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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신인상 당선작-버리는 마음

빛고은 | 2009.06.24 13:19 | 공감 0 | 비공감 0

2006.1.10 윤은주(빛고은)한국수필 신인상 당선작
(
한국 수필 월간지 1월호 기재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

버리는 마음
수필가 윤 은 주

나는 유독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물건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쓰임새가 다 하여 서랍 한 귀퉁이에 박혀 있어도 두고 있는 편이다.

언젠가는 쓰임새가 있겠지 하며 집안 구석구석 쌓아 두었던 물건들은 5년, 10년이 지나도 가을부채 마냥 먼지만 뒤집어 쓴채 사그랑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을 쓴 작가 캐런 킹스턴은 인연이 다한 물건을 붙들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기(氣)가 막힌다고 했다.
버려져야만 새것으로 채워지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물건을 모아 놓고 의미를 부여하던 일도 시들해져 입지 않는 옷이나 보지 않는 책을 정리하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일을 맛보기도 한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며 집착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지만 버리는 일 또한 집착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다.

요즈음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버린다는 것은 마음속에 또 다른 것을 간직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는 처음 한동안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려 가면서 의연하게 지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느라 모두 지쳐 있는 저녁, 다음날 발인 준비를 해야 한다며 나를 재촉하여 집으로 가자고 했다.
어머니의 생급스러움에 눈까지 오는 궂은 날씨에 집에는 왜 가냐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지만 아버지 옷가지와 유품들을 정리해서 내일 장지에서 태워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는 일에 너무 열중하는 어머니가 야속했는데 삼남매를 출가시키고 두 분이 함께 살았던 집이 멀리 보이자 통곡을 하던 어머니.

“니 아버지 열흘을 곡기 하나 입에 넣지 못했다. 불쌍해서 나는 못 보낸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몰라.”

슬픔이 한풀 꺾이셨는지 못 보낸다고 연신 눈물을 훌쩍이던 어머니는 아버지 옷, 신발 심지어는 공직에 계실 때 받으셨던 상장이나 상품까지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야 한다며 다시 큰 보자기에 싸고 노끈으로 묶어서 단도리를 했다.

아버지 병 수발로 지친 칠순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무거운 짐을 내 도움 없이 차 트렁크에 실었다.


장지에서도 어머니는 칠 남매의 맏며느리로, 파평 윤씨 종부(宗婦)답게 당당한채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아 나를 당혹하게 했다.
상여꾼이나 포크레인 기사에게도 새 때를 챙기는 등 이것저것 신경을 썼다.


아버지 유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꼭 오늘 다 태워 없애야 하냐며 투덜대며 지청구를 하는 여동생을 무시한 채 상여를 태울 때 아버지의 유품도 함께 태웠다.


유품이 다 타서 희미한 연기조차 남기지 않을 때까지.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나는 어머니의 마음 속에 몇 차례의 바람이 몰아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불씨가 꺼져 사위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삼오제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몇 달 동안 앓아 누워 계셨던 방의 낡은 장롱과 이불과 전기 매트, 베란다에서 햇빛을 받으며 앉아 계셨던 의자까지 집 밖으로 옮겨 놓았다.


영화가 끝나면 오르는 자막처럼 그 많던 아버지의 한뉘가 생(生) 바깥으로 가버렸다.
마흔 아홉 해를 함께 살아온 동반자를 물건 몰아 내듯 그렇게 마음 속에서 지워 버리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버지의 흔적을 성급하게 정리 하려는 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화가 났다.


가끔씩 친정에 들르면 물건을 통해서나마 아버지를 회상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아버지께서 늘 앉아 계셨던 푹신한 의자.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내려 갔을때 아버지는 힘들게 그 의자에 앉으셔서 당신 살아 생전에 외손자를 한번이라도 더 봐야겠다며 오랫동안 바라 보셨다.

평소에 아들에게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안방의 문갑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며 아들, 며느리 앞장 세워서 가구점으로 갔다.


섭섭한 마음이 커진 나는 더 이상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남편과 아이들을 재촉하여 서울로 왔다.

가끔씩 안부 전화를 하면 도배도 새로 하고 장판을 다시 깔고 커튼도 새로 바꾸었다고 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친구들이 많아서 괜찮다.”

어머니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았다. 서너달이 지나고 늦은 밤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너그 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보고 싶어서 온 집안을 다 뒤져도 양말 한짝 나오지 않는다.”


전화선 저 편에서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유품을 버린다는 것은 곧 당신 안의 슬픔을 순화시킨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내가 어머니를 이해한다는 것은 피상적일 것이다.


나는 두 아들을 최고의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거주지를 이탈한 목동으로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함께 했다.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아들은 목표로 하는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애면글면 애쓴 아들을 생각하면 나는 늘 허기진 마음을 털어 낼 수가 없었다.


내 아이들만은 돌올히 빛나야 한다는 이기심과 자식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내 집착을 버리라고. 어머니는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을 버리면서.







fdc
한국수필집 신인당선을 축하합니다.
수필가로 대활약이 기대됩니다. 축하합니다
[ 2006-01-16 09:28:24 ]
방문자
아.. 인간 생활 삶을 적나나하고 본능적으로 파헤친 글 ..
슬픔니다.
그런 가슴아픈 사연이 있었음을 알았어요.
[ 2006-01-17 14:58:41 ]
어쩌면 다한번은 겪어야할 일들이지만 ....은주님에 글쏨씨....어머님 생각....생각이 깊은 어머님에 그런 마음을 이제는......앞으로 좋은수필 기대합니다
[ 2006-01-19 12:29:11 ]
dksdowl
윤은주가있다니 내친구인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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