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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감상하며 주고받는 대화

高山 | 2007.04.03 12:56 | 공감 0 | 비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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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감상하며 주고받는 대화

                                                                                             - 고 산 박 철 수 -

 

 

수석과의 대화란 미적 체험을 통한 상상세계이다. 상상의 날개를 펼칠 줄 모르는 수석감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마음이 풍요로우면 상상의 날개도 돗을 날은 듯 마냥 한없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황량한 들판에서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메마르면 수석과의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가뭄에는 단비가 필요한 것처럼 메마른 정서에 활력소를 주자면 영양제가 필요하다.

이 영양제란 인간을 가장 더럽히는 것들을 없애준다.

적어도 수석을 바라보는 순간만이라도 조바심, 남을 미워하는 생각, 탐욕에 빠져있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하나의 수석을 오래 바라보았을 때 武陵桃源과 같은 평화로운 선경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수석이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 없는 말이다.

돌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데 형용하기 어려운 생명적인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흥취를 얻으며 위안을 받게 된다. 즉 이러한 것들이 수석이 나에게 건네주는 멧세지이다.

수석은 굳고 움직이지 않으며 감각도 없지만 어떤 몸짓으로 나를안겨 줄 때 감흥을 받게된다.

꽃무늬가 새겨진 수석에서 그윽한 향기를 맡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 향기가 수석이 내게 주는 말이다.


수석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때 예전에 볼 수 없는 깊은 언어를 체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수석을 향하여 보낼 수 있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하나의 산수석을 보고 있다고 하자.

산봉우리가 솟은 산에 폭포와 벼랑과 바위를 실제의 것으로 느낀다면 그 산수석에서 노니는 기분이 들게 될 것이다.

골짜기를 타고 벼랑을 오르다가 맑은 계류에서 목욕도 한다. 이 곳이 바로 신선들만이 노닐던 심산유곡이구나. 이러한 생각을 같게 된다면 이것이 곧 내가 수석에게 보내는 언어가 시작이 될 것이다.


또 기도하는 모습의 형상석을 보자. 그 모습은 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 같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웅크리고 앉아 고통스러워 하는 듯한 형상석을 보면 나의 번뇌를 깨우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들이 바로 수석에게 보내는 나의 언어이다.

 


자연미의 주축인 山水景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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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이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에서 낭랑한 물소리가 깊은 산간에 메아리치다. 산맥의 기운이 살아 넘치는 듯 꿈틀대며 약동 하고 있다.

웅장하게 치솟은 주봉을 정점으로 좌우에 여러 갈래로 흘러내린 골짜기가 심산곡간(深山谷間)을 연상케 한다. 좌측 산자락의 마무리가 섬세하게 잘되어 세련미도 보인다. 밑자리의 드나듦이 조화와 변화로 멋스럽게 배들이를 이루어 백파(白波)찰싹이는 파도 소리로 들릴 것 같다.


산수경정석은 자연미 감상이라는 관점에서는 가장 정통적(正統的)인 것으로 수석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수석을 보는 방법의 기본이 되는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수석인 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되고 있다.


수석이 자연미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행위인 이상 자연미의 주축이라고도 할 산수의 경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자연미- 곧 산수미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경(實景)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흔히들 산수경정석이 실경적인 것, 혹은 실경을 축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면 수석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갖는 이도 있다. 물론 실경적인 것에는 영원히 수석인의 마음을 끄는 향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들이 수석에서 발견하고 추구하려는 산수경의 세계는 더 넓은 것이다.


수석을 보는 방법의 첫째 포인트는 한정 없는 연상으로 시정(詩情)을 즐기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연상을 유발하지 않는 돌은 좋은 수석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형태가 갖추어진 것만이 좋다고만 말 할 수는 없다.

이 점이 수석의 미묘함이다.

물론 몽돌이어서야 안 되겠지만 동양적인 여백의 미.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점이 있어서 오히려 연상의 묘함이나 상상하는 재미가 있는 수석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수석엔 자연석 그대로의 아치(雅致)를 존중하는 경향도 있다. 석면에 새겨진 돌갗의 상태라든가 무늬 혹은 색상 따위를 완상하는 것 역시 수석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홈이나 골, 곰보 상태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갖가지 진귀한 무늬를 보이거나 아주 빼어나고 미묘한 색채가 되어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꾸밈없는 자연의 묘취(妙趣)를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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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天態萬象)의 기경(奇景)을 신비롭게 간직하고 펼쳐져 누워있다. 골짜기마다 적절한 사이를 두고 운치 있게 간격을 맞추어 약동감을 느낀다. 산줄기가 밀려오는 물결처럼 넘실대는 듯하여 유려(流麗)한 선율의 리듬감도 넘친다. 심산유곡(深山幽谷)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쩡쩡한 물소리가 요란스레 울릴 것 같고 산새도 목청 돋우어 산울림 할 것 같다.


연출상 감상의 위치

먼저 수석을 어떤 각도에서 보아야 가장 알맞은 감상 위치가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각도를 맞추기 위하여 수석을 놓는 높이를 조정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높이 놓고 보아야할 돌이기 때문에 상위에 올려놓았지만 보는 사람의 거리와 위치에 따라 각도가 많이 달라진다.

높이 고여 놓은 돌을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느낌은 판이하게 다르다.


다음으로 돌과 보는 눈과의 거리가 알맞아야 함을 유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어떤 돌은 벽면 구석에 바짝 밀어붙여서 멀리 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역시 보는 사람이 가깝게 다가가 내려다본다면 효과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점들을 유의하여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스스로 각도를 조정하고 앞뒤의 거리를 재가며 위치를 잡는 것이 좋다. 수반을 연출하는 사람은 이런 고생을 감수하지만 일반 관람자는 이런 수반의 기교를 잘 모른다.


수석은 감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걸음과 눈높이로 조절하여 감상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진열대 앞에 바짝 붙어서 보기만 한다. 그러니 감상(感賞)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관람에 그치고 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제대로 감상하고자 한다면 돌을 앞에 두고 앞뒤로 이동하며 방향을 잡아가며 보아야 한다.

이럴 경우 앞으로 다가가며 보는 수석의 흥취와 물러나며 보는 운치는 사뭇 다르다.

진열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감상자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벽면 진열대와 뒤쪽 진열대와의 충분한 거리를 고려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감상자들은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자리를 표시해 두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는 감상자의 수고를 덜어주어야 한다.


감상자의 키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감상 높이는 한국인의 표준 신장에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또한 가까이에서 보아야 할 돌은 진열대를 비스듬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이렇게 관상 위치를 알맞게 표시해 놓는다면 수석의 진면목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주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注 : (본고를 퍼가실 수는 있으나, 고산을 경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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