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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의 조건과 고정관념

함지박이야기 | 2005.12.19 01:43 | 공감 0 | 비공감 0

수석(壽石)의 조건(條件)

돌이 수석(壽石)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요건(要件)이 있다.
먼저 어떠한 인공(人工)도 가해지지 않은 '순수 자연석(純粹 自然石)'이어야 한다는 대원칙(大原則)이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괴석(塊石)을 즐기는 풍류(風流)가 있었는데, 투(透 ; 구멍이 뚫려 있고), 준(浚; 깊은 주름이 있어야 하며), 수(瘦; 야위어야 하고), 수(秀; 빼어난 기품이 서리어 있어야 함), 이른바 '미원장의 사원칙(四原則)'이다.


이 시대의 괴석류는 정원석으로서 원지문화(苑池文化)의 원류(源流)로 파악함이 옳을 듯 하다. 이 괴석류는 태호강에서 주로 채취되었는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부 호사가들이 이상적인 모양의 괴석을 미리 만들어 태호강에 일부러 빠트려 놓아 몇 십년 동안 강속에서 수마(水磨)를 시킨다음 다시 건져서 즐겼다는 것인 바, 이는 오늘날 조석(造石)의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지만 역시 대국의 조석행위는 스케일이 좀 컸던 모양이다.


근세에 들어 이웃 일본으로부터 수반석(水盤石)의 개념이 정립되어, 이른바 삼면법(三面法; 앞과 뒤,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세가지 위치)에 의거한 관찰법이 생겨나고, 질(質) 형(形) 색(色)의 3대 원칙에 고태미(古態美)와 자연미(自然美)의 조건이 부가(附加)되기도 한다.

일본 수석계에서 사용하는 '수석(水石)'이라는 용어는 산수경석(山水景石)의 줄인 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섬나라 자연환경 특성상 섬형석(島形石)을 위주로 한 자연경을 주로 수반에 연출하는 기법이 발달하였다. 즉, 운두가 낮은 수반에 고운 모래를 깔고 그 위에 섬형태의 자연석을 전후좌우의 방향과 위치를 살펴 여유롭게 연출하므로써, 넓은 바다에 한가롭게 떠 있는 섬의 정취를 연출하고자 하였다.


해방이후 일본 수석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수석붐을 일으킨 몇 분 원로 중에는 우리 수석계가 틀이 잡혀 독자적인 '수석(壽石)'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후에도 계속 '수석(水石)'이라는 일본 용어를 고집하는 분이 있었다.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국제 수석계에서도 일본식 영어인 'SUISEKI'로 통용되고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며, 우리식대로 'SUSEOK'으로 하던지 아니면 의역(意譯)하여 자연예술석(Natural stone art; 중국, 대만 일부에서 사용)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런 일이야 말로 수석계를 대표하는 기구에서 연구 검토하여 관철시켜야 할 것이나, 외국에 나가서 어디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고 중국이나 대만에 가서 조선족 동포의 통역없이 의사소통 제대로 하는 수석계 인사가 있을는지 의문이다.


일본 얘기만 나오면 잠시 흥분되는 것은 민족 감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도 인터넷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듯 차츰 경제적인 발전이 전망되고 있으므로 이에 못지않게 문화예술 방면에서도 국제화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바닷돌의 새로운 흐름에 따라 젊은 수석인의 참여도가 날로 증가하고 있고, 특히 금년 들어 인터넷 수석문화의 물결이 가세하여 대학에서 미술이나 예술계통의 전공을 한 젊은 인재들을 수석문화 중흥의 기수로 흡수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수석 문화가 침체의 국면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진다.


명석(名石)의 조건(條件)


한발 더 나아가 '명석(名石)의 조건(條件)'을 살펴보자.
산수경석의 경우 명석의 조건으로 열 몇 가지의 까다로운 항목이 있어 세상에 그런 조건을 갖춘 돌이 있을가 싶지만 대다수의 수석인들은 오로지 산수경석, 그 중에서도 똑 떨어지는 남한강석만 고집하며 전력을 투구하여 산수경정석의 명석추구에 일생을 투자하고 있다.


연출하기 적당한 크기에(20 ~ 25 cm), 질 좋은 남한강 오석이나 쵸코석에, 주봉과 부봉의 높이와 위치는 적절하고, 중턱 어디쯤에 호수나 물고임이 있고, 앞쪽으로 적당히 감싸 안고 배들이가 있어 아늑하고, 밑자리는 평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눈높이 적당한 곳에 어딘가 투나 석교가 있어 감칠 맛이 나고, 고광저협(高廣低狹)이라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산의 느낌이 들고, 앞면은 넓고 경사가 완만하고 뒷면은 다소 경사가 급하여 앞뒤 구분이 확실하고, 능선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 유연한 맛이 있고...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옛날 태호석의 시대에 적용되었던 이상적인 괴석의 형과 오늘날 명석의 조건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석의 조건은 몇 가지 약속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은 형태석이던 문양석이던 마찬가지이다. 흰 석영이 밑으로 그어져 있으면 폭포로 보고, 오뚜기나 막대기같은 문양이 서있으면 도인이나 여인으로 미화시켜 감상하는 것이 그 예(例)이다.
명석의 조건이라는 것도 어떤 뛰어난 수석인이 그 시대의 선호도나 흐름을 반영하여 만들어 낸 것이고 보면, 시대가 바뀐 지금은 '산수경정석 제일주의'의 가치관이나 명석의 기준도 당연히 재정립되어야 한다.


우선은 산수경석 위주, 특정산지 위주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그것은 새로운 산지와 '새로운 장르의 태동'을 그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는 묘해서 기왕에 자기 것으로 한 것은 계속해서 지키려고 하고 새로운 것이 출현해서 세인의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되면 시샘을 하게 된다.

가령 이조시대에 들어와서도 고려 청자의 전통에만 매달려 있었다면 아름다운 이조백자의 도자기 문화는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고, '미친 사람'이라는 욕을 들을 정도로 기존 관념을 철저히 깨부수며 독자적인 예술적 실험에 매달린 결과 오늘날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의 예술세계를 개척한 백남준의 사례를 보더라도 '진리와 기준'이라는 것도 항상 유동적인 것이며, 앞장서서 새로운 기준과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자가 그 선두에 서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오늘날 부산을 중심으로 젊은 수석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로 애호되기 시작한 '바닷돌 문화'만 하더라도 그 출발은 기존의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수석계로부터의 반동적(反動的) 탈출(脫出)과 창조적(創造的) 모색(摸索)을 시도한 한 두 사람의 과감한 용기가 결국 결실을 맺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바닷돌에도 '명석의 기준'이 있어 수석가게 주인도 이 기준과 잣대에 따라 탐석을 하고 등급을 나누어 좌대를 제작하여 고가에 판매하기도 하며, 일차적인 선(選)에 들지 못한 돌은 함지박에 담기어 수석인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바닷돌의 경우 얼핏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깊이 들어가 보면 의외로 심오(深奧)한 데가 있어 이렇다 할 수석의 기준이 세부적인 데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또 개개인의 심미안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선호하는 것이 아니면 쓸만한 것도 진흙속의 진주처럼 함지박 속에서 진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여 가끔씩 함지박 탐석꾼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명석의 조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한 발자욱 벗어나기만 하면,'함지박에도 명석'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기존 '명석의 조건'을 우선 충분히 이해한 후에 파격을 시도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명석의 조건'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석사이트의 '해석 입문 강의'와 월간지 '월간애석', '수석문화'의 바닷돌 이론을 참고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수석사이트)


지운 선생의 서각작품

수석 애호가이신 지운 이석로 선생이 제공한 자료로서 수석동호인들의 홈페이지 내에 연재 중인 "함지박 이야기"를 옮겨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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