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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산수경석 보는 方法 (1)

高山 | 2009.08.12 14:52 | 공감 0 | 비공감 0

*** 자연 속에 담겨진 산수경석***

 

             (山水景石)


준수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 그 밑으로 거울 같은 호수. 그리고 시선(詩仙)들이 노닐만한 정자. 이렇듯 선과 물이 어울리고 거기다 금상첨화 격으로 아담한 정자까지 곁들였으니 과연 이곳이 천하제일경이 아닌가 싶다. 한 폭의 그림보다 더 실감나는 정경이 가슴에 와 닿는 빼어난 산수경정석이다.

곱게 빚어 올라간 주봉 바로 밑에 고풍 감도는 한 채의 정자는 옛적에 많은 풍류객과 묵객(墨客)들이 모여앉아 아름다운 이 산천을 노래하며 주연(酒宴)도 정담을 나누며 해지는 줄 몰랐으리라.


산수경석을 좋아해온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자연을 담고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심원한 자연경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기도 하고 순수한 인간 본연의 심성을 끌어올리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경 중에서 특히 변화무쌍한 형태의 수석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고도의 정신세계를 비상시키는 경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런 경지는 예술의 경지와도 어떤 상충된 면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한 점의 수석을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훌륭한 미술작품을 보고 느끼듯이 산수경을 보고 느끼는 감흥은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적? 예술적 욕구를 발산시키는 충만한 에너지 역할을 한다. 미술작품의 우열을 논하듯이 수석도 우열을 논한다. 이때의 기준은 외형적 기교와 생김새 이외에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도 포함되어 있다.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외형적 조화를 감상자가 가장 잘 읽을 수 있게 하는 어떤 심술(心術)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수석의 신묘함에 취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읽고 그 뜻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는 예술 창작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위적인가 아닌가는 수석감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외형적 미를 강조한다고 해서 작위를 가하면 이미 그 돌은 그냥 조각품에 지나지 않는다. 수석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닐 때 본래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옛 선인들이 자연경물과 가까이 하면서 심성을 키워왔고 넓혀왔듯이 자연은 인간의 내적? 외적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자연 속에서 찾은 산수경석의 화의(畵意)나 시정을 바탕으로 미를 재구성하여 더 높은 세계로 몰입한다. 자연 그 자체는 무한한 존재이므로 자연을 모태로 한 수석의 미적관조의 세계도 그 한계가 무한하다. 때문에 수석을 평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수석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수석을 평가한다는 것도 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수석은 그 한계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수석감상은 자신의 체험과 미적감흥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만 수석미는 오랜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정제되고 이론의 학습과 정리를 통해 체계화 될 때 많은 수석인들이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수석생활이나 감상에 있어서 ‘공감’을 매우 중요시해야하며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적인 수석의 요점

이상적인 수석이 되려면 자연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를 고루 갖춘 자연모습 그대로의 돌이어야 한다.


ㄱ. 자연적 요소의 조건


자연의 형태는 우리 마음속에 관념적으로 영원히 변함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변하지 않는 치밀하고 강도 높은 자연석이 좋다. 즉, 자연이 만들어 낸 본래 상태의 돌이라야 한다. 본래 인간의 정서는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작은 자연으로 큰 자연을 대변하는 수석이 자연 그대로의 돌이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인공이 가미되면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힘들다. 조각이나 멋진 조형물이 자연 중의 좋은 느낌을 주는 요소를 강조하여 표현한 자연의 모방임을 볼 때 자연의 고귀함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수석은 예술 그 이상의 차원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돌의 전체 밑 부분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지면에 접하여 안정되어야 한다. 거대한 바위나 먼 산 등을 보면 밑자리가 말려 들어간 듯 불안정한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서 볼 때 밑이 파이거나 깎여 불안한 듯 보여도 멀리서 보면 그 부분이 미미하여 전체가 안정되어 있다. 우리가 수석을 느끼는 것은 마음 깊이 내재한 관념에서 시작한다. ‘자연은 편안하며 안정되어있다.’는 그 관념에 적절해야 비로소 작은 돌에서 큰 자연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관념적 요소이다.


또한 돌의 전면 중앙이 배부르듯 불룩하지 않고 움푹 들어가서 좌우 양끝이 보는 이의 앞으로 모이는 형태이어야 하겠다. 큰 산을 보게 되면 좌우 끝을 다 볼 수 없고 시야에 들어오는 부분은 모두 양끝이 앞으로 모아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산은 전후좌우 사방으로 뻗어있으나 앞쪽으로 뻗은 부분만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자연의 산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런 돌갗의 주름이나 미세한 돌기? 홈 등은 수석의 묘미를 더해준다. 계곡, 호수, 샘 등의 형태를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흑갈색이나 검은 계통의 색감도 갖추어야 한다. 흑갈색은 고태미가 있고 검은색은 안정감이 있어 미지에 대한 신비감이나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자연은 우리의 관념 속에 빨갛고 파랗거나 하얀 색깔이 아니고 무게 있고 은은하게 남아있다.


수석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 깨지고 모난 바위로 이루어진 산도 멀리서 보면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의 연결로 되어있다.


돌 전체가 군살이 없이 날씬해야 하며 살찐 듯 둔해 보이거나 아래보다 위가 무거워 불안감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 야윈 것일수록 웅장한 경정을 보인다.

돌의 앞뒤로 적당한 두께를 가져야 한다. 실제로 자연은 안정된 입체로 되어 있다.


수석에 있어서 산이나 능선 등이 돌의 전면에 위치함으로 인해 뒤쪽의 경정이 가리지 않아야 하겠다.

눈에 보이는 주위의 산들이 모두 머리 속에 들어와서는 저마다 좋은 부분만 머리 속에 남아 ‘자연이란 웅장하고 그윽하며 조화가 빼어난 것’으로 관념화되어 이상적인 수석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ㄴ. 미학적 요소의 조건

사람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공간 설정이나 조화로운 입체의 구성에 필요한 요건을 미학적 요소라고 한다. 수석에서도 당연히 이런 것이 필요하며 미술에서 사용되는 황금분할 구도 등의 요소도 갖추면 좋을 것이다.

수석에서 요구되는 미적인 요소를 여러 가지 돌의 형태별로 알아보기로 한다. 수석은 크게 모양석과 문양석으로 나뉘며 유사한 것으로 화석과 가공석이 있다. 산지별로는 강돌, 바닷돌, 산돌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수석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마찬가지이다.

 


원산형(遠山形) -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산

원경(遠景)으로 아스라이 떠오르는 먼 산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산의 경관이다.

원산석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대체적으로 높은 산은 고고한 느낌을, 낮은 산은 평온한 느낌을 준다. 흔히 單峰, 雙峰, 連峰으로 나눈다.

수려한 몸매의 어여쁜 산이다. 그림보다 더 고운 산 수석인들이 누구나 꿈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遠山의 섬형이다. 곱게 빚어 올라간 동그스름한 산봉우리를 정점으로 좌우로 흘러내린 느슨한 능선의 유선미(流線美)가 황홀하다.

우측 산기슭이 드넓게 펼쳐진 평야도 압권이다. 그 푸른 초원에는 풀을 뜨는 소가 한가롭고 목동의 풀피리 소리도 메아리쳐 올 것 같다. 좌측의 산자락이 길게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면서 천연의 방파제를 만들어 아늑한 포구도 생겼다. 도들도들한 지리산 특유의 돌갗이 묘미를 더해주고 시미(詩味)도 안겨준다.


단봉형(單峯形) - 드높은 위용과 격조 높은 기품

단봉으로 뚜렷한 경정은 없지만 단단한 석질의 돌갗이 곰보처럼 들고 나는 변화를 주어 수석미 관상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의 뒷동산처럼 포근하게 생긴 자애롭고 안온한 산. 그래서 어린시절 엄마의 품에 안긴 듯 따사로운 정감이 넘치는 편안한 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렸을 때 성장한 고향과 어머니는 **도 못 잊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가 항시 그리는 심상 속의 고향산은 유명한 명승지의 명산이 아닌 그저 둥그스름한 온화하고 유순한 산이다. 꾸밈이 없는 그리 예쁘지 않은 산이기에 더욱 고향의 老母가 그리워지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 같은 산이다.


산봉우리 하나 우뚝 솟아오른 산의 형태를 말한다. 비록 봉우리는 하나이지만 우뚝 솟은 기상과 산봉에서 기슭까지 내려 뻗는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소박한 맛이 있어야 한다.

이 산형은 비교적 단순하여 쉽고도 어렵다. 원추형 돌에 봉이 하나 불쑥 솟았다고 무조건 단봉으로 보면 안 된다. 반드시 좌우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게 기슭까지 흘러내려와 산다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단봉은 그 하나의 봉에서 드높은 위용과 격조 높은 기품이 감도는 산형을 갖춘 것이 바람직하다.

험준한 산의 윗부분 봉우리만을 나타낸 것, 뒷동산의 낮은 야산봉, 가파른 산악이지만 봉우리 하나로 솟아있는 것, 높은 화산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렇듯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나 산의 경치를 암시 상징해 주는 돌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냥 볼품없이 원추형으로 솟았다고 하여 모두 단봉형(單峯形)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좌우로 능선의 흐름이 있어야 하고 전체에 산세의 기운이 잠겨 있어야 한다.

 

앞쪽으로도 경사지게 흘러내리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골짜기와 파여진 듯하게 우묵한 형상이 한두 군데 퍼져 흐르면 기품이 썩 돋보인다. 그리고 될 수록 한 쪽 능선이 가파르고 다른 쪽의 능선은 보다 밋밋하게 흘러서 봉우리의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든 좀 치우쳐서 위치해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쌍봉형(雙峯形) - 조화와 균형의 극치미

선은 조형예술의 기본이고 모든 형태의 윤곽이 된다. 강한 선이 또렷하게 윤곽을 그린 유연한 곡선의 유려한 율동감 그 생동하는 여운(餘韻)이 아련히 퍼지면서 아득히 보여주는 멀고 먼 원경의 그림 같은 원산의 극치미... 詩가 흐른다. 근경인 주봉은 天工이 곱게 빚어 만든 듯 어여삐 솟았고, 원경인 원봉은 아득히 가물거린다. 남한강 고운 모래에 다듬어지고 해맑은 물살에 씻기어진 아취 있는 형? 질? 색 하나도 나무랄 데 없는 빼어난 돌이다.

주봉(主峯)과 부봉(副峯)의 두 봉우리가 멋지게 어우러진 산형을 말한다. 이 경우 산용(山容)다운 모습이 되려면 주봉(主峯)과 부봉(副峯)이 동질성을 지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한다.

주봉(主峯)이 우뚝 솟아 기세를 보이고 그 옆으로든 앞으로든 보다 낮은 산봉우리인 부봉(副峯)이 위치하여 단봉형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두 개의 봉우리 생김새가 이질적인 형상을 가져, 마치 검둥이와 흰둥이가 나란히 서 있는 것과 같은 엉뚱한 별개의 모습이라면 그리 좋지가 않다. 두 봉우리는 동질성을 지닌 조화를 이뤄야 보기 좋다.

역시, 능선의 흐름에 변화가 있으면 더욱 좋고, 돌갗(피부)에 주름이 잡혀 있어 골짜기의 이미지를 풍겨주면 더욱 좋다.

 

그리고 주봉과 부봉 사이에는 서로 연결되는 능선의 흐름이 있어야 하며, 두 봉우리가 별개의 것처럼 뚝 떨어져 있는 형상이라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돌이 풍겨주는 분위기에 따라 두 봉이 각각 독립되어 있는 상태가 더 돋보일 때도 있다.

때로는 주봉(主峯)과 부봉(副峯) 사이가 우묵 파여져 물이 고이게 된다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호수의 경치를 아울러 품게 되며, 이것을 쌍봉 호수석이라 부를 수 있다.


연산형(連山形) - 연이은 봉마다 심원한 묘미가

산형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주봉을 중심으로 부봉, 원봉이 좌우로 뻗어나간 태산준령의 웅장한 산세를 느끼게 하는 돌을 말한다. 돌 주름이 산맥처럼 생기 있게 뻗히고 크고 작은 봉이 우뚝우뚝 솟을수록 웅장미가 있다.

봉우리가 서로 이어져 가는 산맥의 형세가 이루어져야 그 변화에 심원한 묘미가 있다.

泰山峻嶺을 방불케 하는 연봉들이 높고 낮게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좀 이색적인 山容을 보여주는 경관으로 뻗어나간 산세가 뚜렷하고 능선의 변화 있는 흐름도 이상적이다.

봉우리마다 제각기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매혹적이다. 산자락 밑에 약간의 배들이도 묘미를 더해주고 왼쪽 기슭에는 계류가 넘쳐흐르다가 폭포로 변하여 기운찬 물기둥을 땅에 꽂는다.


봉우리 사이로 하얀 석질이 박혀 아래로 흐르는 형상을 가지면 그것은 멀리 폭포가 떨어지는 광경이어서 연산형(連山形)은 아주 우람하고 수려해진다.

봉우리가 많이 솟아 있는 돌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석에 대한 유명한 기록이 있다. 중국 송(宋)대에 이름난 서화가로 ‘돌 미치광이 (石狂)’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많은 애석 일화를 남긴 미원장(米元章)(1051~1107)은 길이가 한자 정도밖에 안되는 연산석(連山石)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돌에는 서른여섯 봉우리가 비죽비죽 솟아있고 못과 구렁과 동혈(洞穴)이 갖춰진 명석이었다. 미원장(米元章)은 그 연산석(連山石)에 대해 시를 읊기를,


“…… 단정히 바라보면 비로소 산하를 보는 기분이다……. 비와 이슬은 그 봉우리 아래에 있으니 어찌 초목이 번성하는데 부족함이 있겠는가…… 머리를 들어 우뚝이 솟은 봉우리들을 보자니 지극히 높고 가파로우며 반드시 그 밑에는 신선한 물이 있음을 알겠다. 이 깊고 맑은 물은 하늘 구름의 경치를 끌어 모아 물 위에 비치게끔 한다.……”


검봉형(劍峯形) - 창검같이 예리한 준엄한 산세


산봉우리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뾰족 솟아올라 흡사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케 하는 준엄한 산세의 창검 같은 예리한 산을 말한다. 솟아오른 봉의 높고 낮음이 분명할수록 좋으며 삐죽삐죽 돋아난 봉마다 날카로운 예지와 박력이 깃든 남성적이고 동적인 산을 말한다.


평원석의 삼원법(三遠法)

개자원(介子園) 화첩을 보면 곽희가 산수경을 그릴 때 원(遠), 근(近), 평(平)을 나타내기 위한 화법을 삼원법이라 했다. 화첩의 원문을 보면 “산 밑에서 산마루를 쳐다보는 것을 고원이요, 산 밑에서 산 위로 굽어보는 것이 심원이며, 근산에서 멀리 원산을 보는 것이 평원이다.”라고 써 있다.

 

수석에서 무한히 넓은 평을 연상시키는 수석감을 평원석이라 한다. 평원석은 지평이나 수평 어느 쪽을 생각하든 감상자의 마음가짐이다. 평원석의 삼원법이 동양화 기법의 접목이면서 돌에 적용된 높고 낮음과 평의 대비는 그림과는 다르다. 평면의 나타남도 입체적인 실물이다. 앞과 뒤, 계곡, 하늘을 느끼고 투영되는 그림자를 감상하게 되며 투를 통해 뒤의 먼 공간까지 감상한다. 수석의 평면보다는 입체적인 선바위에서 강렬함과 신비가 더 와 닿는다

 

삼원법에 적용되는 수석감은 편안하다고 말하는 감상자가 있으나 입암이 주는 신비로움이나 넉넉함과는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평원석은 원, 근, 평의 대비가 안 될 때는 시원함이 절감된다.

평원석은 수평이나 지평선 저 너머에서 무엇인가 실려 오는 듯한 아득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평원석의 높낮이 비교에서 오는 감상은 변화무쌍하고 기상이 있는 수석감에서 받는 깊은 맛과 우러남은 없다.


 

평원형(平原形) - 넓게 펼쳐진 들판과 아득한 산의 원

광활한 들판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아스라이 보이는 언덕이나 산봉우리가 멀리 보이는 원경의 경관으로 넓은 평면을 이룬 형을 말한다.

먼 산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길게 펼쳐져 산기슭과 들판이 조화 있게 맞닿아야 이상적인 평원석이라고 할 수 있다.

평원석은 단석형(斷石形)과 혼동되기 쉽지만 평원석에는 원칙적으로 단층이 없고 다만 언덕이나 산봉우리의 기복이 평야와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평원석의 주안점은 산과 평야와의 평면과 높이의 비율로 대개 7대 3 정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산이 높으면 여기에 비례해서 평원의 넓이도 더 넓고 길어져야만 자연스런 원경이 된다.

볼수록 마음 후련해지는 시원스런 경관의 평원석이다. 첩첩이 겹산으로 앞을 가리는 산수경도 좋지만 때론 가습 답답할 때 이렇게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경치를 바라봄도 기분 전환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평원석은 앞이 훤히 트인 경관이 우선적이므로 앞뒤가 답답하지 않게 시원히 펼쳐져 나가야만 제 맛이 난다. 저 멀리 아스라이 떠있는 원산이 향수에 젖은 고향의 뒷동산 같다. 그 산줄기를 따라 물 흐르듯 아련히 뻗어나간 고운 선의 먼 능선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광활하게 평지가 전개되는 이 평원경의 맛과 흥취는 무엇보다도 원근에 대한 감각이 세련되어야 더욱 깊어진다. 보는 사람마다 후련함을 느끼고 확 트인 해방감, 때로는 고독의 요람 속을 헤매게 한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도시의 번거로운 혼잡 속에서, 사람들과의 미묘한 갈등 속에서 훌쩍 뛰쳐나와 아득한 평원의 경치를 바라보노라면 답답증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해방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것을 자그마한 평원석에서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평원석에 있어서 평평한 저 끝에 콩알만 하게나마 봉(峯)이 생겨 있으면 아득한 산처럼 감상하게 되며, 그러한 봉이 여러 개 있으면 말할 수 없이 더 좋다. 또 평면에 파여 들어간 부분이 있으면 풍우설상에 의해 파헤쳐진 구렁이나 늪 또는 평야의 호수로도 보게 된다.

주봉이 경사지게 내려오다가 능선의 굴곡이 이뤄져 또 다른 언덕이 솟아 있어도 좋으며, 주봉과 평지가 맞닿는 곳이 해안의 포구처럼 드나듦이 이뤄져 있으면 보다 감상하기에 흥겹다.


토파형(土坡形) - 산맥과 평원이 조화를 이룬 풍경석

토파형은 낮은 구릉과 평원의 경치석이다. 산 또는 산맥 풍경과 평야가 연속된 평화로운 풍경석이라 할 것이다. 산이 높으면 평야가 작아 보이고 산이 낮으면 평원이 넓게 보인다. 이상적인 토파형이란 참 어려운 주문으로 산과 평원, 언덕과 평야의 비율을 따지자면 산이 1이고 평원이 5의 비율, 언덕이 1 평야가 3의 비율이다.

 

특히 좌봉이거나 좌구릉일 때에는 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坡)나 단(段)은 원산형이나 도형, 갯바위형에도 국지적으로 조금씩 붙어있는 것은 토파라 하지 않는다. 비중의 느낌에 따라서 형태의 호칭도 달라질 수 있다. 높아야 할 구릉부분이 낮고 작게 보여도 그 부분에 굴곡이 있고 변화가 있어 사람의 눈을 끌면 낮은 평야와 균정(均整)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예술적인 감각상의 것이다.

 

대체로 평원석과 혼동하기 쉬우나 드넓은 대평야의 시원한 맛을 풍기는 평원과는 달리 산간의 작은 언덕에 평탄하게 이루어진 산경으로 평원은 원산을 상징한다면 토파는 가까운 거리의 근산(近山)을 상징하고 있다.

토(土)는 평지, 파(坡)는 언덕을 뜻한다. 비탈진 면이나 평원 등의 경정을 생각게 하는 평평한 면을 지니고 있는 형태의 것을 토파(土坡)라고 부른다. 단석형과 혼동하기 쉬운 것인데, 원칙적으로 토파에는 단층이 없다.

 

또, 그 정상부는 반드시 연마된 평면이 아니라도 무방한 것이다. 즉, 실제의 비탈면이나 평원이 언덕에 있고, 움푹한 곳이 있고, 각각 언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융지(小隆地)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일부에서는 오해가 있는 것 같으나 토파면에서는 이랑과 같은 요철(凹凸)이 있어도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산악 중에 극히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작은 경(景)의 평지이다. 또는 커다란 바위 위가 평탄하게 이루어진 양상이다. 또는 산 밑에 이루어진 오솔길의 평탄한 부분을 말하기도 한다.

 

산을 타보면 바위가 불쑥 올랐다가 그 위가 평면을 이루고 있는 것, 산길 가에 평평한 지대가 이뤄지고 그 밑이 벼랑인 곳, 언덕 위가 깎여진 듯 평지를 이루고 있는 상태... 이러한 경치를 이따금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토파(土坡)이다. 이 토파의 경(景)을 닮은 돌이 바로 토파석(土坡石)인 것이다.

이 토파의 경이 하나의 돌에 형성된 것이 있는가 하면, 여타의 산수석에서 어느 한 일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꽤 있다. 이 토파의 경을 감상하노라면 먼 나들이를 가다가 그 곳에서 피로한 몸을 잠시 쉬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평안한 마음으로 산 경치를 두루두루 구경하는 한적(閑適)의 기분에 잠기게 된다.


폭포석(瀑布石) - 장쾌한 물소리가 시원하게 하얀 석질이 하나의 돌 가운데에 박혀져 뻗어 내린 모습이 마치 폭포가 흐르는 듯한 이미지를 풍겨주는 돌이다. 그 흰 줄기가 석회질일 경우엔 오랜 세월이 흐르노라면 이따금 변색되는 경우가 있으며, 또 어떤 석회질은 물을 뿌리면 흰색이 바래버린 듯 칙칙한 회색으로 변해버리는 예도 있다. 그래서 바람직한 흰 석질은 석영질(石英質)이나 규석질(硅石質)이어야 상급으로 치게 되는데 이러한 석질로 이루어진 폭포석은 흔하지가 않다.

폭포석의 형상은 실지의 폭포 경치에서 보이는 바처럼 여러 가지의 경(景)으로 나누게 된다. 첫째로 높은데서 직하로 떨어지는 폭포석이 비교적 흔하게 발견된다. 또 두 개의 흰줄기로 쌍폭을 이룬 것이 있고, 흐르다가 솟구쳐 또 다른 한 곳으로 쏟아지는 이중폭(二重瀑), 삼중폭(三重瀑)을 생각할 수 있다.

폭포가 떨어지다가 큰 바위덩이에 부딪혀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는 형상도 있다. 여러 갈래의 물줄기로 철철 넘쳐흐르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골짜기를 파고 굽이치는 계류(溪流)가 있다. 이러한 물길이 곧장 강으로 힘차게 흐르는 경(景)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경을 마음껏 상상할 수가 있다. 이 물줄기는 돌 전체의 경정과 흡사 어울리는 필연성과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飛流直下三千尺- 李白이 중국 강서성 여산에 있는 망여산 폭포를 보고 읊었듯이 이 폭포의 물줄기도 삼천길이 훨씬 넘게 곧바로 떨어질 것 같다.

 

疑是銀河落九天- 하얗게 부서져 흩어지는 물보라를 보고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반짝이는 것인가 라고 그 장관을 七言絶句로 읊었듯이 여기 까마득 높은 벼랑에서 내려 꽂이는 물기둥의 시원함과 장쾌한 물소리가 산천초목을 진동시키는 것 같다. 쌍봉 한가운데 골짜기를 타고 기운차게 직하하는 물줄기가 생동감을 주어 淸凉感도 넘친다.


무조건 맨 꼭대기에서 흰 줄이 뻗어 내린 것은 탐탁치가 않다. 수원(水源)이 이뤄질만한 뒷산 배경이 있은 다음에 폭포가 떨어지는 필연성이 있어야 바람직하다. 또 폭포가 떨어질 만한 자연스러운 조건이 형성되어 있어야 좋다. 폭포가 있는 주변의 형상이 항상 산악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어야 감상 가치가 높아진다.

 

그리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박력 있게 넘쳐흘러 움직이는 듯한 동적인 느낌을 풍겨야 좋다. 흰 석질의 줄기가 도두룩하게 삐져나와 있으면 더욱 실감이 있어 좋다.

하지만 폭포석이 잘생겼든 못생겼든 마음먹은 대로 구해지지 않으므로, 흰 석질이 박혀 있는 돌이라면 일단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폭형(單瀑形) - 외줄기 폭포의 장관

계곡 높은 절벽을 타고 외줄기로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형을 말한다. 이 단폭에는 높은 곳에서 밑으로 바로 떨어지는 직폭의 단조로운 경관이 흠인데 그 돌 전체에서 나타나는 산수미의 정경과 그 폭포가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없는가가 그 관상의 요점이 되는 것이다.



쌍폭형(雙瀑形) - 두 줄기의 물기둥에서 생동감이

높은 단애에서 두 줄기의 하얀 물기둥이 떨어지는 형으로 한줄기의 물이 흐르다가 두 줄기로 갈라져 흐르는 쌍폭이 있고 골짜기가 각각 다른 곳에서 떨어지는 두 가닥의 물기둥을 이루는 쌍폭도 있다.


쌍폭은 대개 굽이치는 곡폭(曲瀑)이 많은데 물줄기가 굽이굽이 바위틈을 맴돌며 떨어지는 경관은 상쾌하다.

 

계류형(溪流形) - 해맑은 벽계수에서 자연의 숨소리

청산리벽계수처럼 산골짜기를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졸졸 또는 줄기차게 흐르는 물살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형을 말한다. 깊은 계곡에서 바윗돌을 치며 기운차게 흐르는 계류와 조약돌을 자근자근 핥으며 졸졸 흐르는 계류가 있다.


어떤 형태의 계류이든 필히 동적이어야 하며 물의 움직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

 

단폭형(段瀑形) - 높고 낮음에 따른 물줄기의 힘

계단처럼 2단, 3단 층계를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를 말한다. 단의 높고 낮음에 따라 쏟아지는 물줄기의 힘이 강하고 약하게 조화 있는 리듬에 맞추어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음폭형(陰瀑形) - 유현하고 오묘한 풍치

깊은 협곡에 파묻혀 폭포의 물줄기가 잘 보이지 않는 숨은 폭포를 말한다. 이런 폭포는 골짜기가 깊이 파여져 들어갈수록 유현하고 오묘한 풍치를 연상케 한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눈보다 귀로 감상하는 운치 있는 돌이다.


 

빙폭형(氷瀑形) - 얼음 폭포의 청량한 풍미

한겨울 혹한에 얼어붙은 얼음 폭포로 시원하고 청량한 풍미를 맛보게 한다. 또는 북극의 만년 빙폭을 연상케 하는 경(景)이라면 하얀 석영질의 차돌이 울뚝불뚝 솟구쳐 박힐수록 빙폭으로서 제격이며 이런 돌에서는 한여름에도 서늘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폭형(乾瀑形) - 비가 오면 큰물이 쏟아지는 장관

계곡이 깊이 파여져 있으나 하얀 석질이 박혀 있지 않은, 즉 물이 마른 폭포를 말한다. 비가 오면 큰물이 쾅쾅 쏟아져 큰 물기둥을 보였다가 가물면 씻은 듯이 메마른 골짜기로 바뀌는 계곡을 말한다.


호수석(湖水石)

수려한 山岳美를 갖춘 단봉형, 청아한 산인데 그 가슴에 크고 작은 두 개의 호수를 조용히 감싸고 있다. 산 빛이 검푸른 색상으로 보아 盛夏의 녹음이 푸르게 무르익은 청산임에 틀림없다. 미인의 예쁜 코처럼 아름답게 솟아오른 봉우리 밑에 여러 갈래의 골짜기가 녹음에 뒤엉켜 深谷을 이루고 그 품속에는 비취색 해맑은 물이 두 곳에 담겨져 있다. 푸른 산색이 평화롭고 평온한 山情을 느끼게 해 아름다운 자연의 예찬이 시로 읊조리게 한다.


호수석에는 산정호(山頂湖), 산록호(山麓湖), 평원호(平原湖) 등이 있는데 백두산의 천지는 산정호의 좋은 예이다. 산정호에는 유현한 신비의 세계가 깃들어 있고 산록호에는 호반의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정감이 있다. 평원호에는 얕으면서 풍족함이 있다. 또한 수심이 깊은 호수는 불안감이 있고, 얕은 호수는 안정감을 준다. 수심보다 수류의 넓이가 얿은 것이 좋은 것이다.

토파석이나 평석에 호가 있을 경우 대개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물고임에 물을 가득 담지 말고 팔부 정도 물을 담으면 경치가 생겨 보기 좋게 된다. 이러한 경치석은 얕은 수반에 장식하면 좋다.

 

호수석에는 호수가의 드나듦의 변화가 있는 것이 풍치가 있어 더욱 좋은 것이다. 특히 물 흐름의 물꼬는 뒤에 있는 것보다 앞에 있는 것이 더욱 좋은 것이다.

돌 한쪽에 산형의 봉우리가 치솟았고 그 아래에 물이 고일 때, 또 물 저 건너에는 아득한 원산의 작은 봉우리가 한 두개 솟았을 때, 이 경(景)은 훌륭한 산정호수가 될 것이다. 비죽비죽 솟아난 산형의 봉우리가 세련되게 부드럽다든지 또는 험악한 형상이라든지, 이 변화에 따라서 그 풍기는 맛이 달라질 것은 당연하다.

 

감칠맛 있게 감상할만한 호수석은 물이 고여 있는 어느 쪽에든 산형이 솟아 있어야 썩 좋을 것이다. 이 산의 형세는 호수에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주는 원천인 것이다. 이 산봉우리의 기세와 형태에 따라서 물이 조금만 고였더라도 드넓은 호수경을 과시하게 되는데, 산봉우리가 장중하고 거창한 형태일수록 호수경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밋밋한 민둥산이나 나지막한 뒷동산 같은 야산의 형상이 불룩하게 솟았다면 그 야산은 설악산의 거대함을 결코 나타낼 수 없는, 스케일이 아주 작은 모습이다. 이런 모습의 산형이 이루어진 한 쪽에 아무리 물이 넓게 담겨있더라도 이 호수는 과히 크지 않은 협소한 경치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실상 물이 고여져 있는 주변의 경개가 생략되고 단순화되어진 세련미를 자아내고 있을 때, 비록 올망졸망한 산형의 강약이 나타나 있지 않더라도 더욱 더 멋있는 시원스런 호수경으로 보게 된다. 특히 호수석에 있어서 그 물이 고여 있는 물가의 둘레가 포구처럼 들어가고 나오는 굽이침의 선이 이어져 있으면 무척 좋게 여긴다. 이런 드나듦이 한두 군데만 있어도 호수경을 보다 돋보여 준다.

호수 가운데에 콩알만한 돌출부가 물 위로 솟아 있다면 이 역시 바위나 섬으로 보게 되는 훌륭한 경치가 이뤄져 썩 좋다.



호수형(湖水形) - 산록호(山麓湖)

온화하고 부드러운 봉우리가 크고 작게 울타리처럼 에워싼 가운데 해맑은 물이 듬뿍 고여 水上美의 극치인 호수풍정을 보여주고 있다. 주봉이 한쪽으로 비켜 앉아 산악미레 운치를 돋우며 나지막한 부봉들을 조용히 거느리고 있는 것이 고요한 호숫가 풍취에 이바지하고 또 평온한 산정을 맛보게 한다. 수석인들이 좋아하는 점촌의 까만 오석에 물씻김도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돌갗에서 유구한 날을 읽어 본다.


수려한 산봉우리가 에워싼 산허리 한쪽에 물이 괴여 태고의 신비를 머금은 듯 조용하고 고요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형을 일컫는다. 호수를 이루는 물웅덩이는 천연으로 파여져 있는 것이 절대조건으로 인공으로 만든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운치 있는 정취가 풍기는 호수석이란 호수에 접해있는 원산과 평지가 균형과 조화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담형(潭形) - 산정호(山頂湖)

드높은 고원 소슬바람 부는 들판에 바다처럼 질펀하게 펼쳐진 호수의 때 묻지 않은 원초의 해맑음이 태고를 그리게 하는 향수에 젖게 한다. 그 호수 위로 아름답고 고고한 산경이 운치 있게 전개되어 그야말로 산과 물이 제대로 어우러진 산수미의 극치를 깨닫게 한다. 이 드넓은 호수에 십오야 둥근 달이 꽃처럼 환하게 드리워지면 마음 맞는 벗님네와 斗酒를 기울이며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읊조리며 두둥실 船遊하고 싶다.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산 정상 어느 한 쪽에 음푹 파여 물이 담긴 형이다. 대개의 경우 원형 모양의 큰 웅덩이가 많은데 이때는 수석 전체의 정경보다는 웅덩이의 깊이와 넓이, 크기 그리고 웅덩이 주변의 변화 등이 관상의 주안점이 된다.


지형(池形) - 평원호(平原湖)

그다지 높지 않은 잔잔한 산줄기가 유연한 능선을 그리며 빙 둘러 에워싼 품속에 넓고 깊은 호수가 누워 있다. 태고부터 가득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듯 明鏡 같은 수면위로 원초의 푸르른 산그림자를 곱게 얼비치고 있다. 호수를 감싸주듯 에워싼 산줄기와 해맑은 물빛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 산수미의 시정이 파문처럼 퍼진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 그 호반에는 백조도 뜨고 사랑의 세레나데가 감미롭게 흐르고……


산자락 모퉁이나 들판 한 쪽에 작은 웅덩이가 파여 늪이나 연못을 연상시키는 형을 말한다.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 떠있는 연못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지만 아무 모양 없이 그저 물만 고이는 돌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옹달샘도 되겠지만 어쨌든 돌에 물이 고였다면 태고의 신비가 담긴 것 같아 어떤 형태이든 애완할만한 돌이다.


설산석(雪山石)


장엄하고 웅대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산자에서 영험이 깃든 기풍이 유연하게 서리어 있다. 名利에 어두운 속인들은 감히 쳐다보기도 황공한 신비의 靈峰이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어떻게 저기에 발 디딜까?” 감히 티끌하나 없는 순백의 저 눈을 어찌 때 묻은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겠는가.

“혼자서 이고 있는 이마 위 저 만년설” 천년만년 녹지 않는, 앞으로 천년만년 지나가도 그대로 하얗게 남아있을 저 눈부신 눈을 혼자서 이마에 가득히 이고 있다. 이는 ‘아무도 속되게 가까이함을 거부하는 숭고한 자세로 오로지’ 희고 하얀 하늘 우러름으로 영겁을 살아갈 만년설산이다.


산꼭대기 위나 골짜기에 하얀 석영 또는 흰 방해석이 덮여 눈부신 설경의 눈 산을 연상시키는 돌이다. 까만 돌 위에 은백색의 차돌이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덮여 설경을 보여준다면 순백의 고아한 기품에 마음이 천순해질 것이다. 성산도 형세와 눈 덮인 양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잔설형(殘雪形)

봄이 왔는데도 흰 눈이 아직 골짜기나 봉우리에 희끗희끗 남이 있는, 그래서 ‘춘삼월잔설’을 연상시켜 주는 설산을 말한다.

잔설형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려하고 운치가 감도는 수려한 산세이면 더욱 좋다. 이런 잔설을 감상하노라면 어느 눈 덮인 골짜기에서 갓 피어난 설중화(에델바이스)의 아련한 꽃내음과 눈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만년설형(萬年雪形)

백설이 온 산에 덮이고 또 덮여 천 년 만 년이 되도 영원히 녹지 않는 만설의 산형이다. 알프스 산맥의 첩첩이 쌓인 만년설을 연상시키고 이 세상 어떤 색깔과도 배색을 거부하는 듯한 순백의 무채색이면 더욱 좋다.

 


빙하형(氷河形)

유연히 흘러간 완만한 골짜기에 얼음이 덮인 산형이다. 폭포형에서는 물 흐름이 박력 있게 동적이어야 되지만 여기서는 흐르는 듯 정지된 고요가 더욱 어울린다.

 

 

도형석(島形石)

도형의 경은 국소국소(局所局所)는 물론 전체적인 경에 있어서 어느 정도 기본체형에서 좀 벗어나는 것도 있다. 이것이 때에 따라 원산형의 엄함에 대해 따뜻한 맛을 감지할 수 있는 유연(類緣)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분재수형(盆栽樹形)에 있어서 곧은 줄기에 대한 모양목(模樣木)의 자미(滋味)에 비할 수 있다. 도형은 원산형과 공통점이 있고 보기에도 비슷하지만 물굽이의 변화가 많이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 유연함과 험준함도 들 수 있다.

섬 형태는 절해(絶海)의 고도(孤島), 촛대바위섬, 갈매기섬, 해상에 떠 있는 듯한 원산형 같은 섬도 있다. 도서형(島嶼形)을 연상시키는 섬, 어촌이 있는 섬, 등대섬, 먼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납작바위섬 등 변이된 모습의 섬도 많다.

도형(島形)은 산형과 혼동하기 쉬우나 산형은 좌우로 뻗어나가는 듯한 멋과 맥의 기품이 있으며 도형(島形)은 맥의 계속성이 끊긴 외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산형은 경정이 큰데 비해 섬형은 그 스케일이 크지 않다. 규모 역시 마찬가지이다. 산의 형태도 섬의 그것은 기슭이 뻗어나 있지 않아 단절된 느낌, 즉 고절감을 느끼는데 반해 산형의 경우는 능선이 옆으로 흘러 맥을 느낄 수 있는 점이 다른 것이다.

 

또 섬형은 파도나 바람에 시달린 양태, 즉 침식작용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경정을 보임으로서 산형과 구분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산형은 좌우 길이가 긴데 비해 섬형은 좌우의 길이가 짧다. 높이 역시 산형이 높은 양상을 띠고 있다면 섬형은 반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말 아름다운 섬. 그 풍정이 곱게 수채화로 그려진 명화. 조금 우람하게 생긴 큰 섬과 아담하게 생긴 작은 섬이 끊어질 듯 살짝 이어진 절묘한 풍정은 秘景에서 仙景으로 이끌어 주고도 남는다.

해안의 굴곡진 기슭의 군데군데 안쪽으로 깊숙이 아늑한 포구를 이루어 그 배들이의 경치도 逸品이다. 풍파 만난 배들이 편히 쉬고자 하나 둘 찾아들고 덩달아 갈매기도 따라와 짖어대면 고요하기도 하고 가난했던 포구는 갑자기 생기가 돌고 집집마다 힘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리라.


도형(島形)에는 포인트에 만(灣)이나 후미를 연상케 하는 물굽이가 있고, 기타 모래밭을 연상케 하는 평평한 면과 바닷가 바위밭, 그리고 파도를 받아 세우며 높이 치솟는 벼랑 등이 구체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면 더욱 이상적인 도형(島形)이라 할 수 있다.

원경으로 보는 섬은 다소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희미한 산등성이가 바다에 녹아 들어가고 능선의 연결로 경(景)을 보여주고 있으며 왜 그런지 로맨틱한 모습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위형(岩形)


수석으로 관상하는 형태 가운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암형이라 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생긴 천연자연물인 한 괴(塊)의 돌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발견하여 신선의 경지에 몰입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한 정신이라 할 것이다.

암형은 하천이나 산기슭, 논이나 밭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 누워있거나 고고(孤高)하게 흘립(屹立)된 자태를 볼 수 있는 경석이다. 등산을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을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갯바위 암형은 일명 우숙암(雨宿岩)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윗바위가 있고 밑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석대나 석반이 있어야 한다. 석대나 석반이 없으면 덮을바위가 된다.

우리가 통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물형(物形)바위가 있다. 대체적으로 곰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와 같은 동물형상을 닮은 것을 말한다.


갯바위형

암석형은 도형보다 근경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또한 먼 바다에 부상하고 있는 작은 갯바위 형들도 있다. 이러한 경은 주로 허리가 낮아 해풍이 강할 때는 파도에 휘말려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나 바다가 잠잠할 때는 평화롭게 떠올라 먼 바다의 정경을 아름답게 해준다. 이러한 경석은 황기형(荒磯形)이라고도 한다. 암석의 돌출부에 황파(荒波)가 부딪혀 높이 치솟는 물보라의 시원한 경치는 오래 야운을 남긴다.

또한 격류에 시달리면서도 태연하게 버티는 갯바위의 웅자(雄姿)함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또 한편으로는 대자연에서 볼 수 있는 동굴이나 동문을 연상하면 물의 풍정과 음량(陰凉)하고 음침함을 느낀다. 때에 따라서는 바닷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발이라고 씻고 싶은 친근감을 주는 돌이다. 이런 것들이 갯바위형의 특색이라 할 것이다.

갯바위형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적당한 굴곡과 잔주름의 예(藝)가 있다. 물결을 상징하는 흰 석영질이나 규석 등이 적당한 곳에 붙어 있고 물고임이 있으면 더욱 좋은 경이 될 것이다. 연출 시에 여백을 많이 두고 얕은 수반을 사용하는 것이 갯바위형의 멋을 잘 드러낼 수 있다.



처마바위형

처마바위형은 바닥 밑쪽을 중심으로 가운데 부분이 음푹 패여감에 따라 그 위 암두(巖頭)가 밑면보다 더 툭 불거져 나와 흡사 지붕의 처마처럼 튀어나온 형태를 말한다.

처마바위형은 수반에 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마를 받치고 있는 기둥 부분이 수반의 3정도의 위치에 놓이고, 처마를 이룬 부분이 7정도,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여백으로 두어 마당이나 앞뜰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출 방법이다.

처마바위를 감상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균형이다. 처마처럼 돌출된 부위와 처마를 받치고 있는 몸통 부위와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 후에 질을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처마바위형 수석에도 몇 가지의 조건이 있다. 먼저균형이고 다음으로 옛 가옥의 처마 밑에 자리한 뜰이나 마루를 연상할 수 있는 기단부의 형성 여부이다.


수문형(水門形)

섬형의 돌 밑 부분에 맞구멍이 뚫려 그 밑으로 백파(白波) 넘실대며 지나가는 경관을 연상케 하는 돌이다.

밑면에서 위로 반달 모양의 아취형이나 둥근 모양의 산봉우리 형으로 뚫려야 하며 밑면은 절대로 연결되지 않고 단석(斷石)되어야 한다. 이런 풍광은 독도나 홍도에서 볼 수 있다.


단층석(斷層石)

넓고 길게 펼쳐져 나간 시원스런 단석(段石)으로 구도상으로나 미적 관점에서 볼 때 상? 중? 하段의 높이도 짜임새 있게 형평의 균형을 잃지 않았고 단과 단의 경계도 분명해 통일된 아름다움을 조성하고 있다. 상단의 길게 펼쳐져 나간 평면과 중앙에 위치한 중단의 짧고 깜찍한 단면은 앙증맞아 애교가 꽃피고 하단에 무한히 전개된 대평원의 평면은 통쾌하다.


계단 모양처럼 몇 개의 단이 층층이 겹쳐 올라간 것을 단석(斷, 段石)형 이라고 한다. 이 돌은 흔히 점판암질에서 생기는데 이 석질에서는 층을 이루는 것이 많고 따라서 단을 겹친 것 같은 형이 되기 쉽다.

단석은 그 단층의 모양에 따라 단층형인 것과 절벽형인 것이 있다. 평석으로서 평평한 단이 겹쳐진 것이 단층형이며 이에 비하여 입석(立石)으로 험난하게 단을 이룬 것은 절벽형이라고 부른다.

강물이나 바닷물의 침식, 지각의 변동, 토양의 변화 등으로 층계 평지를 이룬 풍경을 연상케 하는 돌이다.


깎아지른 벼랑과 그 위에 펼쳐진 평지가 중복된 상태, 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쉽사리 구경하하지 못하는 경치이지만 동해나 남해로 가면 가끔 만날 수 있으며, 널따란 바위가 그런 층계로 이뤄진 것도 구경할 수 있다.



단구형(段丘形)

장구한 세월 하천의 침식작용과 지각의 변동으로 인하여 층계와 평지가 형성된 경관을 연상케 하는 돌이다.

단구형(段丘形)의 주안점은 각 층의 높고 낮음과 평면의 넓이, 단의 비례 등에 변화와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계단식 논이나 산허리에 펼쳐진 화전(火田) 등 향토적인 풍경이 물씬 풍겨야 한다.

지학(地學)에서 말하는 단구란 빙하의 침식 작용이나 지각의 변동에 따라 대하(大河)의 언덕 부근에 몇 개의 단락(段落)이 있는 구(丘)를 겹친 것 같은 지형을 가리킨다. 수석형(壽石形)에 있어서의 단구형(段丘形)도 거의 이것과 비슷한 느낌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각 단층이 두껍고 얇고, 길고 짧은 조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자연의 경정을 연상시키는 일이 본체이므로, 좁은 것보다는 여유가 있는 모습이라야 하겠다.


절벽형(絶壁形)

아찔하게 높은 천야만야한 절벽, 해금강의 촉석정 입암처럼 우뚝 솟은 낭떠러지 등을 연상케 하는 돌이다. 암벽은 까마득하게 앞으로 쓰러질 듯 위태로운 스릴이 있어야 좋고 펴다볼수록 한없이 높은 느낌을 갖는 것이 좋다.


동굴석(洞窟石)

산형으로 생긴 돌 어느 한 부분에 굴속처럼 깊숙이 패어 들어간 형상을 말한다. 원시인들이 혈거(穴居)하던 머나 먼 옛날을, 또는 짐승들의 소굴 등을 연상시키는 돌이다.



동문형(洞門形)

동굴형과 거의 흡사하지만 굴속처럼 패어 들어간 끝이 뚫어져 환하게 투시되어 관통되었음을 말한다. 수문형은 바닷가 바위 밑으로 구멍이 나 있어 배가 지나가는 정경을 연상할 수 있는 형태를 말하고, 동문형은 산 바위 밑으로 구멍이 나 있어 사람이나 수레 따위가 지나갈 수 있는 형태를 말한다. 동굴형은 짐승 따위가 숨어 사는 굴을 연상시키는 것인데 수문, 동문은 맞구멍이 나 있어 저쪽 세계를 볼 수 있지만 동굴은 안이 막혀 있어 투시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르다.

 

미원장은 수석의 4대요건 중 하나로 투(透)를 들고 있지만 현대 수석에 있어서는 이 투(透)가 절대적인 요건이 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투(透)가 있으면 좋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투(透)가 정경을 살리는 큰 포인트가 되고 수석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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