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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벗들을 위한 동서양 사상 산책

高山 | 2009.06.24 11:35 | 공감 0 | 비공감 0

 

                                      돌벗들을 위한 동서양 사상 산책

 

終始의 인생관 - --너와 나 돌아감과 태어남

 

                                                                                                 청완 김 석

 

                                                                                                   (시인. 퇴계학술원회원, 한수연우회자문위원)

*.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 어미雌만이 아닌 어머니 母↔毋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

( 선생은 삯군이 아닌 스승님이란 일꾼이기 때문에, 즉 師卽死의 말씀 집)


착한 이는 말을 눌러 담아 아니하고

깊이 아는 이는 박식하지 아니하며

널리 아는 이는 지혜롭지 아니하다.('나도 알어' 투)


너를 위함으로써 나는 더 갖게 되고

너에게 주는데 나는 더욱 많아진다.(솟아나는 샘물처럼)


담담한 하늘 도가 이롭지만 해롭지 않듯(利害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성인의 도는 남을 위할 뿐 다투지 아니한다.(스며드는 물처럼)(81장)

( 하늘 법을 알고 가르치는 이가 얼 박힌 스승이요,)

( 가을 과일들 잘 영글도록 보살핌이 철든 부모이다.)

*.( ) 속 글은 필자가 본문을 대하며 순간순간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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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마지막 81장은 진실에 대한 노자의 정의다. 진실이란 질박質朴하고, 근본은 소박素朴하다는 것이다. 이런 영혼(얼나)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말을 맑은 샘물 맛(上善若水으로 노자는 비유하고 있다. 즉 영혼에서 우러나는 말이란 온갖 수사를 동원하는 통속예술가들처럼 감언이설이나, 대중에 야합하는 정치, 종교가들의 화술이 아니라 오직 참됨에 대한 증거를 위해 말이란 옷을 빌린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진실의 말을 논어 안연편顔淵篇에서'물이 스며드는 듯한 거짓말, 살갗에 닿아오는 듯한 속삭임에도 넘어가지 아니하는 맑음이다'라고 했다. 예컨대 깊은 샘물은 퍼내어 쓸수록 더 차고 맑은 물이 나오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성서의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삼천 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았다는 예화도 이런 정신적인 양식의 진실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박식한 지식은 저수지 물과 같아서 퍼서 쓰면 바닥이 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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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TV에서 젊은 엄마가 아이의 뽀송뽀송한 발바닥에 입을 맞추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것은 광고였지만 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캄보디아 비행기 사고에서 한 젊은 아버지는 어린아이를 껴안고 어머니는 아이 그리고 그 화면을 본 부모들은 맑은 눈물을 찍어냈을 것이다. 이런 깊고 맑은 사랑을 어떤 수사를 써서 그려낼 수 있겠는가, 일상생활 속에 베어 있다가 뜻밖의 일에서 만나게 하는 진실, 살아있는 경전이란 이런 것이다.


노자의 道德經은 그의 字 귀 바퀴 없을 담聃이 상징하는 바처럼 하늘(無爲自然)의 도리를 빌어 삶의 도리를 얘기한 경전이다. 이런 통일지統一知로 볼 때 사람도 우주의 한 지체인데 너와 나를 가르는 분별지分別知 때문에 이름이 필요하고 요란한 수사가 동원되는 것이다.

이런 통일지의 지혜를 중국철학자 왕필은 숭본식말崇本息末(근본을 높이고 말단은 줄인다.)라 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일관되게 말한'無는 有의 어머니다'는 것은 天道(衆妙之門)는 물物을 내었으나 영靈이며, 個(낱)을 내었으나 全(온)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즉 노자가 보는 無와 道는'언어'라는 한계를 두르고 있지만 영원이요, 공간을 만들었으나 포괄하는 무한이며, 인간을 만들었으나'몸→맘'을 뛰어넘어'맘→몸'으로 초월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결국 변증법적 지양止揚aufheben인 몸 먼저나 맘 먼저가 아닌, 몸(사물)과 맘(인간)의 조화를 말하려 한 것이다.


天道인 얼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참나'가 되는 것을 장자는 진아眞我라고 하였다. 몇 번 말했지만 인생관을 말함에 있어 노자는 無爲라는 없음(形而上)을 통하여 있음(形而下)을 인식하는 구도求道에 치중하였고, 공자는 인의仁義을 중심으로 현실(形而下)을 통하여 보이지 않지만 있음(形而上)을 실현하려는 치민治民에 치중하였다. 결과는 같은 것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상반된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문화풍토는 본래 무위와 유위의 균형을 지켜온 동양이다. 그런데 지금 나와 너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성급함과, 잰 척한 말과, 싹 쓸어가듯 하는 행위의 모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결국 주체는 나인데 주변周邊인 내 생각을 익히지 못하고, 설익은 채 받아들인 서양인들의 상술이 섞인 얄팍한 과학문화와 습화習化되지 못한 종교가 빌붙어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내가 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이번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기독교인 23명도 이런 성급함의 한 단면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안타깝다. 영국이 인도에서 떠날 때 간디의 말이다. 너희들이 가져온 기독교는 가져가고 성서 속의 예수는 두고 가라고 했던,


여기에 덩달아 인격까지 상품화시키고 있는 메스 콤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과외 열풍, 남북 대립을 빌미로 우리의 목을 죄는 군사문화의 경직성, 이에 대한 분석적 저항과 대안이 없는 감상과 냉소에 의한 분파와 도피적 반항성, 이런 불안에서 도피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종교들의 기복 사상, 좁은 땅을 더 소유하려는 파렴치 계층들, 무사안일의 혼융이 빚어낸 결과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형편이다.


지금 우리들은 자연이라는 무위와 사람다움이란 인의의 동양적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의 정신적 풍토는 피폐하고 생활은 뼈도 바르지 않고 삼키다가 목에 걸려 괴로워하는 利其利만 매달리는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회칠한 무덤으로 삶이요, 맘보다 얼굴만 뜯어고치는 내허외화內虛外華의 소용돌이다.


2007 년 1월 21일 맑음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오늘 벽제에서 화장火葬으로 禮를 올린다는 고인이 된 여류시인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하는데 고인의 생전 모습과 동갑내기였지만 누이처럼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일들, 그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를 쓰며 살아야 하는 삶의 고뇌, 지금 그녀는 四大 오온五蘊의 고통을 잊고 하나님 품에 안겨 편히 쉬고 있는데 살아있는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아침 아홉시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으로 벽제 화장터를 갔다. 멀리 화장터의 굴뚝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두 번이나 승화장昇火葬으로 오르는 출입구를 놓치고 말았다. 차를 멈추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근처 마을에 사는 한 아낙을 태우고서야 겨우 입구를 찾았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인데 그 존재가 드나드는 문을 食色에 골몰했던 내 눈은 날을 세워 그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 아낙은 출입구에서 내리고 우리는 추모객들의 차가 만원인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웠다.


겨울 화장대(昇火臺)로 오르는 길엔 산 사람들의 흰옷과 검은 옷들이 몰려 다녔다. 이것이 삶의 빛과 그림자가 아니겠는가, 20년 전인가, 시인협회 야유회가 양평에서 있었는데 그때 나는'빛과 그림자'를 불러서 熱唱賞을 받고 기뻐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속으로 웃었다. 산 사람들 틈에 섞여 승화대로 오르는 길, 그곳에 도착하니 울음소리와 TV 화면의 아침 연속극 소리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사람들과 고개를 맞대고 상의하는 사람들과, 때로 핏대를 올리는 사내들 뒤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흰옷의 아낙네, 그대로 일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20 번의 불화로를 배정받은 여류시인의 화장은 11시에 시작하여 그녀의 남편이 이끌고 있는 교회신도들의 고인 앞의 작별을 위한 묵념과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연신 눈물을 찍는 아내를 보면서 내 목까지 차오르는 슬픔과 무표정한 사내의'뼈를 곱게 해드릴까요'그리고 뼈를 곱게 빻는 차가운 기계소리, 우리들은 또 한 번 오열하였지만, 1시간 40분에 그녀의 몸은 완전히 분쇄되고 말았다. 이것이 한 시인의 四大 五蘊의 맺음이었다.


태어날 때는 차례가 있지만 죽을 때는 차례가 없었다. 19번 화장실은 초등학생의 맑은 영정, 영정을 쓰다듬으며 젊은 어머니가 꺼억꺼억 울음을 거두지 못하고 기진한 채 앉아 있었다. 21번에는 휠체어에 앉은 남편과 두 아이를 남기고 간 웃는 모습의 젊은 여자, 그녀의 남편은 울음이 말랐는지 팔에 상장喪章만 걸고 아내의 몸이 타고 있는 전기화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휠체어를 의지하여 데모하는 사진처럼 앉아 있었다.


22 번과 23번에는 기독교식 장례, 찬송가소리가 나를 위로하여 주었다. 나도 기침을 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18번에는 전통 삼베차림 사람들이 삼삼오오 눈물을 비비며 더러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그곳을 지키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고운 그녀의 영정이 우리들을 위로하듯 웃는 얼굴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오면서 아내의 말이었다. 그녀가 영동 세브란스에 입원하여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다녀온 날 밤 꿈속에 고운 옷을 입은 그녀가 남편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집을 찾아왔더라는 것이다.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20일쯤 지나 두 번째 우리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심약한 그녀의 딸과 미국에서 갓 돌아온 아들이 내일 벽제 화장터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유해는 그녀가 평소 자주 들렸던 용인에 있는 텃밭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병이 점점 깊어지고 남편과 용인 텃밭을 찾을 때면 꽃과 나무와 새와 햇살 바람과 어울려 살겠다는 것이 그녀가 생전에 여러 번 남편에게 남긴 말이라고 했다. 시인다운 아름다운 유언이었다. 나도 이런 유언을 남기는 마음 준비와 삶의 밭을 지금 어디쯤에서 얼마나 갈고 있을까,


죽은 다음의 세계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없다면 그만이지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러나 분명히 다음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나는 체험한 일이 있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나는 空手去의 길임을, 몸을 벗은 영혼은 새처럼 또는 공기처럼 가벼움이었음을, 나는 실제(시간, 공간, 인긴 안에서)로 경험한 일이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종교를 의지하고 사는 나도 사후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 半半이었다.


내 손과 지식으로 붙잡을 수 없는 죽음 뒤의 체험은 비유로 증명할 수밖에 없어 이 또한 난감하기는 하다. 2000년 9월 17일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주일 예배시간이었다. 이 교회로 내가 처음 옮겼을 때 처녀였던 그녀(전도사 직분)는 새로운 교인들을 맞이하는 부서를 맡고 있었다. 그녀의 친절한 교회에 대한 소개는 나와 아내가 낯선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에 적응하는데 그녀의 도움이 참 컸다.


평소 상냥하고 예의가 발랐던 그녀가 1999년 가을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았다. 아내와 내가 신도들에 섞여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 다시 정밀검진을 위해 저녁나절 병원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희미한 그림자의 뒷모습이 어찌나 쓸쓸했던지, 몇 번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통해 경험한 일이지만 사람이 쓸쓸해 보이면 얼마 살지 못했다. 내 어머니의 모습이 그랬고 새벽이면 호박잎에 담긴 이슬을 받아 마셨다는 의사였던 사위 대하는 것도 부끄러움이 많았던 장인어른의 모습도 그랬다.


2000 년 8월 31일 그녀가 세상을 뜨고 9월 17일 주일 1부 설교는 평소 그녀와 함께 새로 온 교인들을 영접했던 목사님이 맡았고, 나는 예배의 기도 순서를 맡았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강대상 의자에 잠시 앉아 아침 햇살이 그라스 페인팅의 유리벽을 통해 예배당 안을 스팩트럼 현상으로 비취던 때였다. 교회가 신촌 번화가에 위치해 있고 열린 문도 없는 2층 예배당,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그때 일어났다, 고딕식 교회의 높은 천장까지 울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든 것이었다.


천장이 높은 예배당을 한 바퀴 휘돌더니 단상에 앉아 기도의 순서를 기다리는 내 앞 강대상 마이크에 앉았다. 참새의 몸보다 조금 컸지만 꼬리가 참새는 아니었다. 뭔가를 지적이다가 내 쪽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날아 예배당 안을 다시 한 바퀴 휭 돌더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2부 예배 때도 다시 새가 나타나 평소 그녀와 가까이 했던 신도들이 3층에 모여 있었는데 교회 안을 한 바퀴 돌고 그들이 모여 앉아 있는 자리 위를 세 번 돌며 울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어떤 있음으로 세계'를 우리에게 비유로 예표豫表함이 아니겠는가, 분명 그날과 그때. 한 마리 작은 새에 의하여 전개되었던 일은 神異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그날 새의 행위는 그녀의 사후와 내 사후에 대하여 어떤 메시지를 미리 보여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四大, 五蘊의 집인 우리의 육체는 봄바람이 불면 새로운 몸으로 탄생하고, 때가 되면 가을바람처럼, 혹은 새의 날개처럼 가벼움으로 내 몸 불과 물을 털며 사라질 것이다. 나는 두 번의 죽음에 대한 예감과 그 죽음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 속에서 오욕칠정으로 덧칠한 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정리하고 베풀면서 물기를 털어 말릴까 생각을 하고 있다. 돌아보니 강돌 산지가 고갈되고 돌을 좋아하는 아쉬움에서 지금도 푼돈이 생기면 섭취 돌이나마 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30년 넘어 돌을 탐貪하듯 또 너를 만남에서 내 利害를 먼저 가늠했던 타박타박 내 비틀거린 눈길의 발자취를 생각했다.


돌을 以苦之苦 30년, 돌을 지고 이대로 살다 간다면 내 발길이 얼마나 무거울까, 간편함과 편리를 추구하는 아파트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거실과 서재, 베란다 사면에 돌을 고르고 돌로 채우는 내 애착을 보면서 나는 그저 이것으로 리모델링했다고 내 탐(貪,경제). 진(瞋,정치). 치(痴,문화) 불 마음을 합리화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사실 돌을 보는 마음은 無心이어야 하고, 무욕無慾이어야 한다는데 지금도 나는 좋은 돌을 대하면 소유하고 싶어지니, 내 언제 무심으로 돌을 보고 무욕으로 삶을 보는 가벼움으로 훨훨 허공을 나는 새의 흔적 없는 흔적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이 될까.


된 사람의 몸가짐은 반듯하되 남을 거느리려 하지 않는다는데

된 사람의 몸가짐은 깨끗하되 남을 깎으려 하지 않는다는데

된 사람의 몸가짐은 올곧되 남의 빗댐을 탓하지 않는다는데

된 사람의 몸가짐은 빛나되 빛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데

마치 본래 물과 공기처럼 냄새와 맛이 없는 것이 된 사람이라는데

그래서 된 사람은 만상과 함께 공유하며 즐겨 살아가는 것이라는데


그러나 도시에 살다가 산 속이나 강이나 바닷가에 나가보면

확실히 물맛이 있고 공기의 맛이 있다. 있을 뿐만 아니라

폐부를 뚫는 시원한 맛과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산이나 들에 갔다가 갑자기 용변을 볼 경우 깊은 산 속이지만

몸뚱이가 파란 파리가 날아오듯이, 우리는 파리처럼 썩은 냄새에 젖어

내 속 해와 달과 별빛의 냄새를 잊어버리고 막연한 그리움으로 사는 것이다


시인 박제천은'노자 시편'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선 노자의 말을 기둥으로 삼았다. 그가 말하는 도라든지 무와 같은 命題를'너와 나'라는 상대로 전환시킴에 따라 무리가 빚어질 수 있겠지만 세계의 어원적 파악이라는 기본 틀을 유지함에 더 의의를 두려 했다. 노자나 장자는 비유컨대 나에게 볼록거울인 셈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나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주는 볼록 거울이지만 그러나 그 얼굴이 바로 나의 얼굴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섯 가지 마음이 내 안에 서려 있다

귀와 이어진 신장에 숨어 있는 정情을 만난다

혀와 이어진 심장에 숨어 있는 신神을 만난다

눈과 이어진 간장에 숨어 있는 혼魂을 만난다

코와 이어진 폐장에 숨어 있는 백魄을 만난다

입과 이어진 비장에 숨어 있는 지志와 만난다

이것들이 나를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한다


언言은 어語이며 론論이며 담談이며 강講이며 변辯이며

고며 의議며 고誥며 회誨며 화話며 위謂며

평評이며 훈訓이며 간諫이며 경警이며 비譬이며 사詞이라

( 박제천 노자 시, 사물의 태어남과 침묵의 말에서)


1945 년 8월15일, 흰옷 입은 이천 만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흔들었던 그날,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성자 시바이쳐는 손에 노자의 도덕경을 들고 읽고

있었다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이야 여러 갈래로 할 수 있겠지만 내 짧은 생각은 예수의 무저항의 저항과 노자의 무위지위가 결국 승리한다는, 자본주의 정치에 휘감긴 종교나 무기를 등에 업은 과학이 아닌 공기처럼 가벼운 예술과 철학의 無爲가 사람들의 결과를 붙잡는다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은 대립과 비교에 의한

분별지가 아니라 감싸고 끌어안음의 통일지라야 한다는 암시적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이 포용과 받듦으로 마음은 부모가 된 연후에 알 수 있고 또 손자를 안으면서 더욱 뚜렷해진다.


지금까지 노자의 도덕경을 설익은 채 베어 물고 또 떫은맛을 익히지 못한 채로 뱉어 낸

내 말들을 맺는다. 그러나 너와 나, 남과 돌아감은 마침표가 아니다. 관 두껑을 덮음으로

마침표가 또한 아니다. 사람의 영묘함이란 영원한 물음표(과학, 철학)이고, 느낌표(예술,

종교)이다. 나는 붙잡힘 없는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즐거움으로 엮어 볼 것이다.


돌을 사랑하고 돌 속에서 느낌표를 찾으며 사는 우리 돌을 사랑 벗들도 가을이면

책상 앞에 앉아 고전이나 경전을 한 번 대해보기를 바란다. 그중에서 노자나 장자의

생각을 고르고 그들의 사상을 읽고 이해해둔다면 돌의 몇 가지 형태(3요소나, 5요소)

만을 보는 자칫 피상적인 壽石觀에서 더 나아가 돌을 보는 새로운 자연으로 水石觀의

눈을 열어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돌을 시작한 石友는 나에게 시가 단어를 버리는데서 출발한다는 내 말을 듣고 있다가 돌도 버림에서 출발이라 말했다. 이것을 우리말 한글로 철학을 했던 유영모님은'인생은 죽음으로부터'라고 말했다. 이것을 終始의 철학이라 한다.


이 명제는 중용의'物之終始'라는 말도 있지만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죽음 뒤의

세계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나 같은 기독교인들을 각성시키고 종교의 본질은 나를 버림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다. 그렇다, 경전 속 진리를 표현하는 말들은 거의

역설적인 표현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텍스트로 하여 이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 다짐하고 확신한 것은 바르게 돌을 사랑하는 마음이 란 소유도 있어야 하겠지만 청맹과니 같은 내 귀에까지 들려온 거제도 돌 벗들이 몇 차례 돌을 제 자리에 돌려주었다는 기쁜 소식도 접했다. 나눔에 있어서도 인색하지 않는 몇몇 석인들을 나는 내 주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돌을 보는 기쁨이요, 돌을 드는 깊음이다.

끝으로 24세에 요절한 중국의 천재 철학자 왕필(A.D 226중국 위나라 때 노자와 주역의 註를 쓰고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의 노자 도덕경 註에서 몇 마디 이용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는 도가나 유가의 편에서 중국의 정신을 해석하지 않고 두 사상의 습화習化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美란 개념은 좋고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악이나 추와 어울리지 못하는 배타성을 갖고 있다.


仁과 義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굳이 다른 사람에게 획일적이고 독선적으로 강요함으로써 문제가 야기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이런 대립적 사유체계에서 無爲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가 끼어들지 않음이다. 無事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일을 구태여 일으키지 않는 것이고, 自然은 객관세계의 자연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거나 스스로 그러함이다." 이런 반성을 통해 정립된 도는 자기 독단적 강제와 조작에서 벗어나 타자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自生自化를 향해 열려진 길이다.


이런 화해로 동서양의 생각들이 섞이고 또 지양될 때 우리 인류의 미래는 아침 숲길에 오르는 햇살처럼 희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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