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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시대를 열어 갈 수석문화

高山 | 2007.01.18 07:57 | 공감 0 | 비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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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시대를 열어 갈 수석문화

(2007. 2월호 "수석의 美" 기고 글)

高 山 박 철수

21세기는 시공을 넘어선 시대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심지어 돌이란 명칭을 한걸음 격 높여 수석으로 애칭하게 되었고, 인간의 사악한 악성을 벗어나고자 구도의 경지까지 접목시켜 애완해왔던 예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지금부터 천여 년 전 중국 당. 송대에 유행했던 태호석이나 영벽석등 기석을 소재로 한 예가 그렇고, 시나 그림에 견주어 미적 대상물서의 가치를 찾고자 했던 현대인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과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오늘날 현대인이 느끼고 있는 개념과는 명백한 차이를 두고 달라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문명의 발달이 낳은 결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왔던 이 시대 이전에 조그마한 자연의 하나를 놓고 감상해왔던 것과는 달리 서울에 있는 수석을 부산에서도 동 시간 수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로 변해 버렸다.


코드 하나만 누르면 지역과 관계없이 생면부지인 사람들과 사이버 상 화상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169119977


이런 21세기를 들어 혹자들은 기계를 만든 인간이 오히려 기계에 짓눌려 장차 디스토피아 세계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지만 인류는 결코 유토피아 꿈을 버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최적의 콤퓨팅을 추구해 가고 있다.

21세기 현재는 과거의 시간이 거북이걸음을 해왔다면 촉각을 두고 다투는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바라고 있는 희망의 세계는 1988년 마크와이저가 제시한 유비쿼터스 컴퓨팅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사람 중심한 네트워크로 앞으로 전자 문명의 화두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람과 자연과의 아무 거부감 없는 상태 즉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최적의 자연 환경을 맞이하려는 것이다.

비록 몸은 현실에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체휼할 수 있는 현실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목전에 둔 것이다.


수석인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 가는 디지털 시대

디지털 문명의 이기는 짧은 시일 내에 빠른 물결을 타고 닥쳐온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 불가결한 혜택은 아니지만 이제 혈연. 지연. 학연 등의 폐쇄적 공동체 테두리를 벗어나 인식과 관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시공을 넘어 디지토피아 세계를 꿈꾸는 도구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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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은 연속성으로 이어진 아나로그적 집합물이요, 시간이 누적되어서 마르고 닮아 다듬어진 美의 결정체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다듬어진 아나로그적 개념을 0과 1이 결합된 디지털 개념으로 수석이란 분야만을 딱 떼어 적용하기란 한계점이 있고 그렇다고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니까 수 억년 세월을 두고 다듬어진 수석을 보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는 무모한 행위는 삼가해야겠다. 하지만 수석문화 태동에 이어 디지털 시대에 걸맞도록 한 차원 업그레이드해 가야 함은 수석인의임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접할 수 있는 수석 문화를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를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와 연관된 자들이 함께 고민하여 발 빠르게 대처해가야 할 숙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취미라는 특수성 이외에 초를 다투고 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동양의 멋으로부응해 갈 수 있는 메가 트랜스는 무엇인가 ?

한번쯤 짚어보고 대응해가야 할 방안을 강구해야 모두가 사는 길이다.


수석문화의 발전은 보여 주는 양적인 발전 보다는 이미 지난 시대에 회자되고, 예지된 작은 것이 아름답고 만족할 줄 아는 차원을 벗어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새 시대의 희망을 주는 가치탐구에 주목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에 미래사회에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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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계의 시대 흐름

수석 취미의 정통성은 위대한 자연을 탐미하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이켜 보는 자아 회고요, 물아일치하는데 그 의미가 크다.

옛 선조들은 자연이 낳은 오묘한 조화를 소리 소문없이 감탄하면서 동양의 고유한 멋을 때 묻지 아니하고 후손들에게 계승해 주었다.

이런 미풍양속을 이어받아 우리 세대도 찬란한 업적과 성과를 이루어 차세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피드백하여 함께 즐겨야 한다.


현대수석의 태동은 1960년대 부터이다.

이전은 한국적인 향토미가 물씬 배인 현대 문명이 가미되지 아니한 토종 그대로의 수석미를 구가했다면, 이후부터는 신문화가 뒤섞인 참고서적 등 대중화된 현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최초 시점을 맞이한다.


단위조직으로는 1966년 서울에서 석우회를 필두로 수많은 조직이 구성되어 활동했고 지역.도.중앙연합회 조직 결성 및 개인적으로 수석미를 찬양하는 기고문, 수필, 시, 이론서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현대 수석은 명실공이 내실 문화와 보여주는 전시 문화를 겸해 우리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피드백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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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각종 전시회 개최, 도 및 연합회 활동 및 유통 상거래가 이루어져 물밀 듯이 수석의 열기는 전국을 휩쓸었다.

한국 수석계의 큰 주류의 맥은 1981년 한국 수석회 발족을 **점으로 1985년 늦가을 한국수석 총연합회가 서울 올림피아 호텔에서 창립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10년 후에 애석인 총연합회가 발족되어 수석계 산맥으로 자리메김했다.


정부에 등록된 이들 단체가 우리 수석계에 기여한 공로는 숱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금자탑을 쌓을 만큼 남긴 업적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는 솔직히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수석문화가 태동된지 40여년이란 연륜을 헤아리면서 현대적인 형체로 변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지난 것만큼 그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했음을 냉정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단체든 시행착오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부정하거나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지적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은 바람직한 방법이요, 장려해야할 일이다.


일컬어 지난 수석문화는 전반적인 에너지가 외부 지향적 방향으로 치중했던 감도 없지 않다.

외부지향적인 특성은 과시용 전시성이나 힘의 세력을 나타내기 위한 파워 게임, 계급장 달기, 절차와 과정 준수로 인한 경직스러움은 내부 지향적인 성향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말하자면 수석 취미는 외부 지향적이 아니라, 내부 지향적인 속성을 가진 것으로 조직이 후진성이나 낙후되지 않으려면 쓸모없는 계급장이나 과시력을 운운하는 소모성 우월 의식을 벗어나 문제 해결을 함께 공유하고 현재의 추이와 흐름을 과감하게 대처할 줄 아는 의식이 요구된다.

이 시대는 능력 위주보다 협력을 모토로 생각하는 협력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포용력과 개방성은 로마. 미국이 승리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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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정복하는데 200년이 걸린 로마와 북아메리카 전역을 평정하는데 100년이 걸린 국이 승리한 비결은 결코 힘과 재력이 아니었다.

로마는 개방을 위해 15만 킬로미터 길을 닦아 도로를 만들어 문호를 개방했다. 중국은 외적의 방어를 위해 6천5백킬로미터의 만리장성을 쌓았고, 이집트는 한사람을 위해 피라밋을 세웠다.

무수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쌓은 만리장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로마가 세계를 제패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로 패쇄성과 개방성의 차이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을 말하여 “지성에서 헬라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 켈트인이나 게르만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 에르투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그들이 마지막 승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까닭이” 포용력와 유연성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로마의 군대는 패전한 장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터에서는 무섭게 싸웠지만 승리하고 나면 적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국민성은 최고 공직에 있던 사람도 퇴직하고 나서 최하위직 지위로 일하게 될 경우에는 과거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한다.

비록 패전한 자라고 할지라도 용서했고 능력이 있는 자는 인재 등용에 과감한 개방을 하는 등 정보 습득 능력에 탁월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변 나라보다 어디 하나 나은 점이 없는 그들이 천하를 정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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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따지는 밥그릇 시대는 지났다.

이제 정보화 시대에 신속히 대응하는 조직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다.

자기 생각이 아니면 안된다는 고정된 관념과 틀을 깨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자가 차세대를 주도해 갈수가 있다.

처해진 환경아래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획일적 시각을 벗어나 조직 내의 제반 의사 결정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오늘날 지구는 혈연과 지연으로 맺는 한정적인 공동체 개념을 벗어나 마우스 하나로 국경과 이념, 사상을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생각과 인식을 같이 할 수 있는 이미 작은 마을로 변했다.


내 것이냐 , 아니야 하는 밥그릇 시대는 지났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풍자적으로 잘 묘사해 놓은 내용이 있다. 인간들에게 학대를 받던 동물들은 굶주림과 멸시에 못 이겨 결국 반란을 일으켜 인간들을 축출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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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싸움에 성공한 돼지는 과거 학대를 받고 지내던 지난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술과 향음을 즐기던 인간들과 똑 같은 행동을 재현한다는 내용이다.

지금 이 시대에 있어 조직이 원하는 인간상은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옆에서 주문만 하거나 입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아웃사이드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함께 고민하고 염려할 줄 아는 인사이드이다.


비전이 요구되는 때 공감대 형성은 수석인의 몫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으로 본 수석은 수석인과 네티즌의 감상 수준을 급격히 격상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물보다 화려함을 구현하면서 도저히 마음은 눈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실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현재 온라인이 지닌 부작용인지, 아니면 正道인지 의구심을 제기하게 된다.


수십억년 동안 다듬어진 결정체를 단시일내에 뒤엎는 디지털 문화가 아나로그적 시대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 ? 라는 의문 제기는 취미 수석인에게 명확한 답을 굳이 내려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인위적으로 가공할 수 없는 진가를 다양한 처널을 통해서 일반인에게 적극 참여시키고 보다 폭넓은 감상미와 내실문화로 접근해 가기 위한 최소한의 이론 정립이나 공감대 형성은 수석인 당사자들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몫으로 안다.


변화에 대응해 사는 디지로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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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되어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정체된 개인과 국가는 언제인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하나를 생각할 때 더 하나를 생각하는 자, 개방과 진취적인 모습으로 서로 융합하는 자는 주변이 외면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는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간파하고 능동적으로 해결해 가는 개인이나 단체만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오늘날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정된 틀과 사고방식을 깨고 변화에 대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대가 아닌가?


예컨대 10이란 결과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5더하기 5만이 답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3+7, 13-3, 100-90, 6+4,등등 그 해법은 무수하게 나온다.

시대는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는데 수석문화는 본질이 의도한바 고풍스럽고 풍유와 낙도를 즐기던 옛 선비들의 유물이란 이유로 과거의 것만은 고수한다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서로 독창성을 인정하면서 큰 공동체로서 다양한 체널을 통해서 서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찾아야겠다.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징후는 정보 인프라에 묻혀 개인적으로 소화 할 수 없는 곤란한 직면에 처해 있어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개별화. 파편화. 가상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동체로서 목적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새로운 수석포트 포리오를 준비하는데 합의점을 찾자.

어제와 오늘은 이미 낡은 지식이다.

이제 수석을 예술적 차원으로 그 맥을 꾸준히 보존 계승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나로그와 디지털 문화를 조합한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가려는 끊임없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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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자

해설)산화동(酸化銅) 안료로 문양을 그려서 문양이 붉은 색을 내는 진사 백자가 조선시대 어느때부터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남아 있는 유물들로 미루어 17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진사 항아리는 어느 지방 가마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이다. 산지가 개성 근처라느니 강화 교동(嶠洞)이라느니 하는 설이 있으나 아직 가마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바로 선 나지막한 입 부분의 끝이 도톰하게 말렸으며 그 아래 어깨가 맵시 있게 부풀었다.

허리는 약간 잘룩하고 굽은 몸체 밑둥에서 대담하게 꺾여들어 훨씬 안쪽에 붙었다. 이 항아리의 입 부분과 몸체 및 굽이 엮어내는 멋진 조화는 한국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의 경지이다.

얼핏 보아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두고 바라볼수록 더 애정이 가고 그 특출한 조형 감각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양면에 진사로 곧게 선 대나무를 그렸는데, 하나는 크고 반대편 것은 작다. 이런 모양의 대나무는 흔히 18세기 중·후반의 백자청화에서 종속 문양으로 등장한다. 대나무 사이의 양면에는 십자형으로 변형된 구름을 그렸다.

** 고산의 견해가 틀리면 겸허히 배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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