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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된 풍광

빛고은 | 2009.06.24 16:11 | 공감 0 | 비공감 0

정지된 풍광

윤 은주

작은 숙모의 부고(訃告)는 내가 갑자기 한 세대 위로 떠받친 듯 허공에 뜬 기분을 안겨주었다. 주부의 아침은 바쁘다. 그 시간이 지나고 커피 향에 가을 추억을 수놓고 있는데 전화선을 타고 작은 숙모님의 부음이 전해왔다.

어제 해질 무렵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눈을 감으셨단다. 심장 마비. 말로는 많이 들어 왔는데 내 가장 가까이서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가슴이 멎는 듯 했다.

남동생을 재촉하여 서울에서 김천까지 지름길만을 골라 달려와 작은댁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산그늘이 마을을 덮고 있었다.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라는 주변 분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당신이 살던 집을 두고 그럴 수 없다는 상주들의 주관으로 시신은 집에다 모시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 곳을 떠난 지가 30년이 지났으니 내 어릴 적의 그 마을 모습이 그때와 같기를 어찌 바라랴. 집들은 헐리어 밭으로 변하기도 했고 또 새 집으로 단장도 되었고 길도 잘 다듬어졌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의 마을은 할아버지 돌아가신 그 해의 풍광에 정지된 채 그 모습만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으니 욕심인지 애착인지 생각이 어지러웠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가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 방학의 귀향길에 맞아주던 위풍당당한 신록이나 흰 눈을 덮어쓴 고결함은 아니었다.

무성한 잎들이 겨울 채비를 위해 가을 햇살로 채색된 옷을 갈아입느라고 석양에 알몸을 드러낸 모습이 불길 속 나신을 연상시켰다.

그나마 작은집이 예전의 길가 집 그대인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반가웠다.

사치스런 회상도 잠깐, 상가에 이르자 고인의 영정 앞에 선 상주의 호곡에 평생을 농사일에 묻힌 채 다섯 남매 치다꺼리와 집안 살림만을 지켜온 작은 숙모님의 끈질긴 삶이 묻어 나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천막 친 마당에는 곳곳에 놓인 석유난로를 중심으로 조문객들이 둘러앉았다. 뒷켠에서는 투박한 배추전과 푹 삶은 돼지고기를 채반 위에 담느라 손놀림이 분주한데 그 위로 떨어진 감나무 잎이 반으로 자른 귤의 부드러운 속살과 어울려 한 점 정물화 같다.

작은 숙모님도 자연의 일부분이듯 감나무 잎이 떨어짐 같이 그렇게 조용히 자연의 법칙을 따라 죽음을 맞이하셨는가?


출상일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도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으로 단장한 꽃상여는 집 앞에 도착했다.

발인제(發靷祭:상여가 집을 떠날 때 상여 앞에서 지내는 제사))가 끝나고 상주들의 통곡 소리는 주변을 숙연하게 하는데 열 여섯 명의 상여꾼들은 왼발 오른발을 절도 있게 움직이면서도 노자돈 받는 일만은 게으르지 않았다.

상주들도 백관들도 친지도 지인들도 망자의 마지막 길에 인색하지 않았고 나도 지갑을 열어 얼마를 눈물 섞어 내밀었다.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요령 소리와 함께 메기는 선창자의 소리에 "에헤 에헤에에 너화 넘자 너와 너" 상여꾼들의 뒷소리가 이를 받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을 일러 주오" 망자의 심정을 일일이 토해내는 사설이 선창자의 입을 통해 겹겹이 이어지는데 떠나기 서러워하는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 했다.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의 높낮이와 좋고 나쁨에 따라 곡조와 리듬이 달라지면서 이어지는 상여 노래는 인간이 숙명적으로 맞이해야 할 이별의 정서를 구슬프게 잘도 나타내었다. 이것은 의식요이면서 무거운 상여를 메야하는 상여꾼들의 노동요였다.

산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으로 들어서자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작은 어머니의 죽음 위에 지난 3월에 가신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서다.

100년만의 폭설이라는 기상대 발표대로 천지가 눈에 덮여 있던 날 이 산의 눈길을 울면서 걸었다. 그 때는 옆의 큰 연못도 오르막길의 가파름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펑펑 내리는 흰 눈 속을 꽃상여를 앞세운 채 호곡하던 나를 비롯한 상주들의 애잔한 모습만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에 정지되어 있다.

멀리 아버지의 무덤이 보인다. 새파란 잔디 옷으로 단장 하셨던 아버지의 옷은 계절이 바뀌어 가을 들녘처럼 갈색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아버지! 당신도 가을이 깊어 가는 것을 아시나 봅니다.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지관이 맞춘 수평과 좌향의 방향에 따라 석관을 반듯하게 놓았다. "객토 합니다."라는 구령에 상주들이 차례대로 흙을 한 삽씩 놓자 다른 이들이 이를 따랐고 곧 적당한 모양의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상여꾼과 상주들이 빙 둘러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달구질을 했다.

"영감 영감 우리 영감 나 죽으면 어찌살꼬" 지관의 선창에 "달구 달구 달구야" 후렴이 이어졌다. "박서방 이리 나와 보소 가여운 우리 딸 나 없더라도 잘 살펴주소" 지관이 맏사위를 부른다. 사위는 무덤의 중심을 잡으려고 세워 놓은 막대기에 돈을 건다. "달구 달구 달구야" 리듬에 맞춰 흙을 다지면서 후렴이 뒤따른다. 말 한마디 못하고 가신 작은 어머니. 그 심정을 아는 듯 지관은 상주들을 하나씩 불러서 고인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고 있다.

슬픔도 도가 지나치면 흥이 된다던가? 자식과 부모를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는 최후의 행사인 무덤 다지기에서 슬픔을 익살 섞인 사설로 흥으로 승화 시킨 장례문화를 전수해준 조상의 지혜가 돋보였다.

몇 차례의 달구질이 끝났다. 상여꾼들은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가을 햇살을 받으며 준비한 음식과 음료와 과일과 술을 먹으며 환담을 나눈다. 상가에 미처 문상오지 못한 어른들이 장지로 찾아와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시작보다는 끝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사람 사이의 가까움을 더 가늠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언제 갈 날을 준비하고 사는가. 내일 일을 모르면서도 영원할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그런 가운데 남의 일만으로 여겼던 생과 사의 이별이 내 앞에 다다랐을 때 당황하고 슬퍼하고 후회하는 우리가 아닌가.

지금 저기 상주들도 정담을 나누는 문상객들도 그리고 나도 모두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는 가을 산의 단풍, 갈대들의 어우러짐, 앞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한편으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귀하고 애처로웠다.

평토제(平土祭:장사때 봉분한 뒤에 그 자리에서 지내는 제사))를 끝으로 죽은 자에 대한 의식은 끝이 났다.

아버지 장례식 때도 그 의식 절차가 오늘과 같았다. 다른 것은 그때는 내 슬픔에 쌓여 상여꾼의 소리, 달구질 할 때 지관의 소리, 후렴구가 들리지 않았고 주변의 정경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낯 설은 장례 의식이 충격이었고 슬픔도 가누기 힘든데 제사는 왜 이렇게 많은가고 속으로 불평도 했었다.

'한 다리가 천리'라는 옛말처럼 한발자국 물러서서 보고 들으니 복잡하고 주술적인 것 같았던 우리의 전통 장례 의식이 훨씬 인간적이고 정감이 넘쳤다.

요즈음 문상은 대부분 의례적으로 상주에게 예의를 표하고 간단한 음식 대접을 받고 오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전화만 하면 김치, 밥, 반찬, 국까지도 배달된다. 마을 아낙들이 모두 나서서 음식을 장만하고 동네 장년회에서 상여를 메고, 비빕밥을 해서 큰 채반에 이고 산에 까지 오는 인심은 찾아 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밤12시 이후부터 다음날 9시까지는 문상객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거쳐야할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가 죽음이다. 장례식은 죽음이 갈라놓은 망자와 생자 사이의 마지막 하직 절차다.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는 그 절차를 통하여 망자는 보다 나은 내세로의 약속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안정을 준다. 슬픔을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고 신앙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스며있는 전통 장례문화가 삭막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새로운 감회를 주었다.

죽음은 곧 삶의 문제다. 곱던 단풍들이 어젯밤 비와 바람에 미련 없이 우수수 떨어져 낙엽으로 뒹굴었다. 상주들의 몸부림치는 애곡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차 높아지는 봉분 속에서 작은 숙모님의 시신은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겠지. 자연의 순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마지막 모습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2004년11월7일(공저'수다도 약이다'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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