 안 된다. 무엇이든지 그것만이 지닐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멋과 맛이 내표되어 있는 돌이어야만 ‘살아있는 모습’의 산(生)돌이다.

 

돌은 그 하나하나가 제각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 다만 그 특징이 강렬하게 풍기느냐 미약하게 풍기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특징이 나타남으로서 이를 개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성은 어떤 돌 산지에 따라서 그 산지의 돌만이 지닌 특성으로서도 나타난다. 어느 수석을 보고서 이것은 흑산도 돌이다, 단양 돌이다 하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은 그 산지의 돌만이 품고 있는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돌의 어떤 요소에서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개성이 살아나 있을 때 이것이 좋은 수석으로 인정받는 우선적인 조건이 된다.

형태로든지 석질이나 색깔, 굴곡과 주름과 살갗(피부) 등 이 어느 것 중에 하나라도 압도해주는 개성이 강렬하게 나타날수록 좋은 수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독창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므로 강이나 바다로 나아가 탐석을 할 때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한 개의 돌에 제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는가 없는가 또는 그 개성이 강한가 약한가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한 요소의 개성적 부분 만으로라도 그 돌이 제 나름의 특색 있는 모습을 가짐으로서 좋은 수석이 되는 문이 열린다.

개성이 없는 돌은 그 표정도 **있다. 자연을 호흡하며 살아 숨쉬는 돌의 개성은 어떤 산지에 따라 그 산지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특징에 의해 찾을 수도 있다.

 

돌의 어떤 요소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살아있는 개성이 있을 때, 이 돌은 빼어난 수석으로 대접받는 우선적인 조건이 된다. 즉, 그 돌만이 지닌 형태미에서 질의 중량감에서, 색상의 화려함에서, 또는 오묘한 굴곡과 주름에서 매끄러운 돌의 살갗 등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어필해주는 강렬한 개성이 노출될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은 곧 독창적인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뜻과 같다.


돌 피부(돌갗)의 오묘한 느낌

돌 바깥 면의 주름과 피부를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다. 이 주름과 피부에 대한 애석감상이 없다면 진정 수석을 모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주름과 피부에 대해 심오한 미감과 세월감을 느껴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돌의 피부 이것은 수석에 있어서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는데 대표적인 것이다. 돌의 피부는 일정하지 않고 수석마다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식물에 있어서 어느 한 품종에 공통점이 있듯이 수석의 산지별로 피부의 특성을 갖고 있다. 대개 수석을 보고 어느 산지라 판단을 내리게 되는 기준은 형태와 빛깔에 있기도 하지만 피부의 양상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산지의 돌들은 거의 비슷한 피부 모습을 보이면서도 조금씩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돌의 피부에 대해서 어떤 종류로 구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이 돌의 피부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석을 감상하는 느낌이 각기 다르며 그 느낌은 감상자의 성격, 취향 등에 의해 달라진다. 피부에 대한 느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太古美에의 감각이다.

 

긴 세월동안 자연의 온갖 작용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역사의 자취가 피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즉 자연의 역사가 피부에 나타나 태고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 때문에 실상 수석의 가치가 있다. 수억만 년의 세월에 대한 느낌이 수석에 집약될 때 감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느낌 속에서 자연의 신비를 깨닫는다.

 

이런 신비로운 태고미에 대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돌이라면 반대로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는 감상자라면 애석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돌의 피부에 대한 느낌은 애석하는 마음의 **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피부의 개성미와 태고미를 감득해야 한다. 수석의 형태가 어찌 되었든 피부의 신비로움 하나만으로도 훌륭히 사랑할만한 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석에 대한 견문이 좁아 시야가 좁게 판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령 보통 수석이 흔히 지니는 피부를 독특한 것이라 여기는 일 같은 경우이다.


그렇다면 좋은 피부는 어떤 것일까?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피부는 깨어진 것 같은 자국이 있으면 안 된다. 까칠까칠한 부분이 잘 마멸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피부의 까칠한 결이 동일한 질서로 흘러 있어야 한다. 즉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좁쌀들이 총총히 박힌 것 같다거나 바늘구멍 같은 것이 벌집처럼 박힌 것 같은 모양이 좋은 예가 된다.

 

하지만 돌의 피부가 항상 까칠한 변화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까칠한 면이 전혀 없이 유리판처럼 매끄러운 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돌은 보드라운 감촉으로 애석하는 마음을 들게 하기도 한다. 피부가 부드러운 돌을 쓰다듬어 보는 감촉은 사랑스러움을 갖게 한다. 그렇게 매끄럽지 않고 약간은 까칠한 피부도 쓰다듬어 보는 감촉이 좋다.

수석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에만 즐거움이 잇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살결과 직접 닿을 때의 감각으로도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각 돌의 피부마다 색다르게 느껴지는 감촉은 유별난 감흥이 든다. 두 손 위에 받쳐 들고 바라볼 때 손바닥에 전달되는 돌의 성품을 섬세하게 받아들일 때 애석의 심오한 경지로 몰입하게 된다.


 

석질에 따른 분류

a. 경도

수석이란 단단하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즉 지나치게 단단하면 차가운 느낌을 주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받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산수나 형상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수석은 보석이나 귀석과는 상이하므로 다이아몬드 같이 모스 경도계로 10도가 되도록 단단할 필요가 없다. 수석으로 가장 적합한 경도는 5도 전후가 표준이다. 좀처럼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우리들의 관상을 받아들이고 형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쉬운 경도는 5도 내외이다.



b. 치밀함

모암(母巖)에서 떨어져 나와 된 것이 주로 수석인데 이것은 대개 2종 이상의 광물의 집합체이다. 이 경우 당연한 일로 그 형성 과정에서 응결도(凝結度)가 높은 것과 낮은 것이 나오기 마련이다. 수석의 질은 치밀한 것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용암처럼 부석거리는 것보다 벽옥(碧玉)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것을 양질로 인정할 수 있다.



c. 질감(質感)

단단하고 치밀한 돌에는 스스로 질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은 단순한 볼륨이나 무게와는 다소 다른 데가 있다. 돌을 손에 들었을 때의 정감어린 느낌이나 감칠맛이 있는 것이 질감이다. 그러나 경석(輕石)이나 납석(蠟石)같은 돌에는 질감이 없다.

즉 돌이란 중량감이 있어야 마음의 평정과 믿음직스러움을 느끼는데 가벼운 돌에서는 그런 느낌이 나올 리 없다. 납석(蠟石)류는 질이 조잡하고 색이 불투명하여 좋은 인상을 받기가 어렵다.



d. 광택

미석(美石)류의 수석에는 좋은 광택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저 윤기가 있으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돌의 심부에서 배어나오는 것 같은 품위 있는 광택이 있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윤광(潤光)이라고 했다. 광택을 내기 위해서는 대개 연마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적인 광택이라면 헝겊으로 닦아도 빛이 나고 윤이 흐르는 것이 좋다.


e. 살갗(표피(表皮))의 느낌

돌의 표면에 살갗이 천연적으로 나타난 주름살이나 기복(起伏) 등의 예취는 참으로 신기하고 볼 만하다. 그러나 대개 살갗이 뛰어난 돌에는 예취가 부족하고, 예취가 뛰어난 돌에는 살갗이 부족한 모습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수석미의 절대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강돌의 경우에는 필요불가결한 조건으로 삼고 있다.



석질(石質)에 대한 고찰

수석은 석질이 좋아야 한다. 석질이 약하면 영구적이고 불변한다는 돌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만다. 질이 견고함으로서 영구히 변하지 않는다는 성질이 강하게 나타나야만 수석의 참된 가치가 높아진다.

 

쉽사리 부서지거나 변질의 가능성이 없는 단단하고 견고한 것이 수석으로 첫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석질이 좋지 못한 돌은 해가 흐를수록 색이 점차 바래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으며 또 자연석으로 표면이 쉽게 상하여 본연의 모양에서 변형될 우려도 크다. 특히 석회석류는 형상이 변형될 가능성이 농후한 돌로 유의하여야 한다. 질이 약한 돌은 조금만 부딪쳐도 흠집이 생겨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수석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치명적인 일로 이런 불행이 오기 전에 애초부터 견고하고 튼튼한 질감 있는 돌을 택해야 한다.

 

석질이 좋은 돌에서는 변함없는 자연의 초연한 풍류가 흐르고 무언부동하는 돌의 참 멋을 풍겨준다. 그러므로 형이나 색이 조금 부족해도 단단하고 견고한 석질을 만났을 때는 자연히 애착을 갖게 되고 애석하게 된다.

 

좋은 석질의 돌은 두고두고 오랜 세월 보더라도 권태가 나지 않는다. 또한 단단하고 견고한 석질이 무조건 양질의 돌이라고만 할 수 없다. 수석은 보석이나 귀석과는 다르므로 그 단단함(경도)에는 사람의 정감을 따뜻이 받아들여주는 포용력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좋다. 돌의 굳기(강도)가 지나치게(경도 7 이상) 단단하면 어떤 형상이 되기 어렵다.

 

수석으로 가장 이상적인 석질의 경도는 모스(Mohs) 경도계로 4도에서 6도 사이가 합당하다. 쉽게 판별하려면 못이나 유리 조각으로 긁어서 긁히면 4도 이하로 알고 그런 돌은 될 수 있으면 선택 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확한 돌의 단단함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모스 경도계가 필요하다. 이 모스 경도라는 것은 많은 광물 중에서 비교적 대표적인 것 10종을 선택하여 상대적 강도에 따라 그 순서를 1에서 10까지의 등급을 매긴 것이다. 참고로 여러 가지 돌(광석)의 경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광석명

경도

적 요

활석

1도

손톱에 부스러진다.

석회석

2도

손톱으로 긁어도 흠집이 난다.

방해석

3도

못이나 칼에 긁혀진다.

형석

4도

못이나 칼에 잘 긁혀지지 않는다.

인회석

5도

유리창과 맞먹는다

정장석

6도

줄칼에 긁혀진다.

수정

7도

줄칼에 긁혀지지 않는다.

황강옥

8도

강옥에 긁힌다.

강옥

9도

유리가 갈라진다.

금강석

10도

광석 중 최고의 경도.


돌의 굳기를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한쪽 광물의 뾰족한 부분으로 다른 광물의 평탄한 면을 번갈아 그어가지고 긁힌 자국이 생기는가를 보아서 경도의 수치를 정하게 된다. 즉, 어떤 돌에 대하여 경도 8인 황옥으로 긁어보아서 자국이 안 나고 경도 10의 금강석으로 긁어보니 긁힌 자국이 생긴다면 그 돌의 경도는 9도 정도라고 측정하게 된다.

 

굳기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보다 쉽고 아주 간편한 것이 있다. 보통사람의 손톱 굳기는 2.5도, 동전은 3.5도, 쇠칼은 5도, 창유리는 5.5도 정도로 보고 있다. 경도 5인 쇠칼로 한 광물을 긁어보아서 그 광물은 전혀 상처가 나지 않은 채 오히려 쇠칼이 닳아질 정도라면 그 광물은 5도가 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손톱, 동전, 쇠칼, 유리의 경도를 늘 기억해두고 있다면 어디서든지 필요할 때 간단히 시험해서 어느 정도의 굳기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수석이 될 수 있는 돌

지각을 형성하고 있는 암석은 화성암(火成巖)과 퇴적암(堆積巖)과 변성암(變成巖)의 세 가지로 나뉘고, 다시 그 산장(産狀)이나 성질 등에 따라 세분되는데 그 중에서 수석으로 관상되고 있는 것의 모두가 변성암 중의 접촉변성암과 광역변성암이다. 지하 1천 km까지를 덮고 있는 암석의 90%이상이 화성암인데, 이것은 마그마가 식어서 굳은 것으로 깊은 곳에서 생성된 심성암은 냉각 속도가 느려 결정의 모양이 크고(화강암 류), 유문암? 현무암 같은 화산 분출암은 빨리 냉각되어 결정이 치밀한 유리질 암석이 된다.

 

퇴적암은 자갈? 모래? 진흙? 생물의 유체 따위가 지표에 퇴적되어 굳어진 것이다. 변성암은 마그마의 관입에 따른 고온이나 고압으로 인해 화성암이나 수성암이 변질된 것이다. 이 가운데 수석의 조건에 알맞은 것은 변성암이다. 지층 연대로 보면 고생층이 수석의 산지가 된다.

 

한편 아름다운 문양석을 많이 내는 것은 퇴적암층이다. 퇴적암층은 여러 개의 단층이 시루떡처럼 포개져 그 사이에 층리라는 무늬가 생기는데, 이것이 지각의 융기, 또는 하강 작용을 입으면 기묘한 문양을 그리게 된다. 각층에 함유된 입자의 배열에 따라서 잔잔한 무늬(엽리(葉理))가 생기는데 퇴적 시 물이나 대기의 작용이 맹렬할 대에는 입자들은 빗질한 자국처럼 복잡한 파형(波形)의 문양을 내기도 한다. 이를 사교엽리(斜橋葉理) 또는 연흔(漣痕)이라고 한다.

 

수석에서 문양이라 이를만한 것은 대개 사교엽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퇴적암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화석이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른바 매화석(梅花石) 류의 화문석은 방추충(紡錘蟲), 해백합(海百合) 등의 화석을 품고 있는 석회암이다.

우리가 즐기는 형상석은 어떤 과정으로 생기는가! 화성암이나 수성암은 굳어질 때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기는데 암석이 풍화되면 균열이 크고 듬성듬성해진다. 그래서 균열이 많은 암석은 그 부서지는 모양에 따라 가지가지 형상으로 태어난다.

수석이 될만한 크기의 돌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큰 바위가 오랜 세월 풍화 작용을 받아 한쪽 모서리가 균열되어 떨어진다. 이 돌덩이가 산사태로 계곡에 몰리게 된다. 이것이 폭우나 장마 때 물에 닦이고 씻기면서 강으로 운반된다. 하구에는 모래가 많고, 상류로 올라갈수록 자갈이 굵어지고 모양이 거칠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이 유수에 운반된 거리와 유수의 양, 그리고 하천의 규모나 생김새에 따라 돌의 형태도 달라진다.

 

석질이 단단한 것은 보통 변성작용을 거친 것인데 그 중에서도 결정편암(청석(靑石) 류)은 가장 강한 변성 작용을 입은 암석이다. 마그마의 관입에 의해 접촉? 변질된 혼펠스(진흑석(眞黑石))는 적당히 닦으면 광택이 은은히 난다.

돌이 색조를 띠게 되는 것은 화성암이나 퇴적암의 경우에 차이가 있다. 퇴적암은 암석이 함유하고 있는 무기물의 성분에 따라 다른데, 이산화규소나 탄산석회는 대체로 흰빛을 내는 이암(泥巖)에 철이 함유되어 있을 대에는 일산화철과 이산화철의 함유량에 따라 적(赤)? 자(紫)? 녹(綠)? 흑(黑) 등 다양한 색채를 지닌다. 이산화규소가 많은 것은 석질이 치밀하고 광택이 있어 한결 볼품이 있다.

 

화성암의 경우에는 이산화규소의 함유량에 따라 좌우되는데 간추려 말해서 유색광물과 무색광물 양의 비율에 달려 있다.

변성암은 색채석보다 문양석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혼펠스 중에는 암석에 함유된 광물이 아름다운 반점 모양을 만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수석으로는 화성암이나 퇴적암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성인인 것으로는 조잡하여 질감이 부족하거나 또는 연질로 품위가 떨어져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복잡한 생성과정을 거쳐 온 것일수록 관상상 재미있는 것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신생대보다도 고생대인 암층 쪽에 경질인 양석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질에는 각각 그 나름대로의 본질이 내포되어 있다.

즉, 개략적인 사항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석회암질- 형태가 아름답고 기괴한 형상석.

② 퇴적암층- 문양석, 화석, 화문석 등.

③ 결정편암- 진흑색의 형상석 또는 경석.

④ 화성암층- 다양한 색채석.


이상과 같이 각 암층의 석질에 따라 수석으로 각기 다른 특이한 개체미의 형으로 구분되어 태어난다.


돌갗의 종류

돌의 피부를 보면 가지가지의 양상을 보게 된다. 이 돌의 표면에 형성된 여러 가지의 것을 한 마디로 ‘돌의 피부’가 어떻다 하고 대개 말하고 있다. 피부란 단어를 한글로 ‘살갗’이라 하므로 돌의 피부에 대해서 ‘돌갗’이란 순우리말로 표현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돌갗’의 독특한 개성미는 수석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데 큰 구실을 한다.

 

형태가 별로 잘생기지 않았음에도 돌갗이 보기 드문 독특함을 나타내어 신비함이 풍겨날 때, 또 돌갗의 때깔과 맵시가 아름다움을 자아낼 때, 이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수석감으로 귀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돌갗의 생김새는 아주 다양하다. 물씻김이 잘되어 뽀얀 살결에서 느끼는 것 같은 감흥을 받는 것이 있다. 돌 면(面)이 까칠까칠한 특유의 결을 지닌 것도 있다. 좁쌀알들이 수다하게 모여 붙은 듯 한 살갗을 가진 돌이 있다. 물씻김이 안된 채의 거친 피부 즉 정으로 조금씩 쪼아서 다듬은 것 같은 돌갗이 있다. 또 구김살 같은 것, 자잘한 주름으로 이뤄진 것... 등등 여러 가지의 양상이 돌 표면에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그 수석의 독특한 멋과 개성미를 돋구는 것이다. 돌갗이 형태와 색깔과의 볼품 있는 조화를 이뤄줌으로써 그 돌은 독창성 있는 훌륭한 기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돌 표면에 이뤄진 주름의 양상도 여러 가지이다. 깊게, 옅게, 크고 작게 패이며 잡혀진 주름은 수석의 개성미를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주름의 양상을 크게 나누면 왕주름, 주름, 곰보주름 등이며 그 외에도 갖가지의 특이한 형상이 많다.

수석의 살갗에는 수 천 만년 또는 수 억년 이전의 성인과 오랜 풍화? 침식 등의 작용에 의하여 자연히 만들어진 각가지의 오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냇물에 물씻김된 돌에는 유수의 작용도 가미되어 같은 아취를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살갗의 느낌을 감상하는데 참고가 될 사항은 아래와 같다.



A. 외피(外皮)와 표피(表皮)

주로 강돌의 경우지만, 전석(轉石)으로 산에서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돌은 냇물의 작용 등에 의하여 물씻김을 받은 결과 연질부(軟質部)가 닳아 없어지게 되는데 이 부분이 살갗결이 된다. 그리고 경질면은 남아서 부드럽고 매끈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껍질결이라 하게 된다.

강돌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것에는 껍질결이 어디엔가 일부분 남아 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살갗결이 느껴질 것이다.


B. 곰보돌

무에 바람이 든 것 같은 상태가 석면에 나타나 있는 모양을 말한다. 또는 벌이 벌집에서 날아간 뒤의 구멍이 숭숭한 벌집 같은 상태를 말한다.

휘록응암질(輝綠凝巖質)인 돌의 표면에서 또한 현무암(용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나 한탄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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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사붕(蛇崩)

석면이 구불구불하게 뱀이 지나간 자국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복(起伏)이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껍질결의 기복 있는 주름을 말한다.


D. 미립점(米粒點)

emb00000224000b미립점이란 화법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로 수석의 경우에는 많은 미립점의 구멍이 뚫린 상태가 석면에 나타나 있는 것을 가리킨다. 곰보돌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미립점 쪽은 경질의 석면에 대하여 일컫는 편이다. 또한 그것과는 정반대로 미립정도의 소(小) 융기점(隆起點)이 숱하게 돌의 겉면에 있는 경우를 가리킬 때도 있다.



 

E. 주름살 emb00000224000c
돌 표면에 나타난 주름을 말한다. 수석에서는 이 주름살이 유동적으로 많이 흐르고 있어야 좋다고 한다. 이 주름이 없으면 나무나 단조로워 권태스럽다. 이 주름은 파문처럼 퍼지는 것과 한편으로 흐르는 것 등 석질에 따라 다양하다.



F. 배껍질

emb000002240011마치 배의 껍질처럼 작은 반점을 닮은 구멍이 숱하게 나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강석 중에 가끔 볼 수 있는 석면은 그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덧붙여 설명하면 이런 석면은 검고 치밀한 혼펠스 중에서 산재해 있던 흑청석이 생성 과정에서 분해? 유실된 자국이라고 한다.



G. 잔주름

주름살과는 달리 석면에 나타난 습곡(褶曲)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광역 변성암(廣域 變成巖)이 압력에 눌려 찌그려졌을 때에 흔히 잘고 복잡한 잔주름이 파도치듯이 나타나 있게 된다.


 


H. 우물돌

emb000002240012웅덩이처럼 넓게 패어 호수형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박아 쳐서 패인 자국이 느껴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말하자면 사붕보다도 더 깊은 요부(凹部)로, 깊은 골짜기 밑바닥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다. 현무암에서 이런 형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I. 실 패

이것은 사암(砂巖)에 단단하고 굳은 석영맥이 마치 실을 감은 듯이 여러 갈래로 감겨져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강원도 영월 지방에서 비교적 많이 찾아볼 수 있다.


J. 차돌(석영(石英))

emb000002240010석면에 석영 또는 석회질이 관입하여 마치 바윗돌이 많은 바닷가에 흰 파도가 거칠게 몰려와 흩어지는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한다. 흰 부분이 위로 넓게 박혔으면 잔설(殘雪)의 경으로 관상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가끔 쓰이는 용어들이 있는데 그 뜻하는 바는 모두가 감상적인 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더 많은 용어들이 동호인들에 의해 개발되겠지만 관상의 포인트를 파악하는데 의의를 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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