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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의 무게

빛고은 | 2009.06.26 14:44 | 공감 0 | 비공감 0

쉰 살의 무게

윤 은 주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본다.

오늘 따라 거울 속에는 나 아닌 또 한 사람의 내가 남 얘기하듯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던진다.

“내 나이 쉰이 되었다.”

언제부터 서랍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는 돋보기에 눈이 간다.

돋보기를 쓰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전과는 달리 보톡스 광고에 관심이 끌린다.

바깥나들이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느라 축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고른 것이 가급적 젊게 보이는 것임을 알지만 몸이 먼저 안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글씨는 이중으로 초점이 흐려지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서른이나 마흔이 오고 갔듯이 쉰이란 나이가 너무도 당연히 내게로 온 것이다.

옛날에는 오십이라는 나이가 나를 기다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

나와는 전혀 무관한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을 앞둔 시절에는 느리기만 하는 세월에 가속도가 붙기를 원했다.

그러면 일단 대학 입시에서 해방이 될 테고 어른이 되어 그들이 누리는

갖가지 삶의 패턴을 즐기는 꿈에 부풀었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두 아이 엄마로 생활에 파묻혀 나이 따위는 느낄 겨를 도 없었다.

마흔에 접어들고 아이들의 생활도 일일이 내 손에서 조금씩 멀어지자 내 눈에 들어오는 시야가 조금은 넓게 보였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 七十 古來稀)”란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 팔십을 쳐도 인생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나왔는가를 생각하니 허송세월이었다는 후회와 아쉬움에 우울했었다.

마흔이라는 나이와 적당히 적응하며 살만하니까 이젠 쉰이란다.

나 보다 한 살 위인 글벗 k님은 마흔 아홉 끝자락에서 아쉬움과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서른아홉부터 십년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병마와 싸우며

무던히 고생을 했다.

사십대에 질병으로 병원을 쫒아 다니고 독한 약에 시달렸으니

곁에서 보아도 지난 세월이 아까웠다.

그녀는 마흔을 유보하고 싶었을게다.

일 년 먼저 그녀로부터 예방 주사를 경험하고 나니 내 몸 안에 면역체가 생긴 것 같다.

내 스스로 나이와 타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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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소설 같은 삶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았을 때가 당신의 나이 쉰쯤 되었을 무렵이다.

앞뒤로 호령꾼 세우고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날은 함박눈이 펑펑 하늘을 메웠다.

순백으로 변한 온 누리를 바라보며 가마멀미 참으며 뿜는 새색시의 하이얀 입김은 눈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리라는 다짐과 각오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집온 지 한 달이 채 될까 말까할 즈음에 아버지는 군에 입대 하셨다.

“시어머니 용심은 하늘이 낸다.”는 고약한 속담이 있다.

모진 시집살이가 어머니만의 몫이었을까 마는

끼니를 걱정해야할 어려운 살림에 칠남매 맏며느리로서

시동생 시누이 뒤치다꺼리까지 겹쳐 꽤나 힘든 시집살이였다.

뒷산 아래에 있는 저수지를 볼 때마다 ‘저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리면 만사가 해결 되는데’

하는 망측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남편이 제대를 하고 시동생 시누이들도 가정을 이루어 한숨 돌릴 때쯤

시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치매까지 왔다.

한시도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못하면서 대소변을 받아 내는 병 수발을 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마흔인가 싶더니 쉰이라니 사람 사는 게 잠깐이란다.”

어느새 자라서 말동무가 된 이십대의 딸에게 당신의 삶을 고백하듯

풀어놓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꼭 회한과 탓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착잡한 감정 밑바탕에 당신의 서럽고 고생한 삶 보다 감사와 보람이 깔려 있음이 보였다. 그것이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서 쌓은 무너짐 없는

‘여자의 성(城)’임을 깨달은 것도 최근이다.

아무리 단단한 남자의 성(城)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여자의 성(城)이 무너지면 소용없다.

공자님은 쉰에 천명(天命)을 안다고 했다.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적 차이를 감안해도

오십년을 살아온 내게 들려주는 하늘의 이치라는 게 무엇일까?

내 나이 쉰에 쉰을 더한다 해도 감히 선현(先賢)의 흉내라도 내는 것이

오히려 나의 허물임을 안다.

높은 산에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사물은 흐리게 보이는 것처럼

다만 보이는 것이 많되 흐릿하여 확실한 것이 쥐어지지 않아 안타깝다.

쉰 살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한다.

그렇다고 비명을 지르거나 엄살을 부릴 수도 없다.

남편이나 아이들 앞에서 호들갑을 떨어봐야 나만 추해질 뿐이다.

‘세월의 흐름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나 정열의 상실은 영혼의 주름살을 늘린다고

울만은 그의 시에서 말했다.

삶의 색상을 고르는 심안(心眼)은 돋보기 없어도

세월이 흐를수록 밝아지고 영혼의 보톡스는 중독이나 후유증도 없다.

오십 대에 글벗은 행복을 쟁취했고 어머니는 당신의 성을 쌓았듯이

나도 흐릿하게만 보였던 목표물을 확실한 쉰 살의 무게로 채우기 위해

열정으로 주변을 정리한다.

2008년1월 한국수필 '사색의 뜰'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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