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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알고 있다.

빛고은 | 2009.06.24 15:48 | 공감 0 | 비공감 0

집은 알고 있다

윤 은 주


차안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나는 얼른 내려서 집 앞으로 바투 다가갔다.

사층 다세대 주택으로 새 단장을 하고 예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나를 맞아 주었다.

옛 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푼더분한 모습으로 있을 줄 알았다.

전혀 다른 모양새를 마주 했을 때의 당혹함이라니.

설 연휴에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한 시간 정도 짜투리 시간이 남았다.

딱히 시간을 보낼 방법도 없어 영화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십 여 년 전에 살았던 집에

잠깐 들렀다 오자는 남편의 제의에 쾌히 승낙을 했던 터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지 강산이 한 번 변했지만

매달 친목 모임이 있어 가끔씩 그 집을 바라다보고 오곤 했었다.

더러워진 대문이며 지저분한 마당을 보고 오는 날이면

조금 낯설고 설멍하긴 해도 제 본이야 어딜 가겠냐고 자위를 했었다.

이층 빨간 벽돌집은 별반 달라진게 없었지만

그 집 마당에서 뛰어 놀던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멍멍이의 모습이 함께 아우러져

잠깐 옛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었다.

추억은 곁가지를 치면서 사연을 낚아 주었다.

봄이면 남편과 함께 연례 행사처럼 페인트칠을 직접 했다.

‘여자와 집은 가꾸어야 한다’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산뜻하게 단장한 집을 보며 흐뭇해했었다.

대문은 안 주인의 얼굴과 같다는 내 신념이 아침이면 물걸레로 대문 닦는 일로 시작되었다.

어느 해 늦여름에 물난리가 났다.

시뻘건 황토 물이 순식간에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나는 물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문서와 저금통장을 대충 가방에 챙겨 나왔을 때 물은 대문을 넘어 오고 있었다.

이틀을 물을 피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물은 현관 앞에서 멈추어서 많은 피해는 없었지만

지하실에 물이 차서 연탄 보일러가 망가지고 연탄이 부서졌다.

양수기는 새까만 물을 토해냈다.

그 해 우리는 어정쩡한 수해민이 되어 쌀 한 포대와 라면을 구호품으로 받았다.

이사하기 일주일 전쯤 밤 두시경 꿍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일어나 거실과 현관 등을 켜고 남편을 깨웠다.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나가 보니 웬 남자가 꺼꾸러져 있었다.

밤손님은 대문 지붕 위에서 미끄러져 다친 것 같았다.

그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으리라.

사내와 드잡이라도 할법한 남편은 여기 왜 이렇게 웅크리고 앉았냐면서

그를 부축해서 대문 밖으로 보내 주었다.

집과 이별해야 하는 아쉽고 살갑던 내 마음은 도둑 사건이 있고 난 뒤부터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에 보름 동안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가구며 커튼이며 새 단장을 하면서

육 년 동안 살았던 낡은 집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연탄 보일러가 있는 지하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지하실에 연탄 갈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 고역이었다.

이래저래 집은 먼저 내게 정을 떼려 하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멍멍이의 배설물을 치우고 나면 몇 번의 토악질을 해 대다가

속이 가라 앉지 않아 커피를 서너 잔 마셔야만 진정이 되었다.

개를 키우지 않아도 될 것이고, 중앙 난방이라 수시로 갈던 연탄에서 해방 될 것이고,

넓은 주차 공간이 있는 아파트로 오면 주차 문제로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구질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미련 없이 집을 떠나 왔다.

내가 먼저 변심을 했어도 옛 집은 그 모습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피붙이 같았던 집은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옛 주인의 시덥잖음에 집도 의관정재하고 부티 나게 멋을 부린 모양이다.

집은 자태의 도저함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끔씩 찿아와 보았던 집이 이울어져 가는 것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낡은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 것은 당연할 진데

추억 속에 집이 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까.

그 날밤 나는 옛 집의 낯설음에 밤새 사로 잤다.

공저: '살아가는 날의 노래3'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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