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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시흥문학상 수상작-길에서 길을 생각한다.

빛고은 | 2010.12.22 16:58 | 공감 0 | 비공감 0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

윤 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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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 빠진 어머니는 웃고 있는 하회탈처럼 서 있다.

우리가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마도 그렇게 길 위에 있을 것이다.

가년스러워 보이는 어머니와의 눈시울 붉히는 이별이 싫어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려 버린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신접살림을 위한 세간들을 트럭에 싣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어머니는 딸과의 헤어지는 아련함을 트럭 꽁무니에서 만들어내는 포말처럼 날리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채 꼼짝을 하지 않음으로 삭이셨다. 집 장만이 먼저라고 우겨 혼인 예물이라곤 시계와 반지로만 때우고 나머지 몫으로는 현금으로 챙겼다.

어머니는 장롱이며 당장 쓸 전자제품도 마다하는 딸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아쉬움과 야속함도 겹쳤으리라.

산다는 것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당신의 삶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떠나는 딸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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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묫길에 12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밀리더라도 고속도로로 한결 같이 갔으면 이만큼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길이라 샛길까지 잘 아는 남편은 지방도로로 나왔다. 바꾼 길도 밀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또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거듭했으나 결과는 결국 원점이었다.

나 혼자였더라면 차가 아무리 밀려도 마냥 그 길로만 갔을 것이다.

길눈이 어둡고 방향 감각이 둔한 나는 새로운 행선지로 갈 때면 두렵기만 하다. 출발하기 전에 지도책을 펴 들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여 머리속에 정리를 한다. 운전을 하고부터 생긴 습관이다.


내 고향엔 오래된 사찰 직지사가 있다.

주차장에서 절 입구 일주문까지의 길엔 지금쯤 코스모스가 한창 피었을 것이다. 걸어서만 오르내릴 수 있는 그 길을 몇 년 전에 아스팔트를 깔아 넓은 차도를 만들었다. dsc_0028

언제 보아도 정겨운 주변에 눈길을 돌리며 20여 분을 걷던 거리가 차를 타고 2, 3 분으로 짧아져 버렸다.

나는 지금도 직지사를 찾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뜸해진 옛 길을 고집하며 추억을 부른다.

그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철에 가도 좋다.

봄에는 개나리를 닮아 따뜻한 노란 꽃길이 되고

여름은 녹음이 우거진 싱싱한 숲길이 되어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게 한다.

가을은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가 수줍었던 날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길로 변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에 동화되어 절에 이르기도 전에 세속의 번뇌를 다 묻어버리는 하얀 마음의 길이 된다.

길은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줄지어 서 있는 나무는 제 마음을 그대로 전해준다. 은행나무 길에서는 은행나무가 되고 삼나무 길에서는 삼나무가 된다. 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음의 길은 보이지 않아서인지 가는 것도 녹록하지 않았다.

여러 갈래인데다가 선택의 몫이 스스로인 것이 보이는 길과 흡사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내가 가고 싶고 그 길이 좋다고 믿어지면 그리로 달려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와 상관없는 전혀 가고 싶지 않은 길로 가야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삶에는 고민이 따른다.

6b3d0256%5b2%5d_s나는 혼자서 길 걷기를 좋아한다. 생각을 방해받지 않고 보행의 속도에 자유로워 좋다. 그러나 시내의 짧은 거리나 공원길을 거닐 때 말이지 산을 오르거나 먼 길을 갈 때는 사정이 다르다.

여럿이 떼 지어 몰려다니기는 아예 고개를 돌리지만 혼자보다 동행자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속내를 터놓을 수 있고 눈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배

려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면 족하다.

어머니의 먼지 속 배웅을 시작으로 살아온 이십 오년은 분명히 단거리 낭만 코스는 아니다.

흙탕길도 있었고 전후좌우의 거리 분간이 막막한 자욱한 안개 길도 있었다.

혼자였으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만 했으리라.

울다가 지쳐 앞으로 뚫고 나가기를 포기한 채 영영 낙오되어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내 부족함을 속속들이 찾아 손에 쥐어준 남편이 있어서 고맙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하다고 나를 향해 투박할 때는 참 원망스러운 때도 많았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한 일은 뒤로 미루지 않는 추진력에 숨 가쁠 때도 있었다.

익숙한 길만 고집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에움길로 들어설 때는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남편의 동행이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길이 잘못 들지 않았음을 안다.

같은 것의 합일도 좋지만 서로 다른 것의 조화가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길은 삶으로 이어진다.

출발은 종착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출발의 시점은 분명하지만 종착의 때를 모를 뿐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언제 어디쯤에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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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지금 나는 부지런히 걷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차곡차곡 쌓은 수확들을 자양분으로 하여 가는 날까지 더 심오한 알곡들을 채우리라. 그래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주리라.

봄부터 지금까지 담아온 정기를 남김없이 짜내어 화사한 단풍으로 변신하여 생애 마지막을 길손의 피곤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 가로수처럼. 가을 길을 걸으며 또 다른 길을 생각한다.

(2010년 제11회 시흥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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