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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석 삼매

高山 | 2009.06.24 15:25 | 공감 0 | 비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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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석 삼매 **

김장옥 글

거제도의 봄은 팔색조의 울음과 해풍에 뚝뚝 떨어지는 동백의 붉은 꽃잎과 함께 온다.

아니 그보다도 새순처럼 돋아나는 배추색 돌과 상추빛깔에서 점차 불그스레하게 번지는 불상추 색깔의 돌이며 연두빛 바탕에 샛노란 개나리 꽃잎을 흩뿌린 듯한 문양의 함목 돌밭에서 피어나고, 여차 해변의 홍매 몇 그루와 진달래 산천을 연상케 하는 연분홍 꽃돌에서 봄은 절정에 이른다.


서른 여섯 개나 되는 산지를 거느린 거제도는 가히 바닷돌의 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산지로는 유호, 농소, 대금, 대계, 망치, 학동, 해금강, 여차의 아홉 군데를 꼽을 수가 있는데 산지마다 그 특징이 다 다른다.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뽐내던 농익은 농소돌은 먼저 알려진 만큼 빨리 줄어들어서 추억에만 생생하게 남아있고, 학동의 묵석 원산과 물개같이 유려한 곡선의 돌들은 몽돌해수욕장의 보존상 단속이 심하다.

대금에서는 청동, 황동색의 미석과 변화를 곁들인 경석이 산출되었고 해금강은 둥근 공돌로 유명한데 뭐니뭐니해도 월석의 대명사 같은 함목은 달돌이 많이 탐석된다.

진록색에 연황색 달이 박혀 있고 그 주위를 검은 테로 발묵이 되어, 달빛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어서 달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맑고 깨끗한 곡옥같이 휘어진 초생달이나 한쪽이 비어 버린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반달의 그리움이며 희미한 낮달의 쓸쓸함이라든지 가득찬 넉넉함을 바라보는 만월의 풍요로움이 때로는 잔별들과 어우러져서 밤 하늘을 수놓기도 하고 연청록 도자기 형태의 돌에 달이라도 둥실 뜨는 날이면 청자빛 시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가끔씩 귀한 청매가 발견되기도 한다.

누구나 일생일석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다다익선이라고 좋은 돌은 많을수록 좋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매화가지 하나라도 걸쳐준다면 춘향이 모친 같은 월매라는 석명을 붙여 주련만 내가 원하는 돌과의 석연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산의 태종대공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내려가면 자갈마당이 나오고 아름다운 사계절의 특징을 색깔로 나타낼 수 있는 연초록, 진록, 황갈색, 흰색 무늬의 돌을 이곳에서 찾을 수가 있다.

서로 연관성이 있고 상호 뜻이 연결되는 테마를 가지고 돌 모음을 할 때는 각시탈, 양반탈, 말뚝이, 영노 같은 탈 종류나 십이지, 십장생, 조류, 어류, 인물, 화초라든지 희로애락의 인상석과 못난이 시리즈 같은 것도 재미가 있고 해, 달, 별, 구름, 비, 바람, 눈, 파도, 번갯불, 불랙홀, 은하수 같은 자연현상의 모음도 가치롭다. 태종대, 등대 아래로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또 하나의 산지가 기다리고 있는데 대체로 씨알이 굵고 흑록의 색대비가 뚜렷한 좋은 석질이 보이고 특히 흑요석같이 까만 바탕에 노랗게 또는 희게 석영질이 점점이 박혀 있어서 백호피나 황호피를 연상케 하는 질 좋은 돌이 산출된다.

감빛이나 노을빛 곱게 물든 단풍색과 토담집 안벽 같은 황토색 싸늘한 백설빛 같은 가장 아름다운 빛깔들을 자연은 태종대 돌밭에 아낌없이 뿌려 놓았다.


돌사람들은 철새처럼 이 산지 저 산지를 옮겨 다니면서 색다른 돌맛을 본다. 일광돌이 유화처럼 명료하고 윤기가 짜르르한 비프 스테이크의 맛이라면 거제돌은 수채화 같은 상큼한 야채의 맛이고 태종대 돌은 파스텔 색조처럼 초장에 찍어 침부터 꼴딱 넘어가는 싱싱한 활어회의 맛에 비유할 수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탐석 전날에는 항상 마음이 설레인다. 내일은 쌍봉 원산을 주워야지, 아니면 머리가 동그랗고 몸체가 통통한 사유석을 찾아야지 하고 그림 같은 정해진 대상을 찾아 다녔었는데 부지중에 오늘은 무슨 돌과 만나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정다운 석우와 마주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돌밭에 서면 우선 돌에 볼거리가 있든지 아니면 생각할 점이 있는 것을 찾게 되는데 질색이 뛰어나서 끌리는 돌이 있는가 하면 형태와 그림이 좋아서 취하는 돌도 있고 내용이 의미심장해서 와닿는 돌도 있는데 사물의 정확한 묘사보다는 고풍스럽고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밭을 서성이며 세상만사 잡념을 깡그리 잊고 때로는 탐석에 열중하는 자신도 잊은 듯이 탐석삼매에 흠뻑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오원 장승업은 궁중으로 불려 들어가서 말 그림을 부탁받게 되는데 길들여져서 가만히 서 있는 말에게서는 말발굽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솟구치는 약동의 힘을 느낄 수가 없어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제주도로 귀양을 간 그는 땅을 박차며 갈기를 휘날리는 야생마를 보게 되고 잠자던 예술혼이 살아 꿈틀거리면서 드디어 천마도를 완성하게 된 야화가 있듯이, 어느날 시인은 간편한 개량 한복을 입고 일광 바닷가로 내려왔다.

닫혀 버린 마음의 문을 열고 고기 비늘처럼 번뜩이는 기운생동한 시상과 시어를 건지기 위해서 왔노라고 동해안을 따라 돌밭을 거닐면서 물보라가 후려치며 떠나라고 할 때까지 머물거라고 했다.


자연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자연이 숨쉴 때 그날 하루는 신선이 된다고 한다. 자연에 파묻혀 집념과 열정으로 진지하게 탐석을 한 뒤 얻어지는 취석의 희열은 말로써는 형언키가 어렵다.

수천 수만 번을 수 없이 뒤집어 보고 닦아 보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감상 훈련을 거치게 되고 오랜 사유 끝에 한점한점의 돌이 선택되었을 때 비로소 생명력 있고 진정한 수석과의 해후(邂逅)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긴스(Edward F Higgins Iii)가 엽서 4등분의 1정도 크기의 미니멀 아트로 세계 미술인을 깜짝 놀라게 하고, 3백호에 끌어들여도 만족할 수 없는 대자연을 굳이 줄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어떤 것은 작아야 좋고 무엇은 커야 좋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인 것이다. 안타까운 사람이 애틋하다던가. 잡힐 듯이 보일 듯이 감질나게 만드는 바닷돌의 매력,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플라토닉 러브 같은 해석사랑의 숨바꼭질은 끝이 없다.

이 땅의 곡식을 먹고 사람을 사랑하며, 자연을 아끼고 돌을 좋아하는 생활, 이것이 마마도 행복이란 것이 아닐까 하고 돌밭에 앉아서 상념에 잠겨본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문다.

아!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떤 것이 참 삶이고 무엇이 소중한가. 의문이 소리없이 밀려든다. 그때 파도가 잔잔히 몽돌을 쓰다듬으며 내게 찰랑찰랑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서 꿈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서둘러 생각하라. 꾸밈도 없고 허식도 없는 생사를 초탈한 저 조그만 돌 앞에서 그대는 한낱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수석사이트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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