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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빛고은 | 2009.06.24 15:46 | 공감 0 | 비공감 0

담 장

윤 은 주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연애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옆집 남학생이 담을 넘겨 내게로 날려 보냈다. 담이 낮았던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어릴적 내가 살았던 집은 중소 도시였지만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옆집과 뒷집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특별한 음식을 했을 때는 담 위로 먹거리를 주고 받았다. 옆집 아줌마와 엄마는 언제나 담을 사이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담이 높지 않은 덕분에 뒤뜰 장독대를 돌아가면 뒷집 감나무 가지가 우리 집 뒷마당까지 늘어져서 가을이 되면 감을 따먹곤 했다.

담이 낮아서 이웃 간에 자유롭지 못한 일도 겪었다. 옆집 대청 마루와 우리집 통마루가 마주 보고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낮은 담을 높일수 없어 여름에는 발을 치고 살았다. 옆집에 또래의 남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머리에 책을 얹고 고전 무용 기본 스텝을 밟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이나 음악 시간 가창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껏 노래를 불러대는 내 모습을 엿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때면 서로 어색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나 마당으로 나가서 그 자리를 피했다.


어릴적 시골에 가면 대부분 담은 어른 키를 넘지 않은 죽담인 채 안이 다 들여다 보이면서 싸리문은 열린 듯 닫혀 있고 닫혀 있는 듯 열려 있었다.

지나가는 누구든 불러 앉힐 듯 길을 내다 볼 수 있던 담, 길목에서도 담 안의 형편이 보였던, 허술한 듯 정겨웠던 담장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점차 견고한 시멘트 블록이나 벽돌담이 높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시가 발달할수록 사유 재산 보호를 위해 담은 점점 높아갔다.

APT가 늘어 날수록 그들만의 담장 쌓기는 강해진다. 단지 안에 편의 시설이 다 갖춰지면서 더 이상 소통을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동차 소음을 이유로 방음벽이라는 이중의 담을 더 높게 쌓은 아파트를 많이 보게 된다.

담이 보통 집보다 높은 집을 보면 그 안이 궁금해진다. 담 너머 펼쳐질 풍경을 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들여다 보고 싶어 진다. 담과 대문을 헐면 거리에 노출되어 허전하고 외부인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안전에 문제가 있고 위험에 노출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담장을 허물고 난 뒤 도둑이 들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ꡐ상황적 범죄 이론ꡑ에서 담과 범죄 사이의 연관 관계를 보면 담을 허물고 난 뒤 긍정적 활동은 왕성하고 열린 공간에서는 부정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도시 곳곳에서 ꡐ담장 헐기ꡑ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서울 도심에 담이 없는 아파트가 있다. 영역 표시를 하듯 콘크리트로 단지를 둘러싼 다른 아파트와는 달리 단지 사방에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자연 울타리로 놓여 있다.

벚꽃, 개나리, 철쭉을 심어 봄을 느끼게 했고 느티나무, 능소화, 사철나무가 담을 대신 했다. 나무와 꽃을 따라 나지막한 담장을 따라 가다 보면 지나는 나도 즐거워진다.

그러나 최근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마을 임대 아파트와 민영 아파트 사이에 벽을 만들어 주민들이 분쟁하는 모습은 씁쓰레하다.

민영 아파트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벽 때문에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등 학생들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학교까지 지름길을 두고 언덕을 넘어서 에움길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열린 공간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면 임대 아파트에는 저소득층이 살기 때문에 민영 아파트 집 값이 떨어진다는 집단 이기심을 보여준 일례이다.

문득 여고 시절 학교 가는 곁골목에 담쟁이로 온통 벽을 장식한 아주 인상적인 담을 떠 올렸다. 짙은 초록의 담쟁이가 덮어 버린 담은 담이라기 보다는 느티나무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잎으로 촘촘히 매달린 담쟁이는 ꡐ나 홀로ꡑ가 아니라 ꡐ여럿이 함께ꡑ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연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가로놓인 벽을 보면서 내 마음에도 담을 쌓아 놓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혼자서 정해 놓은 틀 안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내가 정해 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담을 쌓고 내 울타리를 만들어 버린다. 가끔 내게 호감을 갖고 나와 가까워지려는 이웃들도 내 안에 둘러쳐진 담을 느끼면 슬그머니 뒷걸음친다.

나이테가 하나씩 더해 가면서 모난 부분은 둥글어 지고 세상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면서 마음도 누그러졌다. 내 안에 있는 담도 서서히 허물어지겠지만 서툴게나마 담쟁이로 마음의 담을 장식하면 한올지지 않을까. (한국수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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